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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④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기사입력 : 2023년01월25일 08:00

최종수정 : 2023년03월29일 08:33

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스웨덴의 현대사를 읽다 보면 스릴러 소설이 주는 긴장감, 대하소설이 주는 감동, 범죄소설에서처럼 진실을 찾아 헤매는 미로의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1983년 10월 4일, 스웨덴 전국 기업인이 당시 사민당 정부의 세금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무려 75,000명(경찰집계,기업인 집계 10만명)이 모여 정부청사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사비평가인 뵈른 엘렘브란트(Björn Elmbrant)는 그의 저서에서 이 집회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편성된 60여 편의 특별열차, 200대 이상의 버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승용차는 스톡홀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행사를 기획한 10-4위원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국의 기업인들을 스톡홀름으로 집결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전국 기업인이 궐기한 스웨덴 중심가를 완전히 마비시킬 정도의 대규모 시위였다. 스웨덴 역사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기업인들이 직접 피켓을 들고 정부의 세금정책을 비판하면서 가두시위를 벌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피켓에는 "세금사회주의다" "정치인과 관료가 기업을 경영할 것인가"라 적혀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10-4위원회는 정부청사 앞에서 전국 기업인 533,702명의 서명을 담은 수십 개의 종이 상자도 함께 정부에 전달했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시위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1971년 스웨덴 사회로 시계를 돌려보자.

스웨덴 전국노총 대의원 회의에서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동자기금을 만들어 한다는 안이 제출되었다. 연대임금제로 사무직 노조원의 임금이 더 올라 생산직 노동자와 임금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했고, 임금절감을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매출증가와 기업성장을 이루었으니 파이의 일부는 노동자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연대임금제를 통해 고소득 금속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해 기업에게 큰 이득을 남겼으니 이번에는 노동자를 위해 기업이 수익의 일부를 노동자를 위해 내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도 연대임금제를 고안한 노총 수석 경제연구원 중 한 명이었던 마이드너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연대임금제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조할 것, 마이드너의 자서전과 다양한 글을 읽다 보면 연대임금제를 고안할 때부터 그 다음 수순으로 노동자기금을 계획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1971년 전국노총 대의원 회의에서 대안마련을 위한 자체 연구단이 구성되었고 이 연구단이 채택한 안은 1975년 정식으로 노조의 정책으로 채택됐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사진=사민당 홈페이지]

노조의 복안은 이랬다. 매년 기업 순이익의 20퍼센트를 임금노동자기금으로 적립해 이를 노조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매년 기금적립을 통해 경영권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기업인들의 그 제안의 뒤에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넘어 20-30년 정도 기금이 적립되면 결국 최대주주가 되어 기업경영권을 노동자가 가지고 간다는 것을. 이 같은 의도를 안 기업인들은 궐기하기 시작했다. 친노조 정부가 기금 법안을 통과시키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사회주의식 국가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간주해 스웨덴에서 모든 기업 활동을 포기하고 본사와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키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우파계열에 있는 국민당의 제안으로 구성된 1975년 특별조사위원회는 각 당과 시장주체들의 의견을 경청해 해결책을 찾고자 했으나, 여기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었다. 우파진영 정당들은 자유기업의 공동소유권에 대한 반자본주의, 반시장주의적 기금이 노동자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만든다는 이유로 이 제안을 지지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결국 노조와 함께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사민당은 1976년 치러진 총선에서 44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우파정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기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수면 아래로 내려 간 듯 했다. 하지만 물 밑에서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노조는 어떻게든 관철시키고자 당시 야당이었던 사민당을 설득하며 은밀하게 논의를 진행해 나갔다. 1970년대 두 번의 유가파동과 연이은 환율개혁의 결과로 파생된 실질 임금의 하락문제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우파의 실각으로 1982년 6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사민당은 어떻게든 노동자기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83년 10월 4일의 기업인 가두시위와 53만 기업인의 서명서 제출은 기금법을 통과시킬 경우 스웨덴을 떠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의미했다.

스웨덴을 구하자. 노동자기금을 막자 [출처=Aftonbladet 1983-10-4]

사민당의 딜레마

두 마차가 전 속력으로 달려오면 두 말(노조와 기업)과 마차는 모두 전복하고 마차에 탄 승객(국민)도 희생당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는 심판(정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민당은 노조에게서 큰 양보를 이끌어내 노동자가 절대 기업을 직접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선에서 기금법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노조의 마차는 계속 달리게 하되, 기업이 끄는 마차와 충돌하지 않도록 노선을 살짝 바꾼 것이다. 노총에서 요구했던 기업 순익 20퍼센트와 노동자의 기금소유 대신, 기업주식 배당일정 분에 요금을 부여해 기금을 모아 국가가 대신 관리하고 이 기금의 규모 또한 기업들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 기준 8퍼센트를 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노동자가 직접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규모도 축소시킨 것이었다.

운명의 날 1983년 12월 21일. 최대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의회의사당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노동자기금안은 좌익당(전신 공산당)의 도움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의원 간 몸싸움과 의장석 점거사태 없이 조용하게 투표가 진행되었다. 찬성 51.1퍼센트.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지만 재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업주식 배당을 국가가 받아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사회주의라고 격앙했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세금을 신설한 것이기에 그렇지 않아도 1960년부터 도입된 고용주세(Payroll tax)로 인해 피고용자 한 사람 당 연금, 보건건강보험료, 노동재해보험료, 실업기금 등의 복지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스웨덴에서 기업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은 기존의 법인세와 고용주세에 이어 노동자 기금세가 추가되어 기업의 경영환경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본 것이다.

<출처=이케아(IKEA)홈페이지>

기업의 엑소더스, 새로운 시작

결국 스웨덴의 간판 기업이었던 IKEA, Tetra Pak, H&M, Alfa Laval 등의 대기업이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대 결단을 내렸다. 4개의 수출주력 기업들이 스웨덴을 떠난 것이었다. 1938년부터 45년간 유지되어 오던 노사간 평화체제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사민당과 노조는 큰 충격에 빠졌다. 쉘울로프 펠트 (Kjell-Olof Feldt) 당시 재무부 장관은 자서전에서 대기업의 해외이전은 협상용 압력으로만 받아들인 사민당의 오판임을 인정하고 대기업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적었다. 노조도 연대임금제로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다가 간판 대기업을 잃는 아픔을 맛보았다. 1991년 들어서 우파정부는 말도 많던 노동자기금을 8년 만에 주저 없이 폐지했다. 이 때 노조는 조용히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적립된 기금의 일부는 참여했던 16,000여개의 기업에 다시 돌려주고, 나머지 기금은 중소기업설립지원재단, 연구재단설립, 국민연금 등으로 분산해 공공기금으로 활용했다.

이때부터 사민당의 대 기업 정책은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1994년 다시 집권에 성공한 사민당의 잉바르 칼손(Ingvar Carlsson) 총리는 스웨덴을 떠났던 대기업에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다시는 기업환경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민당 정부의 정식사과와 재발방지의 약속을 믿고 IKEA를 제외한 나머지 3개 기업들은 스웨덴으로 다시 귀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IKEA는 이미 창업주의 자녀들이 지주회사로 분산시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국적 기업인 IKEA의 실질적 본사 역할을 하는 디자인 연구센터는 원래 본사가 있던 엘름흘트(Ämlmhult)에 존속시켰다. 스웨덴을 떠났던 기업들이 모두 돌아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민당의 Volte-face, 기업친화정책

이때부터 사민당은 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잉바르 칼손의 뒤를 이은 예란 페손 (Göran Person) 총리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2004년 12월 폐지해 창업주들이 자유롭게 자녀들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국민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승계를 위해 부담해야 할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주력 기업을 매각하던지 아니면 해외로 이전하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에 국부의 유출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최고조였던 1980년대에는 상속세가 70퍼센트까지 이르렀다. 1990년대 말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상속세와 증여세가 사민당 이 주도해 폐지시켜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창업주들이 승계하는데 어려움을 가져다 준 큰 걸림돌을 제거해 준 셈이었다. 우파정권에서 추진했다면 노조와 사민당, 그리고 좌익당 지지층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개혁을 사민당이 밀어 붙여 관철시킨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기금의 학습효과는 컸다.

사민당의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도 채찍을 들었다. 1990년 재정위기가 찾아 왔을 때 파업금지와 임금동결을 선언해 노조에 고통에 동참하자고 앞장서 권고했다. 채찍은 아팠지만 큰형 격인 사민당의 국가를 살리기 위한 노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스웨덴의 복지는 일하는 국민들을 위한 안전장치"라는 표현도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는 표현도 사민당이 1998년 선거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가 제안하고 토니 블레어 (Tony Blair)가 실천한 제3의 길(The third way)을 스웨덴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많은 국민이 일하고 세금을 납부할 때 더 좋은 복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표현은 현 사민당의 홈페이지 일자리 정책과 복지정책의 홍보내용이다 (https://www.socialdemokraterna.se/var-politik/a-till-o/jobb. 2023년 1월 21일 열람). 이 기조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민당의 정책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틀만 유지되고 있었던 중앙임금교섭 단체 협약도 재개되었다. 노조와 재계의 관계도 빠르게 정상화 되었다. 살트쉐바덴 조약의 정신이 다시 부활된 것이다. 이때부터 스웨덴의 기업환경은 빠르게 개선되어가기 시작했다. 2017년 포브스지가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스웨덴으로 꼽을 정도였다.

스웨덴 일간지에 실린 황금주 A, B, C, D주 [출처=Dagens nyheter 2023-01-21]

높은 세금에도 기업들이 국내에 남아 있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 기업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기업은 법인세와 함께 고용주세를 부담하고 있다. 현재 31.42퍼센트에 이르는 고용주세는 연금, 보건건강보험료, 산재해보험료, 실업기금 등의 피고용자의 사회안전비용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기업이 한 사람을 고용하면 임금의 31.42퍼센트를 국가에 추가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직장에서 개별적으로 피고용자 임금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금을 적립해 직장연금으로 지급한다. 사내 복지의 일환이다. 이와 함께 병상보험 이외에 병가시 최초 2주일의 병가급여를 직장이 부담한다.

이렇게 기업하기가 힘든데도 왜 스웨덴을 떠나지 않느냐고 스웨덴 기업인들과 경제학 교수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 같이 제로에 가까운 부패율, 높은 사회적 신뢰, 정치의 안정성과 예측성, 공무원의 전문성과 일처리 능력, 언론의 자유, 그리고 평화적 노사관계와 낮은 노사분규를 꼽는다. 이와 함께 2005년부터 상속세와 증여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스웨덴 국민들의 영어구사력을 들 수 있다. 세계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잘 구사하는 국가가 네덜란드(90%), 몰타(89%)에 이어 스웨덴이라고 한다. 2012년 진행된 Eurobarometer 유럽인의 언어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의 86퍼센트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40퍼센트는 일상생활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영어와 함께 독일어(26%), 불어(9%), 스페인어 (4%)를 구사하는 국민의 비율도 높다. 글로벌 에티켓과 다양한 문화의 이해도가 높아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국가 중 하나다. 해외 직접 투자자들이 스웨덴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고 스웨덴 무역투자평의회(The Swedish Trade & Invest Council)은 진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가 정신과 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민당의 존재다. 사민당은 스웨덴에서 가장 큰 정당으로 전통적 진보정당이지만 자유시장경제와 기업경쟁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노동시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래야 지속가능한 복지재정이 확보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친기업적 좌파정부가 있기에 기업들은 안심하고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여기에 황금주제도가 있어 경영권을 방어하게 해 준다. 주식법에 따라 창업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A주는 B주, C주, D주에 비해 10배 혹은 SEB 같은 금융기업은 1000배 이상의 주주의결권을 보장해 주고 있어 경영권 방어에 긴요하게 사용된다. 스웨덴의 100년 이상이나 되는 가족기업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무상 대학교육과 직업교육이 연계되어 있어 노동유연성도 매우 높아 기업하기 좋은 국가로 꼽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가치

겉으로 보기에는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획일적 사회주의적일 것 같은 스웨덴의 정치경제는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 중심의 전형적인 자유시장경제 체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구조에는 노사 간의 평화체제가 필수다. 결국 스웨덴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노사중심의 이원적 조합주의(corporatism)의 결과라 하겠다. 하지만 7080시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스웨덴은 평등, 자유, 경쟁, 자율, 공정, 책임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함께 숨 쉬며 사민주의와 자유시장주의가 공존하는 완벽한 패러독스의 일면을 보여준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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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건의·주도 김용현 구속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하고 계엄 이후 상황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됐다. 이번 12· 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계엄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김 전 장관이 구속되면서, 계엄 사태의 최종 '윗선'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후 "범죄혐의 소명정도, 범죄의 중대성,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고려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4.09.06 photo@newspim.com 이에 대해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앞으로 관련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수사해 이번 내란 사태의 전모를 밝히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 부장판사는 "검찰청법 제4조 제1항 제1호 나, 다목에 의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국민 여러분들께 큰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며 심사를 포기했다. 검사의 직무를 규정하고 있는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강력범죄로 제한하고 있으나 경찰공무원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속 공무원이 범한 범죄, 그리고 이 범위에서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해 인지한 각 해당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도 수사 개시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내란 혐의 수사 개시를 두고 경찰, 공수처 등과 의견충돌이 있었던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발부로 직접수사의 정당성도 확보하게 됐다. 이에 최근 계엄사태 당시 주요 군관계자 조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검찰은 수사에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다. 특수본은 지난 9일 청구한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과 공모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4.12.04 photo@newspim.com 법조계는 검찰이 사실상 윤 대통령을 가장 윗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란죄는 우두머리·중요임무종사자·단순가담자 등으로 위계를 나눠 처벌하는데, 검찰이 계엄 선포 이후 상황을 지휘한 김 전 장관을 우두머리가 아닌 중요임무종사자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결국 윤 대통령을 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수사 시점·강도에 대해선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CK)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되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게 된 후에서야 소환조사가 이루어졌다"며 "김 전 장관이 구속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라든가 아니면 구속영장 청구 등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에 윤 대통령의 공모 혐의를 적시한 것을 보면 윤 대통령 구속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곧바로 대통령을 소환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할 지에 대해선 경찰, 공수처 등과 협의 단계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seo00@newspim.com 2024-12-1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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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국인 최초로 '블루카펫' 밟다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강은 이날 오후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노벨상 시상식이 콘서트홀에서 열리기 시작한 1926년 이래 한국인이 이곳 '블루카펫'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슬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한강은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톡홀름 로이터=뉴스핌] 김민정 기자=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있다. .2024.12.11 mj72284@newspim.com 2024.12.11 mj72284@newspim.com 시상식은 이날 오후 4시 구스타프 국왕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이어 요한네스 구스타브손이 지휘하는 스웨덴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검은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했다.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행사장을 가득 메운 15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우뢰와 같은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한강은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아스트디르 비딩 노벨재단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문학상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fragility)을 심오하게 탐구한 작품에 수여됐다"고 말했다.  시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으로 진행됐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한강은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네 번째로 국왕에게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메달 앞면에는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학상 수상자 증서는 다른 수상자들과 달리 양피지로 제작돼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스톡홀름 로이터=뉴스핌] 김민정 기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자리에 앉아 있다. 2024.12.11 mj72284@newspim.com2024.12.11 mj72284@newspim.com 시상식은 관례에 따라 각 분야 선정기관 대표가 그해 수상자를 무대 위로 차례로 호명했다. 문학상 수상자를 호명한 엘렌 맛손은 "친애하는 한강"이라고 부르며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스웨덴 소설가인 맛손은 한림원 종신위원 18명 중 한 명으로 올해 수상자 선정에 참여했다.  한강이 일어나 무대로 걸어가자 이날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맛손은  문학 부문 시상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그는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삶,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작품들은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은 이날 시상식에서는 소감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수상자 강연이 있었고, 시상식 직후 오후 7시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진행되는 만찬에서 3분 내외의 소감을 밝히는 시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왕과 총리 등 1200여명이 참석한 연회는 식사와 음악 연주 등이 함께 어우러진 가운데 4~5시간 동안 진행됐다.   ihjang67@newspim.com   2024-12-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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