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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선출권력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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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전제조건

민주주의는 종종 "국민이 뽑은 권력이 곧 국민의 뜻"이라는 단순한 수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단순화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이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권력을 제한하고 서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에 있다.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절제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고 본질은 무너진다.

이 점에서 미국의 헌법학자 에르윈 체머린스키는 『No Democracy Lasts Forever』에서 헌법 자체가 민주주의를 막을 수 있다고 비판했고, 정치철학자 아담 러벳은 『Democratic Failures and the Ethics of Democracy』에서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실패할 경우 윤리적 정당성 자체가 붕괴한다고 경고했다. 선거 절차는 남아 있더라도, 시민이 권력에 대한 신뢰를 잃고 민주주의를 도덕적으로 더 이상 옹호하지 않게 된다면, 제도는 형식만 남고 민주주의는 사실상 끝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는 바로 이런 윤리적 기반의 침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뉴스핌DB]

무너지는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방식은 20세기 초의 군부 쿠데타와는 다르다. 지금은 선거로 권력을 획득한 집권세력이 민주주의의 절차와 제도를 점진적으로 잠식해 가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V-Dem 연구소 소장 스테판 린드버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한국은 선거민주주의의 강점을 가진 나라였지만, 이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이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선거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제도적 견제와 권력의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쉽게 축소된다고 지적했다.

린드버그가 말한 위험은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다. V-Dem 연구소가 지난 수년간 축적해 온 방대한 데이터는 민주주의가 쿠데타 같은 극단적 충격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를 내세운 권력의 침식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거짓 정보의 유통, 권력자 레토릭의 과도한 정당화, 그리고 사법부와 언론의 위축 가능성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이와 비슷한 경고는 미국에서도 나온다. 헌법학자 에르윈 체머린스키는 저서 『No Democracy Lasts Forever』에서, 미국 헌법 자체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헌법적 구조가 민주적 개혁을 가로막고, 권력을 제한하기보다 오히려 권력 독점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헌법과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방패가 아니라 때로는 그 쇠퇴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헌법과 제도라는 울타리만 믿는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경고는 이미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서 반복된 현실이다. 베네수엘라는 선거에서 정당성을 확보한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야당을 배제하면서 민주주의의 내용이 사라졌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로 역시 민주주의 제도를 끊임없이 시험하며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켰다. 모두가 "국민이 선택했으니 정당하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했다. 한국 역시 지금 이와 다르지 않은 궤적에 놓여 있다.

왜 무너지는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이유는 다수의 힘이 절대화될 때다. 다수결은 효율적일 수 있으나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특정한 소수가 당내 권력을 장악해 국민의 뜻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는 결국 소수의 독재가 다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체제로 변질될 수 있다.
여기에 단기적 인기와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 결합하면 민주주의는 더욱 취약해진다. 현금성 지원과 선심성 정책은 당장의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제도적 신뢰와 장기적 안정성을 갉아먹는다.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잠식되면 시민은 견제의 주체가 아니라, 단기적 이익을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권력은 담론 장악을 통해 민주주의를 더 깊이 흔든다. 메슨 피리가 『How to Win Every Argument』에서 지적했듯, 정치 언어에는 흑백논리와 권위에 호소하는 궤변이 자주 사용된다. 예컨대 여당 정치인이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곧 구시대의 적폐 세력"이라고 말할 때, 이는 복잡한 논점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몰아가는 전형적 '흑백논리(fallacy of false dichotomy)'다.
또 어떤 정치인이 "국민이 우리에게 압도적 지지를 주었으니, 지금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다수결 자체를 절대적 정당성으로 포장하는 '권위에 호소하기(argumentum ad populum)'의 사례다. 실제로는 권력의 제도적 견제 여부가 민주주의의 핵심인데, 이런 논법은 제도의 필요성을 지워버린다.
쇼펜하우어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에서 지적한 기법들은 한국 정치의 언어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가령 야당이 경제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했을 때, 여당 인사가 "당신들은 국민 고통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집단"이라고 되받아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비판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는 '인신공격(ad hominem) 전술'이다.
또 다른 예로, 정책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과거에도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현재 논점을 회피하고 과거를 끌어들여 논지를 흐리는 '논점 일탈(red herring)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곧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식의 반복적 구호는, 논리적 증거 없이 동일한 주장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반복논법(argument by repetition)'에 해당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방식이 대중 토론에서 자주 쓰이지만, 진리를 밝히는 데는 무의미하다고 이미 19세기에 경고했다.
이렇듯 한국 정치의 언어는 논리적 설득보다는 승리를 목적으로 한 수사학적 장치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궤변이 누적될 때 민주주의적 토론의 공간은 좁아지고, 결국 권력의 논리만이 남게 된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이름이 있다. 바로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는 나치 독일에서 박해받고 망명한 유대인이었으며, 전체주의의 참상을 몸소 체험했다. 그녀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단순한 학문적 분석이 아니라,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경고였다. 아렌트가 본 전체주의의 본질은 무자비한 폭력만이 아니라, 개인이 고립되고 공적 삶의 공간을 빼앗기는 데 있었다. 전체주의는 법과 제도의 외양을 지니면서도, 실제로는 모든 목소리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일원화하는 체제다. 그녀의 경고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향한 직접적 메시지처럼 읽힌다.

팅스텐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역할
스웨덴의 정치학자이자 오랫동안 《Dagens Nyheter》 편집장을 맡았던 허버트 팅스텐은 민주주의를 특정한 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와 심지어 극단적 사상까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보았다. 민주주의의 힘은 합의와 갈등을 동시에 수용하는 능력에 있다.
이 점에서 영국의 정치철학자 아담 스위프트가 『Political Philosophy』에서 제시한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개념은 특히 중요하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개인의 선호를 합산하는 절차가 아니라, 시민이 공개된 토론과 논증, 성찰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숙의민주주의는 두 가지 장점을 갖는다. 하나는 토론이 정보를 모으고 검증하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자기중심적 의견이 공익적 판단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시각이 모여 더 나은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윤리적 이상은 제도적 기반과 시민적 참여가 동시에 작동할 때만 실현된다. 체머린스키가 말했듯, 헌법 구조가 개혁을 막으면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러벳이 지적했듯,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실패할 경우 윤리적 정당성 자체가 무너지고, 시민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킬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자의 강한 주장과 궤변에 눌려 침묵하는 국민이 아니라, 성찰과 대화를 통해 깨어 있는 시민이다. 린드버그가 한국에서 강조했듯,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의 균형, 시민의 참여, 그리고 숙의의 공간이 살아 있을 때만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팅스텐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체머린스키의 지적처럼, 그 그릇을 무너뜨리는 것은 권력만이 아니라 때로는 헌법과 제도 그 자체일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되려면, 바로 이 모순까지 직시해야 한다.

민주주의 실패에 대해 경고하는 주요 저작 추천
아래는 민주주의의 실패와 퇴보를 다룬 중요한 저작들이다. 칼럼 본문에서는 딱 필요한 만큼만 인용하고, 읽고 싶은 독자는 이 목록을 참고하면 좋다.

Arend Lijphart, Patterns of Democracy: Government Forms and Performance in Thirty-Six Countries (1999, 2nd ed. 2012).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라이파르트는 민주주의 제도를 비교 분석하면서, 다수제 중심의 정치체제는 소수 권리 침해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합의제 모델을 채택한 국가들은 사회적 안정성과 시민 권리 보호에서 더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Francis Fukuyama,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From the Industrial Revolution to the Globalization of Democracy (2014).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후쿠야마는 민주주의가 내부 부패, 제도 약화, 책임성 결여 등 내부 요인에 의해 퇴보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국가 역량–법치–책임성의 균형 모델은 민주주의의 유지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Staffan I. Lindberg (ed.), Democracy Report 2023: Defiance in the Face of Autocratization. Gothenburg: V-Dem Institute, University of Gothenburg.
린드버그와 V-Dem 팀은 전 세계 민주주의 변동 데이터를 집대성해 '합법적 침식'의 패턴을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민주주의 퇴행이 더 이상 극단적 쿠데타가 아니라 제도적 절차 속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Madsen Pirie, How to Win Every Argument: The Use and Abuse of Logic (1985, rev. 2006). London: Continuum.
피리는 일상적 언어와 정치 담론 속에 숨어 있는 궤변(fallacy) 기법들을 정리한다. 흑백논리, 권위호소, 감정호소 등은 민주주의 토론을 왜곡하고 권력의 언어 우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 책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Arthur Schopenhauer, The Art of Being Right: 38 Ways to Win an Argument (1831, Eng. trans. 1896). London: Swan Sonnenschein.
쇼펜하우어는 논쟁이 진리 추구보다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사람들이 흔히 쓰는 궤변 전략을 38가지로 정리했다. 논점 일탈, 인신공격, 반복 논법 등은 정치 담론에서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이 책도 논쟁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Adam Lovett, Democratic Failures and the Ethics of Democracy (2024).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러벳은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실패할 때 윤리적 기반도 흔들린다고 본다.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엘리트와 시민 양쪽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양상을 분석하고, 그 결과가 민주주의의 정당성 자체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최근 발간된 책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rwin Chemerinsky, No Democracy Lasts Forever: How the Constitution Threatens the United States (2024). Liveright/Norton.
체머린스키는 미국 헌법 체제가 현재 민주주의 유지에 부적절해졌다고 진단한다. 헌법적 구조의 제약이 민주적 개혁을 가로막고, 민주주의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미국의 현실을 투영하면서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Jared Diamond,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2005, rev. ed. 2011).
다이아몬드는 환경, 자원 고갈, 사회 구조의 대응력 부족 등이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민주주의뿐 아니라 문명 전체의 붕괴 메커니즘을 역사적으로 살핀다. 민주주의 실패를 제도적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취약성 차원에서 성찰하게 해 준다. 비정치학 서적이지만 민주주의의 붕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Adam Swift, Political Philosophy: A Beginner's Guide for Students and Politicians (2001, 3rd ed. 2013). Cambridge: Polity Press.
스위프트는 정치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학생과 일반 독자를 위해 명료하게 풀어쓴 입문서다.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 주제를 현실 정치와 연결해 설명하며, 민주주의를 다루는 부분에서 특히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개념을 강조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개인의 선호를 합산하는 절차가 아니라, 시민들이 공개 토론과 논증, 성찰을 통해 자기 의견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숙의과정은 정보 수집과 검증의 기능을 하고, 이기적 관점을 공익적 판단으로 성숙시키며, 다양한 삶의 경험과 시각이 더 나은 결정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질적 쇠퇴를 우려하는 독자에게 숙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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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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