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 형상보다 깊은 기억으로"
감정 형상화한 네 작가 특별한 해석
전시 공간의 설계와 감정의 흐름, 공예와 디자인의 새로운 감정적 접근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서울 성동구의 공예·디자인 전문 갤러리 이서(Gallery Ether)가 한여름의 정서를 시적으로 구성한 기획전 <Imaginations of Midsummer: 여름밤의 동화>를 오는 7월 11일부터 2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대표이자 전시기획자인 서승준이 직접 기획했다. 서 대표는 "여름은 가장 감각적인 계절이다. 열기와 정지된 공기, 밤이 되면 감정들이 형상이 되어 떠오른다"며, "이번 전시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의 귀환이자 하나의 시적 구조물"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감정을 형상화하는 네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신창용은 전통 채색화 위에 슈퍼히어로들을 등장시켜 동양화의 평면성과 서구 캐릭터 서사를 겹쳐 보여준다. 산속에서 라면을 끓이는 배트맨과 조커의 모습은 유년기 감각과 동화적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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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갤러리 제공] |
박준상은 도자 피규어를 통해 12지신의 이미지를 키치하고 귀엽게 재해석한다. 전통과 현대, 기억과 유머 사이의 균열을 위트 있게 드러낸다.
주후식은 강아지를 모티프로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랑과 결핍, 장난기 어린 표정의 조각들을 통해 유년기의 잔상과 감정의 파편을 수집한다.
황재원은 반짝이는 색감과 매끄러운 질감의 조각을 통해 귀여움의 외피 속에 감춰진 고독과 분열된 자아를 암시한다. 진주목걸이를 한 강아지는 사랑스럽지만 가볍지 않은 존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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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갤러리 제공] |
전시 공간은 유년기의 방이나 꿈속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설계됐다. 낮은 조도, 벽과 바닥을 오가는 작품 배치, 작품 간 간격 등은 관객이 정해진 동선 없이 감정의 결을 따라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전시장에는 작품 설명도 없다. 형상들 사이로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기억을 되살리는 경험이 이어진다.
최근 미술계는 감정과 회고, 형상의 복원에 주목하고 있다. 감정은 더 이상 낭만적 주제가 아니라 동시대 현실의 균열과 잔여를 설명하는 언어로 작동한다. 이 기획전은 조형 언어가 감정의 파편과 상상된 기억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서승준 대표는 "공예와 디자인은 기능을 전제로 하지만, 기능이 사라질 때 감정을 위한 구조가 시작된다"며 "이번 전시는 기능을 지운 자리에 감정을 올려두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잃었다고 생각한 감정들은 사실 여전히 곁에 있으며, 다만 말이 되지 않을 뿐"이라며 "이 전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예의"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 운영되며, 7월 11일 오후 4시에는 오프닝 리셉션이 열린다. 장소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4길 16-20에 위치한 갤러리 이서. 참여 작가는 신창용, 박준상, 황재원, 주후식이며, 자세한 정보는 갤러리 이서 인스타그램(@gallery_eth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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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갤러리 제공 |
wind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