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프랑스가 수개월간 이어진 정치적 교착 끝에 2026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소수 중도우파 정부를 이끄는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의회 불신임 투표를 통과하면서,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한 예산안이 공식 채택됐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프랑스 의회에서 야권이 발의한 불신임안을 가까스로 부결시키며 정국 위기를 넘겼다. 사회당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공지출과 세제에서 일부 양보를 한 만큼, 불신임안 부결은 대체로 예상된 결과였다는 평가다.

르코르뉘 총리는 의회 표결 없이도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헌법상 특별 권한을 발동했다. 다만 이 절차는 내각이 불신임 투표를 통과해야 효력을 갖는 구조로, 이번 표결 결과가 예산 확정의 관건이었다.
확정된 국가 예산안과 사회복지 지출 예산에는 타협 흔적이 다수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해 온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개혁안은 철회됐다. 또 프랑스 내 매출 10억유로(약 1조 7100억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한시적 법인세 인상 조치도 연장됐고, 기업 활동에 부과되는 이른바 '생산세' 인하 공약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러한 정책 후퇴에 대해 "정치적 안정과 예산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대가"라고 설명했다. 확정된 예산안에는 국방비 증액도 포함됐다. 그는 "이제 다른 과제로 나아가고, 프랑스가 예산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국의 불안정성은 최근 수년간 심화돼 왔다. 프랑스는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전례 없이, 불과 2년여 만에 네 명의 총리를 교체했다. 이로 인해 예산안 처리도 반복적으로 지연되며, 연말 시한을 넘기거나 정부 기능 마비를 피하기 위한 임시 예산 연장이 잦아졌다.
재정 상황은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프랑스의 2024년 말 기준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8%로, 유로존에서 루마니아(9.3%)와 폴란드(6.5%)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새 예산안을 통해 적자 비율을 올해 약 5%로 낮추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2025년 말 예상치(5.4%) 대비 제한적인 개선에 그친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이 정한 재정적자 한도인 GDP 대비 3%에는 여전히 크게 못 미치며, 이를 2029년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산안 통과 기대가 커지면서 채권시장은 최근 안정을 되찾았다. 프랑스 10년물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는 최근 0.6%포인트 아래로 내려갔는데,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2024년 6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가 패배한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채권 부문 책임자인 로저 할럼은 프랑스 국채 비중을 '비중 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예산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며 유로존 국채 전반의 랠리에 프랑스도 동참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프랑스 재정의 장기적 경로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후보군은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존 스톱퍼드 멀티에셋 인컴 부문 대표는 "차입 구조와 EU와의 관계를 둘러싼 지속적인 우려로 대선을 앞두고 다시 금리 스프레드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