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연설이 '인종 정치' 무대로…분열 심화 우려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 후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자신에게 항의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전례 없는 수준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이민자 출신 유색인종 의원들을 겨냥해 "출신 지역으로 돌아가라"며 네이티비즘(외래인 배척주의)적 공세를 재하면서, 미국 정치권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려 전날 연설 도중 고성으로 항의한 민주당의 일한 오마르(미네소타), 라시다 틀라이브(미시간) 의원을 지목해 "지능지수(IQ)가 낮은 정신병자(lunatics)"라고 적었다. 그는 "충혈된 눈을 한 모습이 마치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 같았다"고 조롱하며, "이들은 부패한 정치인이며 미국에 해악을 끼치고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이 왔던 곳(where they came)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유색인종 여성 하원 의원 4인방(이른바 더 스쿼드)을 향해 썼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수사를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두 의원 모두 미국 시민권자이며, 특히 틀라이브 의원은 디트로이트 태생의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추방'을 암시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관계 왜곡을 넘어선 혐오 표현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의회에서 약 108분간 진행된 국정연설에서 자신의 경제 성과를 자찬하고 민주당을 조롱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미쳤다(crazy)"고 몰아세우며 현장 분위기를 거칠게 몰고 갔다.
이에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오마르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 성과 발언 도중, 최근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이민단속 요원의 총격 사건을 겨냥해 "당신은 미국인을 죽였다"고 소리쳤고, 팔레스타인계인 틀라이브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언급하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라고 고함쳤다. 이 밖에 알 그린(텍사스) 의원은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강제 퇴장당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난의 화살을 의회 밖으로도 돌렸다. 자신을 꾸준히 비판해온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방송인 로지 오도넬을 겨냥해 "지능이 낮은 병든 자들"이라고 폄하하며 "함께 배를 타고 떠나야 한다"고 조롱했다. 특히 드 니로가 연설 시청 중 눈물을 흘린 것을 두고 "어린아이 같은 붕괴"라고 묘사하며 인신공격을 이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두 의원을 상대로 '인종차별적 은유(racist tropes)'를 동원해 왔으며, 이를 진보 성향 여성의원을 겨냥한 정치적 공세이자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인종 정치(racial politics)'의 도구로 활용해왔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인종적·정치적 혐오 수사를 한층 노골화하면서, 국가 통합과 비전 제시의 장이어야 할 국정연설이 오히려 정치적 적대와 선동의 무대로 변질됐다는 평가다. 향후 미 정치권에서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더욱 좁아지고, 이민·인권·동맹 정책을 둘러싼 내홍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