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삼성화재가 23일 틸리카이넨 감독을 선임했다
- 11년째 무관·8시즌째 봄배구 실패를 끊기 위해서다
- 대한항공식 스피드·확률 배구로 명가 재건을 노린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용인 =뉴스핌] 남정훈 기자 = 한때 V리그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가 '삼성화재 우승'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우승 이후 11년, 마지막 봄배구 이후에도 8시즌이 흘렀다.
길었던 암흑기를 끝내기 위해 삼성화재가 선택한 카드는 왕조를 만들어본 감독이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에게 명가 재건을 맡겼다.

삼성화재의 과거는 화려하다. 프로 출범 이전 실업배구 시절 8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V리그 출범 이후에도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8차례 올랐다. 특히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7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했다. '왕조'라는 표현이 가장 자연스러운 팀이었다.
그러나 2014-2015시즌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2017-2018시즌 정규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을 끝으로 봄배구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2018-2019시즌부터 2025-2026시즌까지 8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다.
지난 시즌에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전반기에는 창단 후 처음으로 10연패를 당했고 김상우 감독도 시즌 도중 지휘봉을 내려놨다. 후반기에는 13연패까지 겪었다. 최종 성적은 6승 30패, 승점 19. 최하위였다. 한때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팀이 이제는 봄배구부터 다시 목표로 삼아야 하는 위치까지 내려왔다. 삼성화재가 단순한 선수 보강이 아닌 팀의 근본적인 변화를 선택한 이유다.
◆ 대한항공에서 이미 증명한 '왕조 건설'
그리고 틸리카이넨은 V리그에서 어떻게 팀을 정상에 올리는지 이미 보여준 지도자다.
2021년 대한항공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파격이었다. 젊은 외국인 감독은 기존의 틀에 선수를 맞추기보다 다양한 조합을 시험하고 선수들에게 여러 역할을 부여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부임 첫 시즌 대한항공은 1라운드를 2승 4패, 6위로 마쳤다. 틸리카이넨 감독이 여러 선수를 골고루 활용하며 다양한 전술을 시도했지만 선수들이 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조직력이 올라오자 빠른 공격이 살아났다. 당시 주전 세터였던 유광우가 템포를 끌어올렸고 외국인 공격수 링컨 윌리엄스의 빠른 스윙이 더해졌다. 시즌 초반 하위권이었던 대한항공은 결국 정규리그 1위에 올랐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제패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2021-2022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자신이 지휘한 세 시즌을 모두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마쳤다. 3시즌 연속 통합우승이었다.
특히 2023-2024시즌 대한항공은 V리그 최초 4시즌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첫 번째 통합우승은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 체제였지만 이후 세 번의 통합우승을 틸리카이넨 감독이 책임졌다. 공교롭게도 대한항공은 과거 삼성화재가 보유했던 3연속 통합우승 기록까지 넘어섰다.

◆ 빠르지만 단순하지 않다
틸리카이넨의 대한항공을 상징했던 것은 '스피드'였다. 리시브 이후 공격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상대 블로커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에 여러 공격수가 동시에 움직였다. 외국인 선수에게 높은 공을 몰아주는 이른바 몰빵 배구와도 거리가 있었다.
세터가 다양한 공격수를 활용하면서 상대 블로킹의 선택지를 늘렸다. 정지석과 곽승석 같은 아웃사이드 히터뿐 아니라 임동혁 등 국내 공격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중앙 공격까지 섞었다. 특정 공격수 한 명이 막혀도 다른 방법으로 득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2023-2024시즌에도 외국인 공격수 의존도가 높은 다른 팀과 달리 다양한 볼 배분이 대한항공의 강점으로 꼽혔다.
틸리카이넨 감독 스스로도 당시 대한항공을 "스피드 배구를 하는 팀"이라고 규정했다.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막심 지갈로프를 영입했을 때도 빠른 배구에 맞는 기술과 상황 이해도를 선택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스피드는 단순히 토스가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강한 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든 뒤 수비에서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공격수가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배구다. 여기에 데이터를 활용한 확률적인 판단과 다양한 선수 활용이 더해진다. 대한항공에서 과감한 선수 기용과 세대교체를 병행했던 것도 틸리카이넨 배구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삼성화재에서도 '빠르게'와 함께 '영리하게'가 따라붙는다.

◆ "강하게만 때리지 마라"…삼성에 이식되는 새로운 배구
현재 삼성화재 선수들이 경험하고 있는 훈련에서도 그 철학이 드러난다.
지난 시즌 공격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우진은 빠른 공을 무조건 강하게 때리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득점 확률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이볼에서 변화가 크다. 외국인 공격수처럼 높은 타점과 힘으로 블로킹을 뚫는 데 한계가 있는 국내 아웃사이드 히터에게 무작정 강타를 요구하기보다 블로커의 손을 이용하거나 빈 공간을 노리는 등 여러 해결책을 제시한다.
리시브도 마찬가지다. 8년 만에 삼성화재로 돌아온 부용찬은 틸리카이넨 감독이 '확률'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완벽하게 세터 머리 위로 보내려다 상대 코트로 넘어가는 오버패스를 만드는 것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일단 자기 코트 안에 공을 띄워 공격 기회를 이어가는 게 낫다는 접근이다.
부용찬은 "오버패스는 서브 에이스를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라며 "정확하지 않더라도 우리 코트 안에 띄워놓으면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격부터 리시브까지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된다. 가장 화려한 플레이가 아니라 득점할 확률이 높은 플레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 스피드 배구의 또 다른 조건, '약속'
팀 전체가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려면 전제조건도 있다. 선수들끼리 무엇을 할지 알고 있어야 한다. 이윤수가 이번 비시즌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다. 그는 새로운 시스템에서 선수마다 지켜야 하는 약속이 상당히 세밀해졌다고 설명했다.
누가 어느 공을 받고, 어떤 위치로 이동하며,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반복 훈련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삐걱거렸다"고 표현했지만 훈련이 쌓이면서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
훈련 방식도 바뀌었다. 이윤수는 지난해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훈련의 절대적인 양은 줄었지만 대신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공 하나, 움직임 하나에도 목적을 두고 훈련한다.
틸리카이넨 감독이 대한항공 부임 초기 겪었던 시행착오와도 닮았다. 당시에도 선수들이 새로운 전술과 다양한 역할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스템이 자리 잡은 뒤 대한항공은 3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삼성화재 역시 새로운 배구가 완성되기까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 유광우가 중요한 이유
그래서 유광우의 9년 만의 귀환은 단순한 베테랑 세터 영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유광우는 삼성화재 왕조를 직접 경험했다. 이후 우리카드를 거쳐 대한항공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틸리카이넨 감독과 3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함께했다.
삼성화재는 지난 5월 대한항공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유광우와 리베로 강승일을 영입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의 부임 직후 이뤄진 변화였다.
세터는 스피드 배구의 중심이다. 빠른 토스만으로는 부족하다. 불안한 리시브에서도 여러 공격수를 살릴 수 있어야 하고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을 읽어 순간적으로 공격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김우진은 유광우가 완벽하지 않은 리시브에서도 공격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리시버들의 부담까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윤수 역시 "상대 블로킹을 속이면서도 공이 정확하게 온다"고 말했다.
유광우 한 명의 변화가 다른 세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재현, 박준서, 박태성 등도 토스의 템포를 높이면서 팀 전체가 스피드 배구에 맞춰 움직이는 중이다.
무엇보다 유광우는 틸리카이넨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 유광우는 감독이 원하는 배구를 '호기심 있는 배구'라고 설명했다. 정해진 답을 반복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선수 스스로 생각하기를 원하는 배구다.
감독의 철학을 이해하는 선수가 코트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팀에는 상당한 자산이다.

◆ 왕조를 무너뜨린 감독, 이번에는 왕조를 다시 세울까
삼성화재의 변화는 선수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유광우와 강승일뿐 아니라 부용찬, 박태성 등이 합류했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는 212㎝ 장신 아포짓 펠리페 호키를 선택했고, 아시아쿼터로는 빠른 공격과 강한 서브가 장점인 중국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 왕빈을 영입했다. 삼성화재는 왕빈을 소개하면서 틸리카이넨 감독의 빠른 배구에 적합한 선수라는 점을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퍼즐은 바뀌었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빨리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느냐다. 대한항공에서도 틸리카이넨의 배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부임 첫 시즌 1라운드 6위까지 떨어지는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국 시스템을 완성했고, 자신이 지휘한 세 시즌을 모두 통합우승으로 끝냈다.
삼성화재가 출발하는 위치는 당시 대한항공보다 훨씬 낮다. 8시즌째 봄배구를 경험하지 못했고 지난 시즌에는 36경기에서 단 6승에 그쳤다. 한때 V리그를 지배했던 '우승 문화'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삼성화재가 틸리카이넨에게 맡긴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전술 하나가 아니다. 대한항공에서 증명했던 빠른 공격과 다양한 선수 활용, 확률 높은 선택, 데이터와 소통, 그리고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문화를 팀 전체에 심는 작업이다.
흥미롭게도 틸리카이넨은 대한항공을 이끌며 삼성화재가 갖고 있던 3연속 통합우승 기록을 넘어 새로운 왕조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제 그가 향한 곳은 그 옛 왕조의 출발점이다. 왕조를 넘어섰던 감독이 이번에는 무너진 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 삼성화재의 명가 재건은 틸리카이넨의 '스피드 배구'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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