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RTD·와인과 도수 경쟁 격화…정책 환경도 소주에 비우호적
원가 절감 효과 제한적…내수 둔화 속 방어적 전략 성격 짙어
플레이버 확대·수출 강화 병행…저도화 속 소주 산업 구조 전환 가속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국내 주류업계가 소주 도수를 잇따라 낮추며 '저도·저자극'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 20도 안팎의 강한 술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소주 시장은 최근 16도 이하로 낮아지며 소비자 부담을 줄이고 가볍게 즐기는 술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이달 저도화 흐름과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진로'의 알코올 도수를 15.7도로 조정하고 음용감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진로는 2019년 출시 당시 16.9도에서 16.5도, 이후 16도까지 단계적으로 도수를 낮춘 데 이어 이번에 다시 한 번 인하했다.
하이트진로 '참이슬 후레쉬' 역시 2006년 19.8도에서 현재 16도까지 낮아졌고, 2023년 출시된 '진로 골드'는 15.5도 수준이다.

롯데칠성음료도 '새로'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추며 부드러운 음용감을 강조했으며, '처음처럼' 역시 16.5도에서 16도로 조정하는 등 저도화 흐름에 동참했다. 일부 과일소주 라인업은 12도 수준으로 확대되며 소주 전반의 도수 하향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웰니스(Wellness) 소비 트렌드 확산이 자리한다. 저칼로리·제로슈거·저도주를 선호하는 소비 패턴이 강화되며 건강과 자기관리 이미지를 중시하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취하기 위한 술'에서 '기분 좋게 즐기는 술'로 소비 인식이 이동하면서 다음 날 부담을 줄이면서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다이어트와 컨디션 관리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층이 주요 타깃으로 부상하며 저도 소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엔데믹 이후 변화한 음주 문화도 도수 인하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강도 높은 회식이 줄고 혼술·홈술이 보편화되면서 빠르게 취하기보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마시는 음주 방식이 확산됐다. 이는 술자리의 양보다 경험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과 맞물리며 저도 소주 선호도를 높이고 있다.

하이볼과 RTD(Ready to Drink), 수입 맥주 등 저도 주류와의 경쟁도 소주 저도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5~7도대 주류가 일상적으로 소비되면서 기존 16도 소주조차 상대적으로 강한 술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에 체감 도수를 낮춰 시장 저변을 넓히려는 전략이 필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정책 환경도 소주 업계에 유리하지 않은 흐름이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2028년 말까지 하이볼 등 혼성주류를 대상으로 주세를 30% 한시 감면하기로 했다. 알코올 도수 8.5도 이하이면서 불휘발분 2도 이상인 제품이 적용 대상이며, 이에 따라 하이볼 소비자가격은 약 15%가량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소주는 증류주 과세 체계가 유지되는 만큼 도수를 낮추더라도 동일한 세제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부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도수를 0.1도 낮출 때 병당 약 0.6원 수준의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오히려 비용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도수 변경 과정에서 레시피 조정뿐 아니라 병·라벨 리뉴얼, 재고 전환, 생산 공정 수정, 품질 테스트, 유통 재정비, 광고·프로모션 등 다양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주류 시장 특성상 도수 인하를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워 수익성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도수를 낮추는 과정에서 맛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적 시도가 필요해 초기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향후 저도화 흐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단순한 도수 경쟁을 넘어 맛과 패키지, 브랜드 경험을 결합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플레이버 제품 확대, 칼로리·당류 저감, 믹솔로지 활용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며 소주가 '가볍게 즐기는 술'로 포지셔닝을 재정립하는 과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저도주 트렌드와 음주 문화 변화가 맞물리며 소주 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mky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