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024년 설비투자 미국 GDP 높여
전력 필두 물가·금리 상승 부추겨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전세계 인공지능(AI) 설비 투자가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거대한 자본 흐름이 이미 성장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과 고물가·고금리 여건을 부추기는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라는 경고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AI 도구를 이용해 투자은행(IB) 업계와 싱크탱크 자료를 종합해 보면 2026년의 AI 자본 지출이 전통적인 기술 투자 사이클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결론에 무게가 실린다.
골드만삭스는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와 AI 인프라 기업들의 AI 관련 설비투자가 2026년에만 500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추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FT)와 알파벳(GOOGL), 아마존(AMZN), 메타 플랫폼스(META)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AI 칩·네트워킹·전력 인프라 지출이 과거 어떤 IT 사이클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자금 여력과 대차대조표를 감안할 때 현 수준에서 더 상향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다.
스위스계 자산운용사 UBP는 보고서에서 2026년 빅테크의 자본 지출이 34% 이상 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반도체와 네트워킹 장비, 데이터센터 하드웨어, 클라우드 인프라 전체에 걸쳐 강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AI 투자가 글로벌 산업 성장의 가장 빠른 축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하이테크 생산과 데이터센터 구축, 통신·데이터 처리 업종이 세계 산업에서 '집중된 성장의 섬'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AI 투자 붐은 이미 성장 엔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JP 모간은 생성형 AI가 장기적으로 글로벌 GDP를 7조~10조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이미 2024년 데이터센터 투자가 미국 GDP를 0.1~0.3%포인트 가량 끌어올렸다고 추정한다.

같은 분석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본 지출 계획은 이미 주요 국가의 SOC(사회간접자본) 계획과 맞먹는 규모로 불어났고, 2026년 컨센서스 기준 AI 인프라 관련 자본 지출은 5000억달러 이상으로 잡힌다.
AI 설비투자의 1차 효과는 직접적인 투자 지출과 공급망 확대다. 반도체부터 고대역폭 메모리, 패키징, 네트워크 스위치, 옵틱스, 전력 장비, 냉각 장비, 건설·부지 인프라까지 하나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둘러싼 가치 사슬이 전방·후방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이 같은 구조 때문에 하이테크 제조와 전력 생산, 통신 및 데이터 처리 업종이 다른 섹터보다 월등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특히 미국 산업 성장률이 2026년 이후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재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2차 효과는 생산성 측면이다. AI 코파일럿과 자동화 도구가 사무·개발·운영 영역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보조하고, 제조·물류·소매 현장에서도 비전 또는 로봇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노동 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에 점진적인 상승 압력을 준다는 논리다.
뱅가드와 T.로우프라이스 등 대형 운용사들은 미국 성장률 전망에서 "AI 투자와 친(親)재정 정책이 결합되면서 2026년 성장률이 약 2.25% 수준으로 소폭 상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AI 설비투자가 단기간 버블로 끝나기보다 생산성 개선을 통해 일정 부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로를 그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AI 투자 열기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리스크를 지적한다. 우선 에너지와 전력 인프라 측면에서 AI 데이터센터가 가져올 수요 충격은 상당하다.
딜로이트의 2026년 글로벌 반도체·인프라 전망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는 2027년까지 추가로 92기가와트에 달하는 전력 수요를 만들어낼 전망이고, 이는 미국과 일부 주요 지역 전력망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칩 공급보다 전력망 용량이 데이터센터 증설의 병목이 되고 있고, 변압기와 스위치기어, 냉각 설비, 백업 발전 등 '덜 섹시한 인프라'가 프로젝트 속도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송배전망과 재생에너지, 피크 대응 설비에 추가 설비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는 에너지 가격과 인프라 비용을 통해 중장기 물가 경로에 새로운 상방 요인으로 지목된다.
재정과 금리의 측면에서도 변수는 크다. T.로우프라이스와 뱅가드는 AI 투자와 확장 재정정책이 결합되는 미국의 상황을 '성장은 받쳐주지만 인플레이션이 2% 아래로 꺾이지 않는 환경'으로 묘사한다. 뱅가드는 2026년 미국 성장률을 2.25%, 코어 인플레이션을 2.6% 수준으로 예상하면서 이 조합으로 인해 연방준비제도(Fed)가 정책금리를 중립수준인 3.5% 아래로 과감히 낮추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Blowing Bubbles(부풀어 오르는 거품)'라는 제목의 2026년 글로벌 마켓 전망에서 AI가 이익과 생산성을 끌어올려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AI가 초래하는 높은 자본 지출과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 채권 금리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을 경고했다.
T.로우프라이스는 "AI 투자와 확장 재정이 미국의 성장을 재점화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를 키우는 조합"이라고 판단하며, 연준이 이 미묘한 균형을 맞추느라 '정책 긴장'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뱅가드 역시 2026년 말 미국 정책금리가 3.5%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이 기대하는 수준의 전폭적인 금리 인하가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양한 분석들을 AI 도구로 한 번에 모아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미국은 AI 설비투자 덕에 성장률과 기업 이익 기대가 상향되는 대신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의 바닥이 높아지는 "고성장·고금리" 조합에 가까워진다.
반면 유럽과 일부 선진국은 AI 설비 투자 사이클에 본격적으로 편승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과 낮은 금리, 완만한 물가를 받아들이는 "저성장·저금리" 블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AI 가치 사슬에 깊게 연결된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