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정부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작전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압송을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지지'와 '비판' 중 어느 쪽에도 명확히 서지 못한 채 대응 방향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보의 기축인 '미일 동맹'과, 그동안 대외 정책의 기조로 내세워 온 '법의 지배'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평가가 일본 안팎에서 나온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4일 엑스(X)에 글을 올려 "재일 일본인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관계국과 긴밀히 연계해 대응하고 있다"며 자국민 보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미군이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미 본토로 압송한 군사작전 자체의 정당성이나 평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같은 게시글에서 일본이 "자유,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기본적 가치와 원칙을 존중해 왔다"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미국의 행동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표현은 삼가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과 정세 안정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 '법의 지배'와 '동맹' 사이의 딜레마
이번 미군의 무력 공격과 외국 국가 원수의 강제 연행은 주권 침해와 유엔헌장 위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국제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비판하면서 "일방적인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와 "법의 지배"를 외교의 핵심 가치로 내세워 왔기 때문에, 미국의 행동을 사실상 용인할 경우 지금까지의 입장과의 정합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일본의 안보 정책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고 있어,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만 유사시 미일 연계를 강화해 온 상황에서 이번 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중국이 대일 압박을 더욱 강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일본 정부가 고려하는 대목이다.
외무성은 베네수엘라 주재 일본 대사관을 중심으로 일본인의 안전 확인과 정보 수집을 강화하는 한편, 미군 작전의 적법성과 타당성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총리 관저 역시 "정세 안정에 기여하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수준의 논평만 내놓으며,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압송의 당부에 대해서는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총리의 메시지에 대해 "미국과의 거리감을 의식하면서도, 그동안 일본이 강조해온 법의 지배와 어긋나지 않도록 표현을 매우 신중하게 골랐다"고 전하며, 정부가 처한 곤란한 입장을 드러냈다.
향후 주요 7개국(G7) 및 주변국과의 공조, 그리고 미국 의회와 국제여론의 흐름을 지켜보며, 어느 지점까지 독자적인 톤을 낼지 내부 조율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중 기준' 비판 가능성도
일본 야당은 미국의 군사작전이 국제법상 정당한 자위권 행사인지, 또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지 따져야 한다며 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부 야당 인사는 "마두로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해 타국으로 이송하는 것은 국제법상 중대한 문제"라며 일본 정부에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여당 내부에서는, 대중·대러 억지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동맹국인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고, 총리의 '애매한 메시지 전략'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에 대한 공개 비판을 자제하는 대신, 비공식 채널을 통해 우려를 전달하는 '이중 트랙' 접근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공식 발언은 "자국민 보호", "민주주의 회복", "정세 안정" 등 추상적인 문구를 반복하면서, 미국의 군사행동 자체에 대한 명시적 평가를 피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행동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을 강하게 비판해 온 일본이, 미국의 유사한 군사행동에는 침묵을 지키게 될 경우 '이중 기준'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