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500달러 제시?...수익성 강화 초점
삼성전자, 가격 유연성·공급 조건으로 반격 노려
엔비디아 계약 협상 결과에 초기 시장 판도 좌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 시장을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면 승부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HBM3E 대비 최대 60~70%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HBM3E 가격 인하로 점유율 확대를 시도하며 HBM4에서도 기술 경쟁과 가격 전략을 병행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초기 시장 주도권은 엔비디아와의 계약 협상 결과에 따라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 공급 제약 앞세워 HBM4 고가 전략 고수하나
10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4 12단 가격을 약 500달러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HBM3E 12단(약 300달러) 대비 60~70% 높은 수준이다. 회사는 TSV(실리콘 관통 전극) 수 증가로 인한 다이 크기 확대, 웨이퍼당 생산 칩 수 감소 등 제조 공정상 제약을 근거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TSV 공정 복잡성이 커질수록 수율뿐 아니라 전공정 생산능력 자체가 제약을 받게 돼, 시장의 '공급 과잉' 우려는 과도하다는 것이 회사 내부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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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인텔 AI 서밋에서 선보인 HBM4 모형 [사진=SK하이닉스] |
증권가에서도 SK하이닉스의 가격 정책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SK하이닉스 뉴스룸에 올라온 한동희 SK증권 리서치센터 반도체 연구위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HBM4는 전공정 단계에서 다이 패널티가 발생하는 구조라 공급이 물리적으로 늘기 어렵다"며 "경쟁 심화 속에서도 출혈경쟁보다 가격과 물량의 최적점을 찾는 것이 이익 극대화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AI 메모리 시장에서는 점유율 확대보다 고성능·적기 공급·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SK하이닉스가 높은 양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익성 안정화 정책을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에서 "원가 상승을 고려해서 가격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며 "수익성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고객과 최적의 가격 수준을 형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발주자 삼성, 가격인하로 HBM 시장 흔드나
삼성전자는 HBM3E에서 가격 인하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AMD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엔비디아와도 꾸준히 품질검증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HBM3E 단가 조정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에서 "HBM3E 제품은 수요 성장 속도를 상회하는 공급 증가로 수급 변화가 예상돼 당분간 시장 가격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다. 이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압박하는 동시에, 신규 고객 유치와 공급 기반 확대를 노린 조치로 해석된다.
시장 전반적으로는 공급 확대와 함께 평균판매단가(ASP) 하락 가능성도 거론된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HBM 가격은 두 자릿수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년간의 공급 부족 현상은 내년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업계 전반에 걸쳐 가격 압박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HBM3E에서 보여준 가격 유연성을 HBM4에도 적용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납품했다고 밝혔다. 1c 나노 공정의 양산 전환 승인을 완료한 상태로, HBM4 수요가 본격 확대되는 내년 적기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가 경쟁력 있는 가격과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확보할 경우 SK하이닉스와 복수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BM은 사전에 단가와 물량, 사양을 확정해 장기 계약을 맺는 구조여서 초기 가격 협상이 곧 시장 판도를 결정한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단순 점유율 확대를 위한 출혈 경쟁은 벌이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동희 연구위원은 "SK하이닉스와 주요 고객사의 HBM 계약은 어느 정도 가시성이 확보됐다고 보여지나, 아직 계약 절차가 마무리되지는 않았기에 내년을 전망하기에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며 "경쟁사의 시장 진입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SK하이닉스의 추가적인 점유율 상승은 산술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