AI 핵심 요약
beta- 안규백 장관이 22일 이임하며 425일 만에 물러났다.
- 병역 의혹과 사관학교 통합 반발 속에 식물장관으로 밀렸다.
- 강신철 장관이 후임 지명돼 문민통제 과제가 남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공청회엔 없던 장관, 원고엔 없던 대통령의 '쿠데타' 발언
맥나마라를 기대했건만… 사자성어만 남긴 425일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9월 22일 오후 용산 국방부. 이·취임식을 마친 안규백 전 장관이 관용차에 올랐다. 강신철 신임 장관과 국방부 간부들이 도열해 배웅했다. 차창 너머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425일. 64년 만의 문민 국방장관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질은 전격적이었다. 8월 30일 대통령실은 6개 부처 개각을 발표하며 강신철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강 장관은 육사 46기로 합참 전략기획부장과 작전본부장,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대장이다.
올해 1월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부임했다가 발탁됐다. 육군 대장 출신 장관은 서욱 전 장관 이후 약 4년 만이다. 안 전 장관 본인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사관학교 통합과 전작권 전환을 매듭짓고 내년 2월 화려하게 여의도로 복귀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임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었다. "오늘 저는 64년 만의 문민 국방장관으로서 12·3 내란종식과 국민의 군대 재건이라는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는 방첩사 해체, 전작권 회복 전기, 핵추진잠수함, 해병대 준4군체제를 성과로 꼽았다. 마지막 인사는 "월락불이천(月落不離天),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였다.
앞서 국방위 결산 심사장에서 한 고별 인사가 그의 속내에 더 가까웠다. "18년 가까이 국방위에서 활동하다 오늘 이 자리를 마지막으로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한다"던 그는 "첫 문민 장관으로서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했다. "내란 종식 과정에서 눈에 밟히는 장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대목에선 말이 흔들렸다.
병역 의혹에 대해서도 스스로 입을 열었다. 신체검사 후 3년이 지나면 면제되는데 그 시한을 앞두고 주소를 옮겨 제 발로 신병교육을 받으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동생뻘 되는 인원들과 훈련을 받았다"며 "물러난 뒤 소상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도 그는 고사성어로 인사를 맺었다.

◆"장관은 왜 안 쏴?"… 총도, 군도 끝내 손에 쥐지 못했다 = 그는 군 출신은 아니다. 다만 국방위 간사와 위원장을 거치며 방산·전작권·군 구조 개편을 파고든 대표적 '국방통'으로 꼽혔다. 그러나 부임 초 실·국장 업무보고부터 삐걱댔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 청사 복도에 돌았다. 국회에서 어깨너머로 익힌 군사 지식으로 수십 년 실무를 쌓은 관료와 장군들을 장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상징적 장면이 있다. 6월 24일 연평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최초로 K2C1 자동소총과 K15 기관총 실사격에 나섰다. 10발을 모두 표적에 명중시킨 대통령은 안 장관을 향해 "장관은 왜 안 쏴?"라고 물었다. 안 장관은 "난 방위병"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북한 김정은의 딸 주애는 없는 리더십이라도 만들겠다고 총을 잡는 판이다. 방위병 출신이라면 더더욱 기관총이라도 쏘겠다고 나섰어야 했다.
일정 자체가 장악을 어렵게 했다. 국방위원 출신인 김종대 전 의원은 "국방부가 장관을 유럽·중동·아시아·미국 순방으로 뺑뺑이 돌렸다"며 "국내에 있을 때도 육해공군 행사와 방산 세미나로 시간이 다 갔다"고 지적했다. 군을 틀어쥐고 무언가 할 시간 자원 자체가 깎여나갔다는 것이다. 그 사이 정보사가 장관에게 직보하는 일일 동향 보고서 '블랙북'은 이두희 차관이 챙겼다는 말이 돌았다.

반면교사가 있다. 기자는 2022년 가을 연희동 자택에서 이순자 여사를 인터뷰했다. 이 여사에 따르면 전두환은 새 부대에 부임하면 '100일 작전'이라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1사단장 시절에는 중대장 이름을 모조리 외웠다. 천둥번개가 치거나 폭설이 내리는 밤이면 감시초소의 중대장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일이 이름을 불러 격려했다. "1중대장, 2중대장" 식으로 부르는 법이 없었다.
아내가 사단에 들르는 날이면 사단장 관사는 대대장·참모들과의 육개장 파티장이 됐다. 제3땅굴을 찾아낸 것도 이 시절이다. 그는 사단장 임기를 1년 남긴 1979년 3월, 소장 계급으로 중장 보직인 보안사령관에 전격 발탁됐다.
사격 일화도 있다. 제1공수특전단장 시절 전두환은 아내에게 "지휘관의 아내라면 소총 사격술 정도는 익혀야 한다"며 직접 총을 쥐여줬다. 장군의 아내에게도 총을 들게 한 군대다. 그 군대의 장관이 "난 방위병"이라며 총을 마다했다. 안규백에 대해선 실·국장 이름도 다 모를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출입기자들과도 끝내 서먹했다.

◆공청회엔 없던 장관, 원고엔 없던 대통령의 '쿠데타' 발언 = 경질의 직접적 장면은 사관학교 통합 공청회였다. 장관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이두희 차관도 나오지 않았다. 육사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한 예비역들의 욕설과 "배신자" 소리는 '실권 없는' 김홍철 정책실장이 온몸으로 받아냈다.
"욕을 하도 먹어 10년은 더 살겠다"는 자조가 나왔다. 김종대 전 의원은 "장차관이 모두 빠지고 실무자가 끙끙거리며 발표를 마친 그 공청회 일주일 뒤에 경질안이 나왔다"며 "이 팀은 총체적 실패"라고 했다.
개혁을 밀수록 반대 진영은 결집했다. 육사 총동창회와 육사구국동지회에 예비역들이 모여들었고, 지지율은 깎였다. 결정타는 병역이었다. 7월 6일 김영수 공익신고센터장은 안 장관이 1984년 방위병 복무 중 약 7개월간 군무를 이탈했다고 주장했다. 체포돼 영창 30일 처분을 받았고, 그 때문에 8개월가량 더 복무했다는 것이다. 안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행정 착오"라며 근무지 이탈이나 영창 입소는 없었다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국방장관에게 '방위병 탈영 의혹'은 그 자체로 치명상이었다.
8월 5일 청와대 업무보고 때 그는 이미 풀이 죽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안 장관에게 "군사 쿠데타가 몇 번이었나"라고 물었다. 이어 "육사 출신들이 한 일인데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고 따졌다. 청와대 한 인사는 "원고에 없던 발언"이라고 전했다. "병역 공세에 위축된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려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과는 역효과였다. 육사 총동창회는 당일 입장문을 내고, 특정 교육기관 전체에 책임을 돌리는 일반화라며 반발했다. 반격의 명분을 대통령이 쥐여준 셈이다.
마지막 출장은 후임이 지명된 뒤였다. 9월 10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천무 18문, 6400억원 규모 수출 계약식에 참석했다. 이 때문에 국회 대정부질문에는 불참했고, 이두희 차관이 대신 나섰다.
후임 인선은 '육사에게 육사 개혁을 맡기는' 절충이다. 강신철 장관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출신이고, 그 전임자인 육사 45기 강건작 장군은 올여름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갔다. 문재인 정부 군맥의 부활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요직을 거치고도 윤석열 정부에서 두 차례 더 진급해 연합사 부사령관에 올랐고, 12·3 당시 연합사에 있어 화를 면했다.
군 안팎에서는 그를 맥아더식 '맥 스타일'이 아닌 아이젠하워식 '아이크 스타일', 즉 친절·소통·통합형 조정가로 분류한다. 안정 속의 점진 개혁에는 적임이라는 평가와, 무리한 개혁 과제를 절충안으로 녹여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온다.

◆문민장관과 '군복 벗은 장관'은 다르다 = 1961년 케네디는 취임 한 달 남짓 된 44세 포드자동차 사장 로버트 맥나마라를 국방장관에 앉혔다. 그는 미 육군항공대에서 통계관리 업무를 하던 장교들인 '휘즈 키즈(Whiz Kids)'와 기획예산제도(PPBS)로 각 군의 예산 칸막이를 부수고 숫자로 장군들을 압도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봉쇄 절차를 두고 맞선 조지 앤더슨 해군참모총장은 이듬해 연임에 실패하고 포르투갈 대사로 밀려났다. 문민장관의 권위는 계급장이 아니라 '장악력'에서 나온다.
지금의 미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극단을 달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임기 4년 중 16개월을 채운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을 SNS 글 하나로 해임했다. 같은 시기 헤그세스는 프란체티 해군참모총장과 슬라이프 공군참모차장을 내보냈다. 5월에는 4성 장군 20% 감축을 지시했다. 2026년 4월에는 이란과 전쟁 중인데도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을 경질했다. 해임되거나 진급이 막힌 장성만 80명을 넘는다. 최근 19개월 기준으로 이만큼 빠르게 수뇌부를 갈아치운 국방장관은 없었다.
칼끝은 '문민 수장'에게도 향했다. 4월 존 펠런 해군장관은 연례 콘퍼런스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는 순간 SNS 한 줄로 해임됐다. 이른바 트럼프를 위한 '차세대 함대 구상'을 트럼프와 직접 조율했다가 패싱당했다고 여긴 헤그세스의 보복이었다는 게 워싱턴의 해석이다. 이어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이 사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훈을 정리해 '육군 변혁 이니셔티브'를 내놓고 초저가 드론부대 창설, AI 기반 전술지휘체계, 방산 조달체계 개편을 밀어붙인 혁신파다.
헤그세스는 그의 파트너였던 조지 참모총장과 혁신 담당 장군들을 차례로 잘라 손발을 끊었다. 후임 참모총장 대행은 우크라이나와 드론 전술을 연마하던 혁신부대를 구식 보병대대로 되돌렸고, 얼마 뒤 걸프 지역 미군기지가 이란 드론에 얻어맞았다. 직언하는 장군을 자르는 군대가 이기는 군대일 리 없다. 인사의 흠결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식물장관'이 아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문민장관과 '군복 벗은 장관'은 다르다. 헌법 제87조 4항은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고만 정한다. 전역 신고를 하고 양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날로 자격이 생긴다. 40대 김장수, 47대 서욱이 육군참모총장에서 곧바로 장관으로 직행했다. 역대 장관 50명 중 절반 이상이 육사 출신이다. 우리 국방장관직이 사실상 제복군인 보직과 계급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던 이유다.
미국은 다르다.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은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못 박았고, 군 출신은 전역 후 7년(제정 당시 10년)이 지나야 임명될 수 있다. 그 미만이면 의회의 특별 면제를 받아야 한다. 마셜, 매티스, 오스틴이 그 예외였다. 유예기간을 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군에서 방금 나온 사람은 군의 이해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스틴 지명자가 "나는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이라고 먼저 선을 그은 것도 그래서다.

◆문민통제는 선언이 아니라 장악력의 문제다 = 문민장관이 필요한 진짜 이유가 여기 있다. 군 인사와 무기사업은 군 내부의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걸린 영역이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산 사람은 그 구조를 끊어낼 수 없다. 기수와 출신, 선후배와 동기가 곧 인사다.
육사 출신 장관이 육사 편중을 시정하고, 각 군 출신 장관이 자기 군의 사업을 깎는 일은 구조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을 대신해 군을 지휘·감독하는 사람과 군을 대표하는 사람은 다른 자리다. 맥나마라가 각 군의 예산 칸막이를 부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군의 상태다.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은 군 인사와 전력사업을 먹잇감으로 노린다. 청탁받은 인사를 올리라고 압력을 넣고, 돈과 표가 되는 무기사업에 손을 댄다. 수뇌부는 눈치만 본다. 한 참모총장은 국회에서 헬기사업에 경제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항모사업처럼 위에서 결정이 내려오면 결정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고 사후 절차를 만들어준다.
광주 반도체 공장을 명분으로 전투비행장을 없앤다 해도, 미국과 진척 없는 핵잠 발표가 정치적 퍼포먼스로 동원돼도, 별 셋·넷을 단 장군들은 박수만 친다. 12·3 당시 명령을 이행했을 뿐인 군인들이 징계 취소 소송에 매달리는 동안, 권한과 책임을 가진 수뇌부는 입을 닫거나 징계위원석에 앉았다.

이 '병풍' 같은 장군들을 틀어쥐라고 있는 자리가 문민장관이다. 군 안에 빚이 없으니 기수를 건너뛴 발탁도, 사업의 백지화도 할 수 있다. 앤더슨 해군참모총장을 물러나게 한 맥나마라가 그랬고, 방식은 난폭하되 헤그세스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안규백은 정반대였다. 군에 빚이 없는 대신 군을 모르는 사람이 됐고, 개혁의 총대는 실무자에게 넘어갔다.
여러 문민장관 후보 가운데 안규백은 그 자리에 올랐다. 역대 정부마다 청문회와 검증의 문턱 앞에서 번번이 접혔던 자리다. 그러나 국방장관에게 치명적인 '방위병 탈영 의혹'이 불거지면서 '식물장관'으로 전락했고, 그를 뒷받침할 전략 참모진 하나 꾸리지 못했다.
내년 국방예산은 8% 늘어 73조원대다. 몸집이 커지는 만큼 의식이 선진화되지 않으면 '돈 맛에 취한 군대'가 될 뿐이다. 무기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님은 우크라이나와 이란이 증명하고 있다. 그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할 사람이 군의 이해에서 자유로운지, 그리고 그 결정을 관철할 힘이 있는지. 문민장관 실험이 남긴 질문은 이것이다. 안규백 장관의 '월락불이천,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는 고별사처럼, 달은 졌다. 그러나 문민장관이라는 '하늘'마저 함께 지게 해선 안 된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