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마두로 더비'에서 승리한 베네수엘라의 사상 첫 우승으로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가 막을 내렸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힘겹게 17년 만의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8강에서 콜드게임 패배라는 한계도 드러냈다. WBC라는 큰 무대는 강력한 타력, 불같은 강속구, 빈틈 없는 수비, 그리고 두터운 뎁스를 갖춰야 생존한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과거 한국야구가 '스몰 야구'로 강팀을 괴롭혔던 시대는 벌써 지나갔음을 다시 확인했다.
4강에 오른 상위권 팀들은 예외 없이 '장타 중심 라인업'을 구축했다.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등 모두 1번부터 9번까지 장타와 출루를 동시에 생산하는 구조였다. 작전은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득점 설계의 출발점은 '한 방'이었다. 경기 양상 자체가 장타를 전제로 움직였다.

마운드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화했다. 평균 구속 상승은 기본 전제였다. 여기에 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슬라이더, 스플리터, 체인지업을 결합한 3~4피치 패턴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포크와 스플리터, 하드 체인지업처럼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 비중이 크게 늘었다. 유리한 카운트에서는 피하지 않고 존을 공략하는 공격적 피칭이 일반화된 흐름이었다.
이 변화는 수비와 주루의 중요도를 끌어올렸다. 강한 타구와 장타가 늘어나면서 외야 수비 범위와 타구 판단이 경기 흐름을 좌우했다. 주루 역시 단순 도루보다 1·3루 상황에서의 선택, 외야 뜬공 태그업, 1루 주자의 홈 쇄도 등 공격적인 판단이 득점 효율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했다.

결정적 승부를 가른 건 '뎁스'였다. 투구수 제한 환경에서 선발 한 명으로 버티는 구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롱릴리프부터 미들, 셋업, 클로저까지 8~10명의 투수진을 끊임없이 가동하는 팀이 후반을 장악했다.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일본이 공통적으로 강했던 이유다.
한국야구가 보완해야 할 점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타격 대응력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전 0-10 콜드게임 패배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150km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에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전에서도 장타력 차이로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국제 레벨의 구속과 구종 조합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했다.

투수 운용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초반 흔들린 이후 볼넷과 고의사구로 스스로 무너졌다. '피하지 않는 승부'가 아니라 '버티는 투구'에 머물렀다. 수비에서도 병살 처리와 외야 타구 판단 등 기본 플레이에서 미세한 차이가 반복됐다. 경험 부족과 긴장 상황이 겹치며 실점으로 이어졌다. 결국 문제는 뎁스로 수렴된다. 평균 레벨 싸움에서 한국은 투수와 야수 모두에서 두께가 부족했다. 특정 선수 의존 구조로는 토너먼트를 버티기 어렵다.
해법은 명확하다. 우선 국제 구속에 대한 타격 대응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KBO에서 접하기 어려운 150km대 포심과 슬라이더 조합을 전제로 한 훈련과 데이터 기반 준비가 필요하다. 동시에 장타와 출루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타자 비중을 확대해 타선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투수 운용도 변해야 한다. 실점을 최소화하는 소극적 접근이 아니라 초반부터 승부하는 공격적 피칭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2~3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롱릴리프를 포함한 불펜 뎁스 강화가 필수다. 수비와 주루 역시 국제 기준에 맞춘 디테일 보완이 필요하다.
psoq133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