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소는 그냥 되돌아왔다. 마음에 풍파나, 리듬이 일지 않는 여자. 그녀의 감정은 늘 부동자세였다. 손 한 번 잡아 주지 않는, 소박한 말 한마디로 감싸주지 않는 비정함. 그 비정함에 난 매료당했다. 얼음을 먹고 싶은 마라톤 선수처럼. 뜨거운 아스팔트를 밟아나가는 고된 질주 속에 차가운 얼음을 물면, 입 안 가득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녀는 부동의 얼음처럼 그렇게 걸었고, 간결하고 담백하게 말을 하였다. 하지만 내면에서 조용히 웃는 미소. 그 하나의 징표로 나의 많은 괴로움들이 정화되었다.
난 왜 이 우둔한 사랑에 골몰하는가. 아무 보상 없이, 사십대를 쓰라린 실업의 골목으로 내모는 이 위험한 시대에. 내 감성은 그때 한 여자에게 칭칭 감겨 있었다. 너무 세게 감겨, 그녀가 떠난 뒤에도 감성은 스스로를 풀지 못하고, 꽁꽁 묶여 신음하며, 사물들의 소리를 왜곡된 소리로 들었다.
비
너를 왜곡해야만
난 시를 쓸 수 있단다
지독한 오해를 타고
한 여자를
깊숙히 사랑했던 것처럼
비야
너를, 그녀를 못살게 굴면서
난 온갖 광기의 마술을 부렸단다
발가벗은채 나는
검은 우비 하나 만들어
그녀에게 입혔다 벗겼다
너에게 씌었다 뺏었다 했지
그리고 돌아서서
혼자 킬킬거리며 울었어
어때 슬프지?
하나도 안 슬픈 비야
울지도 않고 떠나간 여자야
어때 슬프지?
난 너를 왜곡해야지만
시를 쓸 수 있단다
(198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