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유럽중앙은행(ECB) 최고 수뇌부 상당수가 내년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후임을 둘러싼 국가별·개인별 물밑 경쟁이 벌써부터 치열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ECB 집행위원회 구성원 6명 중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비롯해 루이스 데 귄도스 부총재,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사벨 슈나벨 집행이사 등 4명이 내년 물러날 예정이다.
귄도스 부총재와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임기는 내년 5월 말까지이며, 라가르드 총재는 10월 말, 슈나벨 집행이사는 12월 말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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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로이터 뉴스핌] |
FT는 ECB 관계자 3명을 인용해 "ECB가 우선 귄도스 부총재 교체를 위한 공식 절차를 시작해 달라고 곧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요청할 예정"이라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 정책 역할을 담당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요국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핀란드는 경제학자이자 전 EU 집행위원인 올리 렌 중앙은행 총재를 ECB 부총재 후보로 내세우기로 결정했고, 크로아티아는 보리스 부이치치 중앙은행 총재를 지명할 예정이라고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이 전했다. 한 관계자는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이번 주 중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차기 ECB 부총재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의 국적과 통화정책에 대한 입장이 라가르드 총재의 후임자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라가르드 총재의 후임을 향한 비밀스러운 경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며 현재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클라스 노트와 독일연방은행(분데스방크) 총재 요아힘 나겔 등 두 명의 경쟁자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세 번째 후보로 전 스페인 주지사인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가 꼽히고 있다"며 "그는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의 총재이자 존경받는 전직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시선은 노트 총재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달 네덜란드 팟캐스트 '칼리지 리더스 인 파이낸스'에 출연해 "노트 총재는 지성과 체력을 갖추고 있으며 사람들을 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는 보기 드물고 매우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CB 총재직을 수행하려면 뛰어난 사회성이 필요하다"며 "노트가 유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네덜란드 중앙은행 등에서 30여년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노트 총재는 유로존 국가 부채 위기 초기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며 위기 속에서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의 전략을 지지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또 ECB가 아직 시행하지 않은 긴급 채권 매입 제도를 옹호하고 있다.
독일의 나겔 총재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독일 정부에 차기 ECB 총재로 자신을 밀어달라고 로비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와 스페인, 인도, 미국 등을 돌며 "새로운 세계적 역할에 맞춘 유럽의 재정비" 등의 주제로 연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수석 경제 고문이었던 라르스-헨드릭 뢸러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독일인이 ECB를 이끌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복잡하다"고 말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인맥이 두터운 나겔 총재는 중도적 견해를 가진 상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와 긴밀히 협력하는 분데스방크 직원들은 나겔 총재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 하에서 분데스방크는 통화 정책의 정통성을 완화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작년에 "독일 산업 시스템의 기반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다른 주요 EU 기관에서 독일의 지배력이 강하다는 것이 그에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FT는 진단했다.
한편 ECB 집행위는 어떤 나라도 이사회 의석을 두 개 차지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며, 각국 정부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균형을 맞추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유로존에 가입한 동유럽과 발트 3국이 ECB 이사회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라트비아는 공개적으로 의석 확보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성별 균형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ECB 이사회는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었으며, 1998년 이후 26명의 이사 중 여성은 19%에 불과했다. 한 관계자는 "프랑스와 유럽 의회는 특히 젠더 문제를 강조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프랑스 중앙은행 부총재 아녜스 베나시-케레와 그리스 중앙은행 부총재 크리스티나 파파콘스탄티누가 이사회 의석을 차지할 강력한 여성 후보로 평가되고 있다. 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전 수석 경제학자 로랑스 분과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엘렌 레이도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