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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판사에서 여당 대표까지…'미스터 스마일'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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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와보니 실망도…아내 말 듣고 크게 반성"
"옛 정치, 여야 구분 없이 동료애·끈끈함 있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가난하지만 열기 있고 나라사랑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참 그리운 그 시절이 제 인생의 밑바탕이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출신 황우여 상임고문은 20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판사,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삶을 돌아봤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30일 촬영됐다.

황 상임고문은 20년 넘게 판사로 재직하며 MBC 언론통폐합 결정을 뒤집는 'MBC 주식 반환' 판결, 국내 1호 재산분할 판결, 국민저항권을 인정한 명동 사건 등 굵직한 재판을 담당했다.

정계 입문은 이회창 당시 대법관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황 상임고문은 "정치 가문인 아내는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자녀들은 절연하듯 반대했다"며 당시의 복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정치 초기에 실망과 우려도 컸지만 아내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을 앞두고 당대표실을 광주로 옮기는 등 57일간 호남 곳곳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다. 그는 "당시 우리 당이 최초로 호남에서 두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진=뉴스핌TV]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난 황 상임고문은 송림초·인천중·제물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와 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69년 제10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를 비롯해 춘천·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뒤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을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어 황 상임고문은 1996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16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인천 연수구에서 내리 당선되며 5선 의원을 지냈다.

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국회 선진화법안 등을 통과를 주도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첫 새누리당 대표를 맡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올해는 21대 대선 경선과 당 전당대회에서 각각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황앤씨로펌 대표변호사이자 당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황 상임고문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오늘은 5선 당대표 출신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 고문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고문님, 안녕하세요. 요즘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황우여 상임고문, 이하 황 상임고문)
그동안 밀려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잠깐 외국에도 갔다 오고요. 동지들이 고생하면 제가 변호사니까 찾아뵙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신 기자)
정치 후배님들도 많이 만나시나요?

▲(황 상임고문)
네, 연락 오면 제가 만나러 가고요.

-(신 기자)
네, 고문님 그럼 이제 어린 시절 이야기 좀 여쭤볼게요. 1947년 인천 송림동에서 자라셨는데 당시 어떤 꿈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송림동이 인천에서 아주 어려운 동네예요. 인천이 그때는 아주 조그마한 도시였는데 수도국산 뭐 이러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 반이 대개 한 80명으로 12반까지 있어서 한 학년이 거의 1000명 가까이 되고. 한 학교는 5000~6000명 되는 그런 학교를 어렸을 때 다녔죠. 친구들하고 잘 지냈고 가난했지만 안전하고 화목하고 뭔가 열기가 있는 그러한 생활, 그때 당시는 나라 사랑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국산품 쓰자고 하고, 교장 선생님도 말씀하실 때는 웅변조로 얘기를 하시고 굉장히 독립투사 같은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고 또 이제 6.25 전반에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천막에서 공부했는데 그래도 참 그리운 시절이었죠.

-(신 기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서울대 법대 전공하시고 28살이라는 사실 되게 어린 나이에 판사 생활을 시작하셨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꿈이 판사셨는지.

▲(황 상임고문)
고시 붙기는 69년도 대학교 졸업하면서 합격을 해서 군대 갔다 오니까 사법대학원 2년에 군대 갔다 오니까 5년. 그렇죠. 만으로는 한 스물일곱 정도에서 판사 시절을 시작했는데 인천이 법조 분위기가 아니에요. 고시 보고 그러는 것보다는 장사하고 특히 이공계가 강하고 그런 도시 분위기였는데 저도 그때 법대가 뭔지 모르고 갔는데 그 계기가 맨 처음에는 이제 농대 가려고요. 이공계에 가서 공부하다가 우리 교장 선생님이 '땀을 흘리는 것이 최고다'라고 해서 '유한흥국(流汗興國) 땀을 흘려야 나라가 흥한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땀 제일 많이 나는 학과가 농과다 그래서 제가 농과를 가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집에 농토가 없잖아요. 그때 역사 토인비 신드롬이 있어서 역사학자가 되려고 문과로 바꿨는데 아버님은 자꾸 상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제 은행이 취업이 제일 좋은 때니까.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겼고, 특별히 마음도 안 정해지고. 또 특별히 잘하는 일도 없는 사람은 법대가 좋다라는 유진호 선생님의 수필을 하나 읽었어요. 그래서 법대를 가게 된 거예요. 고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제가 산 타는 걸 좋아해서 암벽 등반에 아주 매료 당해갖고 대학교 3학년 넘어까지 그러고 나니까 영장이 나오는 거예요.

급한 마음에 '아 그러면 나도 변호사 시험을 하나 따놓고 취업 걱정에서 벗어나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그때부터 고시를 봐서 다행히 이제 졸업할 때 합격을 해서 이제 영장 기피는 안 했죠. 제가 만약에 그때 고시가 안 됐으면 저는 군대 갔다 와서 방향을 다른 걸로 바꾸려고 마음을 먹고 했는데 다행히 변호사 자격을 땄죠.

-(신 기자)
그러면 판사로는 총 몇 년을 재직하셨나요?

▲(황 상임고문)
한 20년 넘게 했죠. 부장 판사까지 했으니까요.

-(신 기자)
돌아보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화나 이런 게 있으셨을까요?

▲(황 상임고문)
큰 재판을 많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거는 민사부장 할 때에는 MBC가 언론 통폐합을 해서 다 이렇게 묶였어요. 근데 그걸 '강압에 의해서 한 것이다'라고 해서 취소하는 소송이 들어왔어요. 제가 보니까 '이거는 좀 우리 민사법상 문제가 있다. 취소해라 다시 정당하게 수용을 하든가 뭐 다른 계약을 해라' 이런 판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MBC 사건이 그때 사회 이슈가 됐었고.

그리고 제가 가정법원에 있을 때는 재산 분할을 처음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최초의 1호 사건이었어요. 그때 법이 바뀌어갖고 이혼할 때 위자료가 아니라 재산을 나눠가지라고 하는 게 법이었는데, 저는 남자 대학생과 여자 대학생이 결혼해 가지고 가정은 여자 대학생이, 부인이 책임지고 또 외부에서 여러 재정적으로 충당하는 건 남자가 했다고 하면 두 사람 사이에 그 재산은 공동으로 모은 것으로 합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재산을) 반반씩 하라고 판결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뒷말이 많았죠. 국제적으로는 대개 여자한테 3분의 1 주라 그러는 게 기준이었나 본데 우리는 양성평등 아니에요. 그리고 또 부부가 그렇지 않고는 누가 가정을 지키겠어요? 그때만 해도 대부분 주부들이 가정을 지키고 아기 기르고 그런 데 전념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판결이 기억에 남고.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제가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단을 내린 판결이 있었어요. 명동 사건이라고 굉장히 큰 사건인데 성직자도 있고 그래서 제가 사실은 피하려다 목사님들이나 여러분들 얘기가 그냥 맡겨줬으면 하는 게 옳다 그래서 했죠.

그때 전상석 부장께서 이제 재판정이셨는데 (저항권 문제를) 한번 연구해서 써보라고 해서 제가 각종 문안을 섭렵하고 저항권 부분을 정리했죠. 그 판결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결이었죠. 대법원에서도 그 부분은 받아들여지고 그랬어요.

-(신 기자)
판사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잘 하시고, 오래 하셔서 애정이 많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정계로 넘어오셨을 때 고문님 스스로나 아니면 가족분들 우려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원래는 교수 하라고 우리 선생님이 교수 수업을 시켰는데 판사 한 다음에는 그걸 천직으로 생각하고 판사에 충실하려고 했죠. 그런데 당시 우연치 않게 MBC 판결 같은 것이 뒷말이 있었어요. 당시 이회창 대법관께서 감사원장을 가시면서 저보고 같이 좀 가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아주 훌륭한 법관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덕망이 높은 분이거든요.

제가 기도하고 나서는 그냥 모시고 가야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고 감사원까지 가는 것은 괜찮았는데 감사원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겹치면서 결국은 이회창 감사원장이 정계에 들어오면서 또 저보고 가자고 그러셔서 그때는 좀 어떡할까 하고 고민했죠. 감사원까지만 해도 사법부지만 정계는 우리 사법관들로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거거든요.

제가 같이 하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우리 아내가 정치인 집안의 딸내미예요. 그래서 아내는 아버지 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결정이 된다면 자기는 따르겠다고 그랬는데 우리 애들은 아버지하고 딱 절연을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정치한다는 말을 입 밖에도 안 내놓고 그래서 큰딸이 결혼할 때 아무도 몰랐어요. 교회에서 조그맣게 모여서 결혼했는데 큰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겨레 신문사 기자였어요. 걔가 와보더니 '저 사람이 네 아버지냐' 그래가지고는 요만한 기사를 사후에 냈어요. 그래서 알려지게 됐죠. 그런데 애들이 아버지가 정치인이면은 어떤 그런 데 휩쓸릴까 봐 저도 애들은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죠.

-(신 기자)
자녀분들은 반대가 좀 있었더라도 사모님은 이제 정치 생활 하실 때 고민 상담이나 조언 같은 것도 많이 하셨겠어요.

▲(황 상임고문)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주변에 판사나 이런 고위 관료로서 대하던 사람들하고 다른 거예요.
그래 갖고 어떤 때 실망도 되고 너무 걱정도 되고요. 집에 와서 나도 모르게 좀 훌륭한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불만스럽게 했나 봐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이 성경에 다윗 임금을 따라다니던 한 300명가량, 요샛말로 하면은 불한당이나 정말 오갈 데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다윗 임금은 그런 사람들하고 나중에 훌륭한 임금이 되는데 내가 볼 때는 당신 주변의 사람들 아주 훌륭하더라' 이러더라고요.

그때 크게 반성했죠. 이게 내 문제구나 하고. 그래서 주변 분들을 평하고 그러는 거를 제가 딱 금하고 '그래, 맞아. 다윗 임금과 같이 했던 사람들보다는 100배 훌륭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이제 마음을 바꿨고요.

우리 사모님들이 정치인들한테 큰 영향을 미쳐요. 고생하는 것도 우리가 좀 알아드리고 그래서 남편의 일에 그냥 따른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서 잘 좀 대우를 해 드렸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애들은 반대한다기보다도 그걸 이제 절연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우리는 우리다' 그러는데 우리 애들이 그게 좀 강해가지고요. 그런데 선거 때는 아주 열심히 도와주죠.

-(신 기자)
정치 첫 시작을 신한국당에서 하셨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당시에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지금은 완전히 자유롭고 선수나 이런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정치 분위기인데 옛날에는 선배들에 대한 것이 아주 엄했어요. 선수에 따라서 아주 딱 정해져 있고 그건 벌써 옛날 얘기죠. 그때는 선배들한테 배우려고 그러고 초선에는 뭘 하고 재선에는 뭘 하고 이게 다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대로만 이렇게 잘 진행하면은 배울 수 있고 또 동료들도 형성이 되고 그러는 분위기고. 그때는 국회의원을 '선량'이라고 그래서 상당히 존경하는 분위기고 지도력이 부여되는 그런 시기였는데 벌써 옛날 얘기죠.

-(신 기자)
정치하시면서 어려우실 때 도움이나 조언을 받았던 정치인 분들도 있을까요?

▲(황 상임고문)
그때 당시에는 저희가 우리 당내뿐만 아니라 여야가 참 친했어요. 아주 친해서 어려운 일이거나 뭐 이렇게 의논하고 서로 의지했던 게 김영진이라고요. 해남 완도 출신 국회의원인데 나보다 선수는 한 해 빠르셨고 나중에 농림부 장관도 지내시고 그런 분인데 같은 이제 교회 장로로서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누면서 우리 당과 민주당의 당론에 좀 어긋나더라도 누가 뭘 하겠다 그럴 때는 서로 도왔어요. 입장을 같이 하고 그래서 당내를 설득하면서 그때 그렇게 했습니다.

-(신 기자)
당시가 조금 더 끈끈했던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여야를 넘어서도 뜻이 맞고 올바른 일이라고 하면 마음을 합치는 의원들이 형성이 되고 그랬어요.

-(신 기자)
새누리당 대표도 역임하셨잖아요. 사실 새누리당 때도 내분이 굉장히 심하고 당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혹시 그때 힘들면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황 상임고문)
새누리당 당대표를 할 때는 그때 대선을 치러야 되는 당 대표였거든요. 어려운 자리죠.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당 대표의 최대 임무가 대선을 성공시키는 거였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핵심이 호남이 우리 당을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일 것 같아요.

대선 기간 동안에 대표실을 광주로 옮겼어요. 그래서 광주에서 조그마한 호텔에서 머물면서 지냈죠. 57일 동안 호남을 샅샅이 다니면서 선거 유세하고 또 무슨 민원이 있으면 우리가 그때 여당이었으니까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최고위회의도 웬만하면 내려오라고 그래서 거기서 하고 이렇게 하면서 호남 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 저희가 두 자릿수의 지지를 받았어요. 최초죠.

수도권에는 호남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거기서 20% 이상의 지지가 나왔다라고 저는 보는 거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 또 한편에서는 호남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호남이 아주 산천 경계가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있어요. 그래서 음식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또 호남 분들이 아주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해요. 그래서 한 번 이렇게 인연을 맺으면 아주 절대적이에요. 지금도 그분들하고 교우를 하고 이렇게 지내는데 좋은 추억이 됐죠.

-(신 기자)
고문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호남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한데요.

▲(황 상임고문)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현지인의 중용이에요. 수도권에 와있는 호남 출신 분을 장관에 앉히고 또 무슨 귀한 일을 맡기고 그러는 것도 고맙지만 현장에 있는 분들 직접 불러야 호남인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호남에서 생활하는 호남인을 발탁해 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와있는, 고향만 호남인 분들만 있다면 호남분들이 '우리도 다 서울 가야 되잖아요' 이렇게 느끼거든요. 그 말은 제가 아주 뼈아프게 받아들여서 그 후에 우리 당에게 제가 '지방을 우대한다고 할 땐 그 지방에 있는 분들을 모셔서 정무직이나 당직을 드리는 게 맞다'고 얘기하죠.

-(신 기자)
고문님 혹시 별명 뭔지 알고 계세요? '어당팔'이라고 '어수룩하지만 당수가 8단'이란 별명인데 혹시 그 별명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요.

▲(황 상임고문)
정치부 반장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제가 당수는 모르겠지만 검도는 7단에요. 당수는 입문도 안 했는데 이제 (기자들이) 저 사람이 뭘 할까 하고 보면은 '그래도 열심히 해서 일을 해결해내는구나' 생각해서 칭찬 반 놀리는 것 반으로 지은 별명인 것 같습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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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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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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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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