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회 관세' 법적 근거 재정비
의회 권한 VS 행정부 재량
미·중·우방국과의 협상 구도 변화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위법이라고 판결한 뒤 워싱턴의 관세 지형이 새 국면을 맞았다.
표면적으로 관세 완화 기대가 번지지만 실제로는 크게 네 가지 쟁점이 부상하며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해 주요 외신과 싱크탱크 및 투자은행(IB) 분석을 종합해 보면 트럼프 관세는 법적 근거와 권한, 부담 주체와 협상 구조 등 네 가지를 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첫 번째 쟁점은 관세의 법적 토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렸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6 대 3으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이 대통령에게 사실상 무제한의 관세 부과 권한을 위임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IEEPA 조문 속 두 단어, 즉 'regulate(규제)'와 'importation(수입)'을 근거로 어느 나라, 어떤 품목이든, 어느 수준이든, 얼마 동안이든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독자 권한을 주장했다"며 "이는 다른 관세 법률에 있는 절차적 장치들을 무력화하고 대통령에게 사실상 무제한의 통상·경제 권력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외교문제평의회(CFR)는 이번 판결이 대통령이 IEEPA를 무역정책 수단으로 쓰는 데 제동을 건 첫 사례인 동시에 관세와 조세는 헌법상 의회의 권한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글로벌트레이드얼럿은 이번 판결로 2025년 이후 IEEPA를 근거로 올려놓은 관세 가운데 단일 출처 기준 가장 큰 폭의 관세 인상이 한꺼번에 무효화됐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쟁점은 이미 징수된 막대한 관세의 대규모 환급 문제다. NPR과 여러 IB 분석에 따르면 IEEPA 관세로 걷어들인 수입세는 최소 1330억달러에서 최대 175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을 누가 얼마나 돌려받을지에 따라 기업 재무와 세수, 정치까지 연쇄 파장이 예상된다.
소비재부터 의류, 식품, 자동차 등 광범위한 업종의 수입업체들은 판결 전부터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환급 대기열에 미리 줄을 섰고, 코스트코와 레블론, 통조림 식품업체 범블비푸즈 같은 기업들은 관세가 위법 판결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개별 소송으로 자체 몫을 확보해 두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성명에서 "불법 관세의 신속한 환급이 수십만 개 기업과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것"이라며 관세 체계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했다.
문제는 대법원이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하급심과 행정부가 소급 적용 기간, 환급 신청 절차, 이자 지급 여부 등을 둘러싸고 추가 소송과 규정 정비에 직면했고, 일부 제조업체는 "원재료 가격 인상분까지 우리도 환급을 받아야 한다"며 공급망 단계별로 누가 얼마를 돌려받을지를 다투는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 관세를 잃자마자 다른 법적 수단을 동원해 관세를 재편하면서, 관세 전쟁이 형태만 바꾼 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CNN과 여러 외신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10%의 '글로벌 기준 관세'를 전 세계 수입품에 일괄 부과하는 새로운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이틀 뒤에는 이를 1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는 IEEPA가 아니라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삼았는데, 해당 조항은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나 달러 가치 급락을 이유로 최대 15%의 긴급 관세를 150일 동안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알자지라와 호주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역대 어느 대통령도 122조를 실제로 써 본 적이 없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법이 허용하는 상한선"까지 한 번에 끌어올리며 새로운 관세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다만 150일 이후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고, 122조 자체의 합헌성도 차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어 이번 15% 관세는 강력하지만 유통기한이 있는 '시한부 무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여전히 살아 있는 무역확대법 232조의 철강·알루미늄 안보 관세와 무역법 301조의 대중 제재 관세까지 더하면, IEEPA 관세가 사라진 뒤에도 글로벌 교역 환경은 높은 관세와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네 번째 쟁점은 이번 판결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상대국, 그리고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힘의 균형을 어떻게 바꿔놓는가에 관한 문제다.
CFR는 이번 판결을 대통령의 관세 권한에 대한 사법부의 첫 본격 제동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 중국과의 교섭 테이블에서 트럼프가 IEEPA 관세를 인질로 삼아 딜을 압박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CNN은 4월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아 있는 301조 대중 관세와 새 15% 글로벌 관세가 동시에 협상 카드가 될 것이며, 중국 입장에서는 위법 관세는 떨어졌고, 남은 관세도 합법성 논쟁에 휘말려 있다는 점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나라에 대한 수치"라고 비난, 곧바로 새로운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며 기존 무역질서를 흔드는 전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의회 안에서는 관세·조세가 본질적으로 의회 권한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통령의 관세 재량을 법으로 명확히 제한하자는 움직임과, 반대로 안보·대중 견제를 이유로 대통령에게 더 강력한 수단을 부여하자는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난다.
어느 쪽이든 이번 판결이 관세 입법 전쟁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 워싱턴에서는 관세 법제의 지형이 다시 그려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공급망과 기업 입장에서 트럼프 관세 새 국면은 관세 수준 자체보다도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의 문제로 다가온다. 글로벌트레이드얼럿의 정량 분석은 IEEPA 판결로 단기적으로 평균 관세율이 소폭 낮아지겠지만 122조 15% 관세와 232·301조 관세들이 중첩되는 구간에서는 일부 품목과 지역의 관세 부담이 오히려 높아지거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