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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정상국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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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때 큰 기대는 없었지만, 결국 불과 백일 만에 무너졌다. 대통령과 여당에서 약속한 정상국가 건설에 대한 외침은 결국 젊어서부터 꿈꿔온 수구세력의 척결처럼 들린다. 당연히 야당 몫으로 주어져야 할 간사선임 안건 하나를 놓고 다수결로 부결시키고 고성과 야유, 퇴장으로 지새운다. 절차와 관행을 무시하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상공회의소까지 우려한 법제정까지 다수의 힘으로 일방적으로 몰아 붙였다. 3권 분립을 사수해야 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은 대법원장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여당의 정치공세를 은근히 방관하고 묵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수준은 냉혹하게도 유아적 모습을 보인다. 존 스튜어드 밀은 유아적 양상(Infantilization)은 비민주적 정치인의 기형적 모습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민주주의의 본질, 그 정당성의 기초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18 mironj19@newspim.com

다수의 횡포와 민주주의의 위기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Taking Rights Seriously(권리를 진지하게 대하기)』(1977)에서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리에만 의존할 때 필연적으로 다수의 폭정이라는 위기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이중 계수(Double Counting)"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다수의 일부가 자신의 도덕적·신앙적 신념을 근거로 소수에게 규범을 강요할 때, 이는 그들의 표가 두 번 계산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드워킨에게 권리란 단순한 정치적 절차의 부산물이 아니라,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트럼프 카드, 즉 비장의 카드"다.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다.

오늘날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내란 이라는 법적 용어가 정치적 낙인처럼 사용되며, 야당은 해산 대상으로 규정된다. 이는 드워킨이 경고했던 바로 그 상황, 즉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구조다.

리처드 울헤임(Richard Wollheim)은 「A Paradox in the Theory of Democracy(민주주의 이론의 역설)」(1962)에서 민주주의의 역설을 지적한다. 왜 소수는 자신이 반대했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가? 울헤임의 대답은 절차적 신뢰에 있다. 소수는 다수의 힘에 굴복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절차가 가져다 줄 안정성과 헌법적 지속성에 기대어 스스로 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가 공정하지 않거나, 다수가 절차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할 때, 소수는 더 이상 민주주의에 승복할 이유를 잃는다. 지금 한국 국회에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절차적 신뢰의 붕괴다. 법사위 배분을 둘러싼 다툼, 합의 없는 강행 처리, 상호 불신은 결국 절차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울헤임의 문제의식은 오늘의 국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절차적 신뢰 없이는 민주주의도, 소수의 승복도 존재할 수 없다.

제레미 월드론은 『Law and Disagreement(법과 불일치)』(1999)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합의(consensus)가 아니라 불일치(disagreement)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정치적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도덕적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과제는 불일치를 제거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공정하게 다루는 것이다. 국회에서 치열한 토론이 일어나고, 상반된 입장이 끝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불일치를 다루는 공간이 아니라, 불일치를 증폭시키는 공간으로 전락해 있다. 다수의 힘은 곧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소수를 위협하고, 소수는 저항만을 무기 삼아 끝없는 대치에 나선다. 월드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정치의 최대 위기는 불일치를 다루는 제도적 역량의 붕괴다. 정치는 싸움이 아니라 싸움을 제도적으로 길들이는 행위인데, 지금의 국회는 그 길들이기에 실패하고 있다.

이 역설은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절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소수는 결코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당의 행태는 절차를 파괴하면서도 정통성을 주장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가 이겼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수가 절차적 정당성을 존중할 때만이 민주주의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가 존속하는 이유는 단순히 올바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 콩도르세(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는 『Essai sur l'application de l'analyse à la probabilité des décisions rendues à la pluralité des voix(다수결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의 확률에 대한 분석 적용 시론)』(1785)에서, 집단적 투표가 개인보다 더 나은 결정을 산출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도구적 정당화(instrumental justification)의 한 근거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밀이 말했듯, 민주주의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유아성을 벗어던지고 지적·도덕적 성숙을 촉진한다. 토론과 참여의 과정은 개인을 단련시키고, 공적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심어 준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설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은 자신이 절차에 참여했다는 사실에서 결과를 수용할 근거를 찾는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과제

지금 한국의 정치는 바로 이 세 가지 기반, 즉 올바른 결정, 시민의 성장, 정당성 확보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여당은 다수의 힘만을 내세우고, 야당은 그토록 자부했던 민주적 성취와 역사적 시계를 되돌린 잘못에 대해 온전히 사죄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정상국가"를 외쳤으나, 국민이 체감하는 정치는 여전히 갈등과 분열, 낡은 정치적 동원 방식에 갇혀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 1조부터 10조까지 수정헌법을 담은 권리장전을 제정했듯이, 이제 한국 역시 민주주의의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한다. 이는 새로운 헌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합의 – 소수의 권리 보장, 절차의 존중, 합의와 타협의 복원 – 없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정상국가로 가는 길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속에서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넘어선 선진국이다. 그러나 정치의 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국가는 결코 존중받는 정상국가가 될 수 없다. 세 철학자가 강조한 민주주의의 본질은 단 하나다. 다수와 소수가 함께 대화하고 타협하며, 국민의 기본권리를 존중하는 정치다.

오늘 국회에 필요한 것은 고성과 야유보다 국민 앞에 무릎 꿇는 겸손이다. 정상국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대타협의 물꼬를 어떻게 틀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수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꾸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곧 비장의 카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거리에서 삿대질하며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라는 제도 속에서 합의와 협력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동맹국 국민에게 쇠사슬에 묶어 비인간적 대우와 모멸감을 안긴 미국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자국민의 온전한 대우를 요구하는 국회결의안부터 함께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 대한민국은 더 이상 냄비 속 개구리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뚜껑을 열고 나와 세계가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민들도 제대로 대우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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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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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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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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