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엉망이나 야구는 세계 1위" 베네수엘라 수도 열광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18일(한국시간)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 9회말 마지막 삼진이 잡히던 순간, 가장 먼저 폭발한 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였다. 베네수엘라의 첫 WBC 우승이 확정되자 수도 중심가 볼리바르 광장과 시내 도로에는 순식간에 국기를 두른 인파가 몰려들었다. 빨강·노랑·파랑 삼색 깃발이 차창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오토바이 행렬이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

마이애미와 시차가 거의 없는 카라카스의 밤은 사실상 야간 홈 경기였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광장에서는 결승전 중계가 이어졌다. 9회말 미국의 마지막 타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수많은 인파가 동시에 자리에서 튀어 올라 서로를 끌어안았다. 곧이어 국가 '글로리아 알 브라보 푸에블로'가 관중석과 같은 박자로 울려 퍼졌다. 한 현지 팬은 미국 매체 인터뷰에서 "정치와 경제는 엉망이지만, 야구만큼은 우리가 세계 1위라고 말할 수 있는 밤"이라고 했다.
론디포 파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중 수만 놓고 보면 중립 경기였지만 분위기는 거의 베네수엘라 홈에 가까웠다. 관중석 곳곳에서 국기를 두른 팬들이 북과 트럼펫을 울리며 응원가를 불렀고 미국 타자 소개 때 야유가 섞여 나왔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수천 명이 남아 선수들과 함께 국가를 합창했고 외야 스탠드에서는 "캄페오네스, 캄페오네스(챔피언)" 구호가 이어졌다.


선수들 표정에도 환희가 넘쳤다. 결승 결승타를 때린 유헤니오 수아레즈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25명짜리 팀이 아니라, 3000만 베네수엘라인이 함께하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팔렌시아의 마지막 공을 포구한 직후 포수 살바도르 페레스는 글러브를 던지고 마운드로 뛰어올라 팔렌시아를 끌어안았다. 뒤따라온 선수들이 마운드를 사람으로 덮었다. 형제 포수·내야수 윌슨·윌리엄 콘트레라스가 나란히 목에 금메달을 거는 장면은 베네수엘라 현지 방송과 SNS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하이라이트였다.

올해 1월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체포한 군사 작전을 감행한 뒤라 베네수엘라 야구팬 커뮤니티 SNS에는 "미국이 마두로를 데려갔고, 우리는 WBC 트로피를 가져왔다. 이제 퉁쳤다"라는 식의 농담이 쏟아졌다. 영어권 SNS에는 미국 팬이 남긴 "US took Maduro from you guys and you took the WBC title from us. We can call it even now(미국이 너희 대통령을 데려갔고, 너희는 우리한테 WBC 우승을 빼앗아 갔다. 이 정도면 퉁치자)"라는 댓글이 수만 건의 '좋아요'를 받으며 밈으로 퍼졌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정치에선 지더니, 야구에선 이겼다(They lost in politics, but they won in baseball)"는 문장이 캡처돼 베네수엘라·미국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외신들도 이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는 "경제 붕괴와 정치 혼란 속에서도 야구는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정체성이자 탈출구"라며 이번 우승을 "혼란 속에서 얻어낸 일주일짜리 축제"라고 표현했다. ESPN은 일본-이탈리아-미국을 연달아 꺾은 토너먼트 여정을 '업셋 러닝'으로 부르면서 "야구 종주국을 이긴 라틴 야구의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psoq133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