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24일 열릴 예정이던 국회 본회의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여야 입장차로 무산되면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쟁점인 '패스트트랙 제도'(신속처리제도) 및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와 관련한 해외 입법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의안의 신속한 처리를 도모하는 해외 제도 사례로는 미국 의회의 '위원회 심사배제 요청' 제도와 '규칙위원회의 특별규칙 채택', 일본의 '직권상정' 제도 등이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 하나 하나의 형식보다는 전체적인 배경과 맥락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패스트트랙제도
미국 의회의 '위원회 심사배제 요청' 제도는 상임위원회에 법안이 회부된 이후 한달이 지나도록 상임위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의 심사권을 박탈하고 본회로 바로 회부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하원에만 있고 상원에는 없는 제도로 발동요건은 의원 과반수의 서명이다. 미 하원은 435명이기 때문에 218명이 서명해야 한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장이 갖고 있는 '직권상정'과 같은 제도다.
하지만 미국의 '위원회 심사배제 요청' 제도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일종의 신속처리제도를 둬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맥락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미) 의원 218명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21세기 내내 성공한 게 몇 건이 안될 정도로 의미가 없는 제도"라며 "항상 이용되는 제도가 아니다. 상징적인 의미의 제도"라고 설명했다.
'위원회 심사배제 요청' 제도 외에도 미국에는 '규칙위원회'(rules committee)라는 특별위원회를 이용해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는 상임위가 의결한 법안에 대해서 본회의에서 어떤 과정으로 심의할 것인지를 규칙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상임위원장이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본회에서 특정 법안에 대해 수정안 인정 여부와 토론 제한 여부 등과 관련한 규칙을 정해 해당 법안의 본회의 처리 과정을 앞당기는 것이다.
상임위원장이 규칙위원장에 요청하는 데 특별한 요건은 없다. 규칙위원회에서는 상임위 법안심사절차와 동일한 절차(의사정족수 과반수)로 심사 표결에 부쳐 규칙을 채택한다. 규칙위가 채택한 규칙은 하원 본회의 과반수 찬성을 통해 의결되는데, 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국회선진화법'의 패스트트랙과 차이점은 있다. '특별위원회의 특별규칙'은 상임위가 의결한 법안에 적용되는 반면 '국회선진화법'의 패스트트랙은 상임위 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법안을 대상을 하고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되면 상임위가 심의를 하지 않아도 27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이후에는 본회의로 자동으로 회부된다.
이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의 신속처리안건을 지정하는 의결 정족수도 문제지만, 자동상정시스템이 더 문제"라며 " 원구성부터 국회운영 전반에 대해 정당 간 협의를 통하는 우리 국회 운영시스템과 다수당 중심으로 하원 운영을 하는 미국과 맥락이 전혀 다른 차원의 제도"라고 설명했다.
주요국 가운데 미국 이외에 신속처리제도와 비슷한 제도는 일본의 '직권상정' 제도를 제외하면 없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국회운영위원회 입법조사관 임재금 과장은 "일본 정도가 직권상정 제도를 갖고 있다"며 "일본은 양원제 각 원의 재적 과반수에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게 하는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 필리버스터
'국회선진화법'의 필리버스터 제도와 비슷한 사례는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가 있다. 미 의회에는 '국회선진화법'에서 요구하는 '재적의원 1/3이상 요구'의 발동 요건이 없다. 상원 규칙상 상원의장이 발언을 하려는 의원을 인식(recognize)하고 발언권을 주면, 의장은 발언 중인 의원을 중지시킬 수 없게 돼 있다.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려면 재적의원 3/5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국회선진화법'에 그대로 이식된 조항은 필리버스터 종료 요건인 '재적의원 3/5 요건'이다. '국회선진화법'에서도 무제한 토론을 강제로 종료하려면 재적의원 3/5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국회(의장) 모델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양당제인 데다 제3·4당이 사실상 없어 60석(재적 3/5)을 상대적으로 충족시키기 쉽고, 크로스보팅(교차투표)도 가능해 토론종결이 보다 용이하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당의 내부 규율이 강해 교차투표의 가능성이 적은 데다 19대 의석 배분상 재적의원 3/5를 충족시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결국 소수당이 입법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휠씬 커지게 되고 필리버스터가 입법교착의 또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임위 등에서 의장이 발언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현 우리나라의 의장 모델과도 맞지 않는 미국 상원식 의장 역할을 그대로 끼어맞춘 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필리버스터는 기본적으로 하원과 다른 상원의 특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상원은 의원 개개인이 갖는 권한이 하원에 비해 굉장히 큰 데다 의원들의 관계가 수직적인 하원과 달리 수평적이다. 상원의장(부통령)이 사실상 회의 주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다선의원이 임시의장 형태로 회의를 주재하는 특성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지금안('국회선진화법')은 문제가 되는 것을 각각 좋은 제도에서 하나하나씩 따다가 조합해 놓은 것"이라며 "그 제도들이 각 나라에서 운영되는 맥락과 문화, 배경이 있는데 그런 것은 잘라놓고 제도만 갖다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회법개정안('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더라도 이제까지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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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