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1988년 11월 10일 리크루트 의혹에 사과했다
- 가네마루 신 스캔들 뒤 1993년 자민당 소장파가 내각 불신임안에 가세했다
- 부패 연쇄와 정치개혁 요구가 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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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체제의 몰락, 의회 속기록에 새겨진 파열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후 일본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정·관·재 카르텔의 모순은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만들어내던 그늘 아래서 터져 나온 리크루트 사건은, 자민당의 장기집권 구조가 어디까지 썩어 들어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88년 가을부터 1989년 봄에 걸쳐 열린 제113회·제114회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는 국가 정책을 심의하는 의사당이 아니라, 권력의 심장부를 향한 거대한 부패 심문실이었다.
1988년 11월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속기록은 정경유착의 민낯을 마주한 의회의 격렬한 분노를 생생히 전한다.

우에다 데쓰(上田哲) 의원(일본사회당): 다케시타 총리! 리크루트 코스모스의 미공개 주식이 총리의 비서와 친족, 나아가 자민당 핵심 파벌의 영수들에게 수천 주, 수만 주씩 사전 양도되어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겼습니다! 이것이 정당한 정치자금입니까, 아니면 명백한 뇌물입니까! 국민은 치솟는 땅값과 물가에 신음하는데, 권력자들은 밀실에서 주식 투기로 배를 불렸단 말입니까! (장내 분노의 고함, 야당 의석 책상을 치며 "총리는 사퇴하라! ", "진상을 은폐하지 마라!")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총리대신: 본인 및 비서의 주식 매매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과 국회에 심대한 정치적 불신을 초래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은 추호도 없었으며, 정치자금 관리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정치개혁을 단행하여 국민의 신뢰를 되찾겠습니다. (야당 의석 일제히 야유와 폭소, "거짓말 마라!", "도마뱀 꼬리 자르기다!", 의장석에서 장내 소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령(振鈴)을 수차례 격렬히 흔들어 울림)
속기록의 괄호 안에 박힌 빗발치는 야유와 의장의 찢어질 듯한 종소리는, 성장을 견인하는 유능한 보수라는 자민당의 오랜 정당화 언어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1989년 다케시타 내각은 결국 내각 지지율이 한 자릿수(5.6%)까지 추락한 끝에 총사퇴했고, 파벌 영수들의 비서들이 잇달아 자살하거나 기소되는 비극 속에서도 자민당 내부의 이권 구조는 쉽게 해체되지 않았다.
이 부패의 고리는 1992년 자민당 최대 파벌의 최고 실세 가네마루 신(金丸信) 부총재가 도쿄 사가와규빈(東京佐川急便)으로부터 5억 엔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스캔들로 정점에 달했다.
가네마루의 자택과 사무소 압수수색에서 수십억 엔대의 현금과 무기명 채권, 심지어 금괴 수십 킬로그램이 쏟아져 나왔을 때, 일본 국민이 느낀 절망감은 극에 달했다. 1992년 11월 2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의 증인 신문 속기록은 전후 일본 정치가 도달한 참담한 파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야당 의원: 단돈 20만 엔의 약식 기소 벌금형으로 5억 엔의 뇌물 사건을 무마하려 한 배후는 누구입니까! 왜 폭력단 두목을 동원해 총재 선거를 공작하고 검은돈을 나눴습니까! 이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모습입니까! (장내 격돌, 여야 의석 쇄도하여 몸싸움 직전의 대치, "검찰도 공범이다"", "정치 개혁 즉각 단행하라!")
결국 1993년 6월 1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이 공약했던 정치개혁 법안 처리를 좌절시키자, 분노한 야당은 물론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와 하타 쓰토무(羽田孜) 등 자민당 내 소장파 세력까지 가세하여 내각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1955년 이래 38년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군림했던 '55년 체제'가 마침내 파멸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의 번영에서 출발해 1993년 55년 체제의 붕괴에 이르는 30년의 여정 동안, 일본 중의원 속기록에 새겨진 언어의 궤적은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빛과 짙은 그림자를 극명하게 웅변한다.
제국의회의 침묵을 깨고 정부의 외교와 군사를 심문대에 세운 것은 분명한 민주적 성취였다. 그러나 '개발'과 '지역'의 실물 언어로 유권자를 포섭하고 고엔카이와 족의원을 통해 다져놓은 장기집권의 성벽은, 정치를 공공의 규범적 토론이 아닌 폐쇄적인 이권 배분 카르텔로 전락시켰다.
전전의 군국주의가 군홧발로 의회의 숨통을 끊었다면, 전후의 금권정치는 넘쳐나는 성장 자금과 구조적 유착의 그물망으로 민주주의의 영혼을 질식시켰다. "얼마나 잘살게 해 주었는가"라는 번영의 약속으로 부패의 면죄부를 사려 했던 55년 체제의 붕괴는, 철저한 감시와 제도적 견제가 결여된 경제성장은 결국 민주주의 그 자체를 집어삼키는 독이 된다는 사실을 속기록의 서늘한 활자로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55년 체제의 종말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일본 국회 속기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떠오른 어휘는 단연 '정치개혁'이었다. 록히드와 리크루트 사건, 사가와규빈 스캔들로 이어진 부패의 연쇄 고리는 도덕적 반성을 넘어 제도 자체를 수술해야 한다는 구조적 각성을 촉발했다.
1991년 9월 제121회 국회 중의원 본회의 단상에 선 의원들은 정·관·재 유착이 의회민주주의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성토하며 선거제도와 정치자금법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책임'의 의미는 1945년 전쟁 방지 실패에 대한 과거의 책임에서, 1960년대 민생 향상의 책임, 1970년대 공직 부패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쳐, 마침내 부패를 양산하는 제도적 틀 자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구조적 책임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었다.
1993년, 곪아 터진 위기는 마침내 정치적 파국으로 치달았다.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정치개혁 좌절에 반발한 자민당 소장파의 집단 탈당과 내각 불신임안 가결은 38년간 철옹성 같았던 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가토 준코(加藤淳子)가 규명했듯, 자민당 내부의 분열과 이탈은 1993년 총선 패배로 이어졌고,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를 수반으로 하는 비자민 연립정권이 출범했다.
1994년 3월 호소카와 총리는 중의원 본회의에서 '책임 있는 변혁'을 내걸고 정치·행정·경제 개혁을 선언했다. 속기록에 적힌 본회의장의 박수는 수십 년간 권력을 독점했던 집권당이 선거와 의회 다수의 이동을 통해 평화롭게 야당으로 내려앉았음을 공인하는 순간이었다.

경제대국의 역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1993년 55년 체제의 붕괴까지 30년의 속기록은 일본 정치언어의 명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토 에이사쿠 시대의 '오키나와', '비핵', '주권'이 외교적 자주의 한계를 물었다면, 다나카 가쿠에이 시대의 '개발', '지가', '공해'는 성장의 분배와 비용을 따졌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속기록을 지배한 '정치윤리', '국정조사', '정치개혁'은 권력의 정당성을 심문하는 언어로 발전했다. 군부의 서슬 아래 비판 자체가 반역이 되었던 전전 제국의회와 달리, 전후 일본 국회에서는 총리의 외교를 추궁하고 부패를 단죄하며 집권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합법적 견제의 언어가 온전히 살아 숨 쉬었다. 이는 서구권 밖에서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적 절차를 지켜낸 중대한 성취였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장기집권의 결합은 일본 정치에 미결의 숙제를 남겼다.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화려한 번영의 이면에서, 정치는 정책 대결과 상호 신뢰에 기반한 포용적 숙의보다는 파벌 중심의 이권 배분과 정경유착이라는 특유의 풍토에 갇혀 있었다.
결국 1993년 55년 체제의 균열은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제도와 풍토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둘러싼 기나긴 개혁 논쟁의 출발선이었다. 1994년 선거구 개혁을 필두로 시작된 일련의 시도들은 이후 일본 의회의 언어와 권력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새로운 시험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다음 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1994년 선거제도 개혁 이후 정치개혁이 의회의 중심 화두로 어떻게 정착해 나갔는지, 버블 붕괴 이후 마주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침체기 속에서 일본 의회는 어떠한 정치적·정책적 논의를 치열하게 이어갔는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트럼프 시대로 대변되는 요동치는 국제질서와 미일동맹의 재편 속에서 일본 의회의 언어가 어떻게 대응하고 진화해 왔는지, 그 생생한 궤적을 통해 오늘날 일본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최종적으로 짚어볼 것이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