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초소형 기지국 통신망 접속 전면 제한
'펨토셀' 취약점 악용한 공격 가능성에 무게
"지역 불특정 다수 피해, 기존 해킹과 달라"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KT 가입자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 사고 원인으로 가상의 불법 초소형 기지국(Fake Base Station, FBS), 이른바 '유령 기지국'을 활용한 범행 가능성이 지목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을 통한 기존의 해킹 방식을 넘어 통신 인프라 보안 시스템을 악용한 사례라는 점에서 새로운 위협이 현실화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KT는 지난 8일 KT 우면동 사옥에서 이뤄진 과기정통부 현장조사 당시 고객 무단 소액결제 침해사고 원인의 하나로 불법 초소형 기지국의 통신망 접속을 언급했다.
공격자들이 실제 이동통신사의 기지국처럼 작동하는 가짜 기지국을 만든 다음 반경 내에 있는 휴대전화들이 해당 기지국에 자동으로 접속하도록 유도해 트래픽을 빼돌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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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KT 가입자들의 집단 소액결제 해킹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원인조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KT플라자의 모습. 2025.09.09 ryuchan0925@newspim.com |
업계는 초소형 기지국 역할을 하는 '펨토셀(Femtocell)'을 탈취한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펨토셀은 통상 가정이나 소규모 사무실 등 반경 10m의 실내 환경에서 통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초소형 기지국 장치다. 인터넷망을 통해 이동통신사의 통신망과 직접 연결되므로 보안·인증 절차가 취약하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휴대전화는 가장 신호가 강한 기지국에 자동으로 연결되는데, 공격자들은 KT가 운영하는 기지국보다 더 강력한 신호를 쏴 피해자들의 휴대전화가 펨토셀에 접속하도록 만든 다음 고유 가입자 식별번호 등을 해킹해 소액결제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KT는 2013년 세계 최초로 광대역 LTE 홈 펨토셀을 개발했다며 상용화에 나선 바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펨토셀을 통한 해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논문에서만 보던 기술 공격이 실현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장항배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이제까지 없던 방식"이라며 "보통 해킹 사건들은 사용자가 규명되고 피해를 보는데 이번 사태는 지역이 먼저 특정되고 해당 지역 내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계기가 해킹됐거나 가상의 중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가상 기지국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니 정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가상 기지국을 통한 해킹은 이론적으로 할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은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김용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가입자식별번호(IMSI) 캐처' 방식의 가짜 기지국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며 "KT 사태는 펨토셀로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했다.
'IMSI 캐처'는 불법으로 제작된 기지국 장치로 반경 약 1~3㎞ 안에서 휴대전화와 기지국 사이를 오가는 데이터를 가로챌 수 있다. 반면 펨토셀은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초소형 기지국으로 암호화된 음성과 문자를 푸는 복호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격자가 펨토셀을 탈취해 피해자의 메시지 등 정보를 도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펨토셀의 커버리지(서비스 제공 범위)가 작기 때문에 앰프(증폭기) 등 추가 장비를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 역시 "'IMSI 캐처' 장비는 고가이고 일반인들이 구입하기 쉽지 않다. 5000만원을 벌자고 이동 기지국을 설치하는 건 투자수익률(ROI)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해킹이 아닌 내부자 개입 가능성도 있다며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등 지역의 특정한 장소에 설치하는 기지국은 KT가 자체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협력사를 이용하기도 한다"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KT 서버 내에서 비정상적 가로채기를 시도한 로그 기록을 뒤지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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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직원들이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기지국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KT] |
KT는 현재 운영 중인 기지국 중 해커가 사용한 불법 초소형 기지국 및 다른 불법 초소형 기지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과기정통부의 요구에 따라 신규 초소형 기지국의 통신망 접속을 지난 9일 오전 9시부터 전면 제한했다.
김 교수는 KT의 초소형 기지국 차단 조치에 대해 "가짜 기지국을 탐지하기 위한 솔루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펨토셀 공격을 막을 수 없다"며 "현 상황에서는 통신사 차원에서 소액결제를 막아야 한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해커가 불법 초소형 기지국을 활용해 정보를 탈취했는지 여부와 어떤 방식으로 무단 소액결제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다른 통신사에도 공유하고 불법 기지국 외에 다른 침해사고 원인이 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