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로 포장된 증시 역주행…1400만 민심은 주가 불만
美 20년 연구...주가 하락시 대통령 경제정책 평가 즉각 하락
[서울=뉴스핌] 한기진 금융증권부장·부국장 = 코스피 5000은 허상이었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50억원에서 다시 10억원으로 낮추겠다고 하자, 1400만 주식 투자자들의 허탈감은 깊어졌다. 정부는 겉으로 '부자 감세 철폐'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실제 시장은 "정권의 증시 부양 의지가 의심된다"며 분노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정권이 스스로 국정 동력을 자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주식 10억원 보유자에게 대주주라는 낙인을 찍고 양도소득세를 매기겠다는 발상은, 정치가 시장을 다시 배신한 상징처럼 보인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부자 프레임'을 덧씌우는 현실은 주식 투자자들에게 냉소를 안겨줬다. 특히 삼성전자 주식 10억원어치를 보유하더라도 지분율은 고작 0.0002%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을 '대주주'라 부르고, 주식을 팔면 세금을 중과하겠다는 정책이 과연 상식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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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정책이 연말 증시 하방 압력 요인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주주 양도세 기준일을 앞두고, 개인 투자자들은 세금 회피를 위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는 '12월 매도' 관행을 반복해왔다. 지난해 대주주 기준이 50억원이었을 때에도 개인 매도는 4626억원에 달했다. 기준이 10억원이던 2023년에는 1조원, 2021년에는 3조원이 넘는 매도세가 터져 나왔다. 이런 매도는 단기 하락에 그치지 않고 연말 전체 시장의 투자심리까지 차갑게 만들며 '연말 증시 불신'을 고착시킨다.
여당은 '부자 감세 철폐'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실상은 명분도 실리도 빈약하다. 부자 감세라 비판하면서, 정작 부자들이 아니라 시장 전체 투자자들에게 부담을 씌운 셈이다. 시장에선 오히려 고액 투자자들이 시장에 들어올 유인이 있어야 장기 투자와 주주 환원,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진다고 본다. 개인투자자연합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부동산 하지 말고 주식하라더니, 개미들을 끌어들인 다음 뒤통수를 쳤다"며 "악법 중 악법"이라고 성토했다.
◆ 주식 해본 이재명, 부자 프레임으로 주식 시장 접근한 진성준
주식 관련 세법을 주도하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금융시장을 알지 못하고 있다. 주식 좀 해본 이재명 대통령의 자본시장 구상을 제대로 이해할 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동력 약화 우려다. 노트르담대학교, 홍콩 과기대 등 경영학자 4명이 연구한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와 증시 단면 효과 분석 논문(Presidential economic approval rating and the cross-section of stock returns(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2023)을 보면 대통령의 경제정책 지지율, 이른바 PEAR(Political Economic Approval Rating)은 실물 경제 지표보다도 주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논문은 1981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대통령 지지율과 S&P500 주가의 관계를 분석했다. 로날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바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데이터를 연구했다.
PEAR와 S&P500 수익률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주가가 떨어지면 대통령의 경제정책 평가는 즉각적으로 하락했다. 실업률,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같은 실물 지표보다도 더 빠르고 명확한 반응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는 통계보다 주식 계좌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뜻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정권 초반 기대를 모았던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들어 여러 경제 이슈에서 아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상호 관세 협상에 타결했지만 썩 개운한 결과는 아니다. 쌀, 소고기 수입은 막았지만 자동차 등 공산품은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증시까지 상승 탄력을 잃고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여당의 국정 추진 동력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대통령의 경제 지지 기반이 무너지면, 남는 건 '이재명 포비아'뿐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은 더욱 결집하고, 정부 정책은 악순환에 빠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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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운용지침 변경, 자사주 의무 소각, 공모가격 이하 처벌, 코스피A·B그룹 나눠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 대주주 기준을 연말까지 50억원 이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이것도 단기 처방일 뿐이다. 구조적 해법이 절실하다.
첫째, 주식 장기보유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주식은 하루 이틀 오르내리는 투기 자산이 아니다. 상장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한 투자자에겐 의결권을 추가 부여하거나 세제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안정적인 주주 기반이 있어야 기업도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의 운용지침을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시세차익 중심의 운용이 아니라, 배당 수익 중심의 장기 투자로 옮겨야 한다. 국민연금이 진정한 '장기 투자자'로 기능할 수 있다면, 전체 시장의 투자문화도 바뀐다.
셋째, 기업공개(IPO) 제도에도 가격 책임성을 부여해야 한다. 상장 이후 공모가 밑으로 주가가 지속된다면, 해당 기업은 책임을 져야 한다. 예컨대 상장 후 3년 내 주가가 공모가 이상으로 회복되지 못하면 '하위 리그'로 자동 강등시키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Kosdaq-A, Kosdaq-B로 시장을 구분하고, 일정 기간 하위 등급에 머물면 상장 폐지까지 검토하는 강한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밸류업 정책을 실효성 있게 만들기 위해 PBR(주가순자산비율) 기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자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PBR 1배 미만 기업은 Kospi-B 그룹으로 편입해, 상장 기업 전체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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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한기진 금융증권부장·부국장 |
다섯째, 경영진의 스톡옵션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주가와 경영 성과가 연동되지 않는 보수 체계로는 주가 부양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상장사의 임원들은 연봉의 절반 이상을 주식 매입권으로 지급받도록 제도화하고, 경영 성과와 연동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논의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조기에 확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사주는 오랫동안 경영권 보호 목적으로 사용했고 주가 부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회삿돈으로 주식을 사들여 오너의 경영권을 보호해주고, 반대로 일반 주주들한테 피해를 준다. 일종의 배임이다.
정치는 말로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외친다고 해서 시장이 움직였던 정권 초반이 아니다. 투자자는 정책을 보고, 제도를 보고, 정부의 진심을 본다. 시장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회복은 오래 걸린다. 이번 대주주 기준 개악은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다. 정권의 철학과 실행력이 시험대에 오른 사건이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증시는 또 한 번 등을 돌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정 동력 유지에 큰 짐이 된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