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1972년 7일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리에 올라 개발정치를 내세웠다
- 열도개조론으로 신칸센·도로 확충과 지역분산을 약속했다
- 그러나 토지투기·정경유착이 번져 금권정치의 상징이 됐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다나카 가쿠에이와 '개발'의 언어
1972년 7월, 명문 도쿄대 법학부 출신 엘리트 관료들이 지배하던 보수 본류의 틈바구니에서 고등소학교(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흙수저 출신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가 총리에 등극했다.
그는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가장 이례적이고 강력한 대중적 흡인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다나카의 정치 언어는 전임 이케다 하야토가 제시했던 거시적인 소득과 분배의 언어를 콘크리트 냄새가 묻어나는 개발과 지역의 언어로 즉각 확장시켰다.
총리 취임 직전 출간된 그의 저서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은 도쿄와 오사카 등 태평양 연안에 기형적으로 과밀화된 인구와 산업을 고속철도(신칸센)와 고속도로망을 통해 동해안과 벽지 등 전국 지방으로 분산하고 재배치하겠다는 방대한 국토개조 구상이었다. 출간 즉시 백만 부 이상 팔려나간 이 책은 단순한 정책 제안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방의 낙후된 삶에 지쳐 있던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권력의 직접적인 개발 공약서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치인 개인의 베스트셀러 저서가 내각 출범과 동시에 국가 최고의 공식 의제로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1972년 11월 8일 제70회 특별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장, 질의에 나선 야당 의원은 《일본열도개조론》을 단상 위로 치켜들며 이것이 총리 개인의 사적 저작인지 아니면 정부의 공식 국정 지침인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야당 의원: "총리가 펴낸 책이 열도 전체의 땅값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일본열도개조론》은 내각의 공식 정책입니까, 아니면 총리 개인의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까?" (장내 웅성거림)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총리대신: "책 자체는 저 개인의 저서입니다. 그러나 일본 열도의 개조라는 근본적 방향성은 앞으로 정부가 채택해야 한다는 점에 내각 전원이 확고히 동의하고 있습니다. 총리의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이 방향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이미 천명했습니다." (여당 의석 일제히 박수와 "옳소!", 야당 의석 "투기를 조장한다!" 고함)
다나카의 독보적인 정치적 역량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휘되었다. 그는 경제성장을 경제기획청의 추상적인 거시 통계 지표로 말하지 않았다. 고속철도 레일의 길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내 고향 앞마당에 들어설 공장과 공공병원, 깨끗한 상하수도처럼 지방 유권자가 아침에 눈을 뜨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성의 언어로 전환했다.
중앙정부의 막대한 예산으로 국토를 갈아엎으면 바로 여러분의 가난한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는 토건국가적 환상의 언어였다. 1973년 7월 11일 제71회 국회 참의원 본회의 단상에서도 다나카는 거침없는 특유의 탁성으로 열도개조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총리대신: "국토의 편중된 이용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 맑은 공기와 푸른 녹지, 맑은 물이 숨 쉬는 살기 좋은 전원도시를 전국에 건설할 것입니다! 지가 급등과 환경오염은 철저한 토지 정책을 통해 반드시 차단하겠습니다." (단상 앞뒤로 여당 의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야당 의석에서 "거짓말 마라! 땅값이 몇 배로 뛰었는가!" 야유 교차)
그러나 의회는 권력이 휘두르는 화려한 수사 뒤편에 도사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즉각 추궁하고 나섰다. 1972년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열도개조론 발표 직후 전국을 강타한 광란의 토지 투기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지가 상승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의 격렬한 공세가 기록되어 있다.
야당 의원: "총리의 책 한 권 때문에 전국의 산림과 농지가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대기업과 부동산 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토지 투기 광풍을 일으킨 것 아닙니까!" (야당 의석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 "총리는 사죄하라!")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총리대신: "지가 급등의 근본 원인은 대도시의 과도한 과밀 집중 때문입니다. 신칸센과 고속도로로 지방을 연결해 산업과 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이야말로 투기를 잡는 가장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해법입니다." (여당 의석 "그렇다!", 야당 의석 실소와 고함, 장내 소란에 의장 종을 울려 주의 촉구)

이 공방은 전전 제국의회와 질적으로 단절된 전후 민주주의 의회의 성숙을 선명하게 입증한다. 야당 의원들은 국가의 개발 정책에 의문을 던진다고 해서 비국민이나 매국노라는 사상적 탄압을 받지 않았다.
정부가 아무리 압도적인 국가적 번영을 기치로 내걸더라도, 그 정책이 실제로 인플레이션과 토지 가격을 폭등시켰는지, 개발의 과실이 재벌과 토건족에게만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국토의 난개발과 환경 파괴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회의록에 낱낱이 기록하며 검증할 수 있었다. 국가 시책의 비용과 효과를 대낮의 국회에서 계량하고 비판하는 의회 본연의 감시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눈부신 개발의 정치가 일본 민주주의의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구조적 딜레마를 잉태했다. 중앙정부가 막대한 재정 투융자와 대규모 공공사업을 전국에 배분하기 시작하자, 지역구 정치인들의 생존 조건은 정파적 이념이나 거시적 국정 비전이 아니라 중앙에서 얼마나 많은 예산과 철도, 댐과 도로를 지역구로 끌어올 수 있는가(이른바 이권 유도)로 환원되었다.
지역 유권자들에게 그것은 흙탕길이 아스팔트로 바뀌는 실질적인 생활 개선이었고, 지역구 의원에게는 다음 선거의 당선을 영구화해 주는 황금 티켓이었으며, 토건 대기업에는 막대한 관급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생명선이었다. 예산 배분권, 지역구의 표, 대기업의 정치자금이 빈틈없이 맞물리는 완벽한 공생 구조가 의회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절차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1955년 체제를 단순히 부패와 정경유착으로 점철된 장기집권이라는 흑백논리로 폄하하기는 어렵다. 자민당 정권은 실제 고도성장의 달콤한 과실을 지방 구석구석까지 도로와 일자리라는 실물 형태로 배분했고, 일본 유권자들은 경쟁적인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의 공간에서 스스로의 합리적 선택을 통해 자민당에 반복해서 표를 던졌다.
정치학자 T. J. 펨펠(T. J. Pempel)이 지적했듯, 일본은 비서구권에서 파시즘이나 권위주의 독재로 퇴행하지 않고 안정적인 의회민주주의의 외형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단일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영구 집권을 누린 매우 예외적이고 비범한 민주주의(Uncommon Democracy)였다.
그러나 유권자의 지지와 경제적 성공으로 획득한 이 견고한 민주적 정당성은, 머지않아 정경유착과 금권정치라는 거대한 악성 종양을 덮어주는 완벽한 방패막이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모순의 한복판에 다나카 가쿠에이가 서 있었다.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의 투박하고 소탈한 화법, 거침없는 서민 친화적 제스처,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였던 호탕한 웃음은 오래지 않아 부패와 돈 선거의 본질을 은폐하는 기만적 연기로 전락했다. 1974년 다나카 금맥 스캔들이 터지며 그가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하고, 이어 터진 록히드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대중이 열광했던 그 소탈함은 차가운 냉소와 경멸의 대상으로 뒤바뀌었다.
다나카는 스스로 거대한 부패의 화신이자, 동시에 구조화된 금권정치 시스템이 낳은 상징적 희생양으로 권좌에서 쓸쓸히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퇴장한 뒤에도 일본 정치의 토양에 뿌리내린 어두운 그림자는 결코 걷히지 않았다.
정책적 비전 대신 돈과 이권의 교환으로 유지되는 정치, 대중의 신뢰를 배신한 권력의 민낯은 일본 의회민주주의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구조적 불신의 멍에를 남겼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름의 성공이 과연 언제까지 권력의 구조적 부패에 면죄부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일본 민주주의는 이제 그 피할 수 없는 질문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경제성장과 조직적 충성의 공존
전후 일본의 선거 정치를 해부한 제럴드 커티스(Gerald L. Curtis)는 1971년 저작 《선거 캠페인 일본 스타일(Election Campaigning Japanese Style)》에서 일본의 자유선거가 서구식의 순수한 정책 경쟁만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선거에 나선 보수 후보들은 정당 공약 이전에 개인 후원 조직인 고엔카이(後援会), 농협과 토건업을 위시한 지역 직능단체, 그리고 관혼상제를 아우르는 끈끈한 지연과 혈연의 그물망을 통해 유권자를 포섭했다. 이 정치문화는 전체주의적 강제가 아니었다.
유권자에게는 야당을 지지할 자유와 투표의 비밀이 보장되었으며,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공권력의 탄압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투표함 앞에서 행사되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이면에는 조직적 의리, 지역 개발의 실리, 그리고 유력 정치인과의 사적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구속력이 깊숙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 관계는 전전(戰前) 제국 일본이 천황과 국가에 맹목적 복종을 강요했던 전체주의적 충성과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억압과 처벌의 공포로 유지되던 과거의 국가주의 언어와, 민주적 선거 경쟁 속에서 상호 이익의 교환으로 형성된 후원관계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
그러나 정당 파벌, 후원회, 그리고 인허가권과 예산으로 결속된 기업 집단이 유권자의 표심을 촘촘히 조직하고 유도하는 핵심 기제로 군림했다는 사실은, 형식적 제도의 존속을 넘어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질을 가늠할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 사례의 독특성은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형과 폐쇄적 조직 충성이 상호 충돌하여 파괴되지 않고, 기묘한 공생 관계를 형성하며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개개인은 헌법적 자유 속에서 투표했지만, 파벌과 후원회는 그 자유로운 선택을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 묶어두는 거대한 제도적 방파제였다.
세수가 넘쳐나고 국민 생활수준이 가파르게 향상되며 1968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던 시기에는 이 이중적 구조가 품은 모순이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일본은행을 비롯한 정책 당국 역시 관료의 치밀한 산업정책, 메인뱅크의 금융 지원,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에 기댄 노동자의 높은 기업 충성도가 빚어낸 성장의 선순환을 자축했다.
경제학자 아오키 마사히코(青木昌彦)가 1988년 저작 《일본 경제의 정보, 유인 및 협상(Information, Incentives, and Bargaining in the Japanese Economy)》에서 체계화한 '일본형 경제 시스템(J-모드)' 모델처럼, 정부와 금융, 기업과 노동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장기적 신뢰와 협조 체제는 전후 부흥의 가장 효율적인 제도적 해법으로 찬사를 받았다. 경제적 번영의 찬란한 햇살 아래서 정경유착과 후원회 정치는 국가 성장을 견인하는 필수적인 윤활유라는 면죄부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로 성장의 엔진이 식어가고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곪아가던 대형 정경유착 스캔들이 터져 나오자 그 견고하던 구조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정치학자 사토 세이자부로(佐藤誠三郎)와 마쓰자키 데쓰히사(松崎哲久)가 1986년 저서 《자민당 정권(自民党政権)》에서 정밀하게 해부했듯, '유능한 정책 조정'으로 포장되었던 관료와 자민당 정무조사회, 특정 이익집단의 유착은 실상 '족의원(族議員)'들이 이권을 독점 배분하는 폐쇄적 포획 구조에 불과했다.
여기서 족의원이란 건설, 농림, 운수, 통신 등 특정 행정 분야에 장기간 몸담으며 해당 관료 부처와 유관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베테랑 중진 의원 집단을 뜻한다. '건설족', '농림족', '운수족' 등으로 불린 이들은 소관 부처의 예산 편성권과 인허가권을 방패 삼아 업계로부터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그 대가로 지역구와 후원 기업에 대규모 관급 공사와 보조금 특혜를 몰아주는 이권 중개자로 군림했다.
번영을 약속하던 정치경제 연합이 실상은 국가 예산을 사유화하고 정책 결정의 공공성을 왜곡하며 의회 민주주의를 마비시키는 거대한 부패의 카르텔이었음이 백주대낮에 폭로된 것이다.
이 역사적 균열의 징후는 1976년 2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와 본회의장 속기록에 날것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미국 상원 처치 청문회를 통해 록히드사의 대규모 대정부 뇌물 공작이 폭로되자, 중의원 회의장은 국가의 미래를 논의하는 정책의 전당에서 피고인을 심문하는 격렬한 법정으로 돌변했다. 1976년 2월 6일과 9일 예산위원회 단상에 오른 야당 의원들은 번영의 수사학 뒤에 은폐되어 있던 조직된 침묵의 카르텔을 향해 거침없는 포화를 퍼부었다.
가와카미 다미오(川上民雄) 의원(일본사회당): "총리! 록히드사가 고관들에게 뿌린 거액의 검은돈이 자민당 정권의 파벌 유지와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국가의 최고 정책결정권과 항공기 선정이 외국 기업의 뇌물에 의해 농락당했단 말입니까! 이것이 집권당이 자랑해 온 전후 민주주의의 실체입니까!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돈과 다국적 기업의 대리인이었단 말입니까!" (장내 극심한 소란, 야당 의석 일제히 기립하여 "총리는 진상을 밝혀라!", "정·관·재 유착을 규명하라!" 고함)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총리대신: "사태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법 당국 및 미국 측과 긴밀히 협력하여 진상을 규명하는 데 어떠한 성역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금권정치를 타파하고 헌정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총리의 직을 걸고 모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여당 의석 침통한 침묵, 야당 의석 "말뿐인 규명이다!", "수사 자료를 즉각 국회에 제출하라!" 고함, 의장석에서 장내 정리를 위해 진령(振鈴)을 격렬히 흔들어 울림)
속기록의 괄호 속에 생생히 남겨진 장내의 극심한 소란과 찢어질 듯 울리는 의장의 종소리는, 경제성장의 과실로 유권자를 포섭하고 조직적 충성을 조장해 온 일본 보수정치의 언어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상징했다.
"우리가 여러분의 생활을 얼마나 향상시켰는가"라며 지지를 호소하던 정당화의 언어는, "도대체 누구의 돈으로 권력을 샀는가"라는 의회의 냉혹한 질문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전후 일본 민주주의는 군홧발의 위협에서 벗어난 대신, 자유선거라는 합법적 외피 속에 안주해 온 '조직화된 금권과 이권의 카르텔'이라는 한층 더 음습하고 구조적인 민주주의의 질적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