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리는 앞으로 닥칠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5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무역 상황과 이번에 주요 정책 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하한 결정 등을 고려할 때…"라며 그같이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등 복합적인 충격에 대응해 온 통화 정책 주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참여자와 다른 파트너, 상이한 정책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분석하고 평가하고 측정해 (인플레이션이) 2%의 중기 목표를 달성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 회의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리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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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5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시장에서는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이 예상밖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라가르드의 발언은 시장을 놀라게 했다"면서 "그는 ECB가 일련의 금리 인하 과정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해석했다.
RBC의 수석 거시경제 전략가인 피터 샤프릭은 "라가르드 총재의 메시지는 ECB가 (금리 인하) 주기를 끝맺을 시점에 가까워졌으며 이를 위한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다"며 "시장이 사전에 예상했던 것과 비교하면 메파적인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류 케닝엄은 "라가르드는 '우리는 현재 좋은 위치에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며 "이는 아마도 금리를 더 이상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투자자들은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었고, 스왑 시장은 하반기에 단 한 차례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ECB 결정과 라가르드 총재 기자회견 이전에는 두 차례 인하 전망이 제기됐었다.
ECB는 이날 주요 정책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지난 1월과 3월, 4월에 이어 네 번째 인하 결정이다.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1.0%포인트 낮췄다.
예치금리는 연 2.25%에서 2.0%로, 레피금리(Refi·RMO)는 2.40%에서 2.15%로, 한계대출금리는 2.65%에서 2.40%로 낮췄다.
이날 결정으로 금리(예치금리 기준)는 지난 2023년 9월 4.0%로 올린 때와 비교할 때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 또 2022년 12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6월 처음으로 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후 여덟 번째이다.
예치금리는 시중은행이 ECB에 하루짜리 단기자금을 맡길 때 적용하는 금리이다. ECB는 주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예치금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금리 인하 결정이 '거의 만장일치'였다고 말했다. 0.25%포인트 인하를 지지하지 않는 집행위원이 한 명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사람이 이 안을 지지했기 때문에 "매우 광범위한 합의 또는 만장일치 지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럽연합(EU)과 27개 회원국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유럽 재무장'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는 "최근 방위 및 인프라 투자를 늘리기 위한 조치가 발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성장도 촉진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에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제를 더욱 생산적이고, 경쟁력 있고, 회복력 있게 만들기 위한 재정 및 구조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역과 관세 갈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나타냈다.
그는 "관세 인상과 유로화 강세로 기업들의 수출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높은 불확실성은 투자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경제 성장에 대한 리스크는 여전히 하방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세계 무역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수출이 위축되고 투자와 소비가 위축돼 유로존 성장률이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26년 물가상승률이 ECB의 2% 목표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이유에 대해서는 "근본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변동성이 큰 석유·가스 가격 하락과 유로화 강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원 인플레이션은 거의 변동이 없고 우리 목표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진단했다.
ECB는 이날 성명에서 올해 평균 물가상승률이 2.0%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은 1.6%로 더 낮아지고, 2027년에는 2.0%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이날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0.5% 상승한 1.147 달러에 거래되며 강세를 보였다. 또 2년 만기 독일 국채 수익률도 장중 0.07%포인트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