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3구역 재개발, 무악재성당과의 충돌 심화
북아현2구역도 비슷한 갈등 겪다 올 초 극적 봉합
종교시설 이전, 법적 소송과 협상의 연속… 강제력 갖추기 어려워
법조계 "합의가 최선… 강제집행도 쉽지 않아"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수도권 정비사업 기대주로 꼽혔던 다수의 조합이 성당과 교회 등 종교시설과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가며 사업 지연을 직면하고 있다. 통상 보상금 합의가 쟁점이 되는 만큼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통에 조합원 속만 타들어간다. 그러나 이를 강제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어 해결이 요원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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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요 시도 재개발 구역 및 보상금 관리 현황.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 보상금 둔 조합-종교시설 '눈치게임'… 피해는 조합원이?
1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따르면 홍제3구역 재개발 조합은 이달 초 천주교 서울대교구 관리국에 무악재성당을 인도할 경우 132억원58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현재 이주율이 98%에 달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성당 측이 점유를 유지하는 탓에 철거가 늦어지자, 조합이 마지막 협상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조합과 무악재성당과의 갈등은 사업 초기부터 시작됐다. 성당 측은 존치를, 조합은 성당 부지를 포함한 재개발을 추진해서다. 결국 조합은 지난해 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상대로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과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성당 측이 이전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종교부지와 공원부지의 맞교환을 수용, 지난해 초 정비구역 변경 고시까지 마쳤음에도 이주를 미뤘다는 이유에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또한 조합을 피고로 하는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은 2012년 성당에 매도청구권을 행사, 소유권이전등기 이전등기의 소를 제기해 2014년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의 소멸시효는 10년이므로 손실보상액을 '토지보상법'에 따라 새로 책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지난달 조합의 손을 들어줬으나 교구는 성당 이전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조합원 사이에선 "이 정도로 양보했으면 강제집행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조합 측은 성당이 이전을 계속 거부한다면 불가피하게 강제집행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강제집행은 명도 소송에서 승소한 뒤 2주 후부터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조합은 명도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교구와의 합의가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모두 준비 중"이라며 "소유자인 조합이 사용 수익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집행을 하면 어쨌든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성당이 자진해서 퇴거한다면 조합 총회에서 추가 보상금 지급을 안건으로 올려 최대한 보상하겠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종교시설 이전 문제로 부침을 겪은 수도권 내 정비사업 조합은 이곳뿐 만이 아니다. 마포구 북아현2구역 재개발 조합도 사업지 내 아현동성당과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를 이유로 법정다툼을 겪다 최근 극적 합의에 성공했다. 성당 측은 일부 동의 층수를 조정하는 설계변경과 함께 약 180억원 상당을 투입한 새 성당 건립을 요구했지만, 조합과의 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2023년 사업시행계획인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 1심에서는 조합이 승소했지만, 12월 2심이 1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조합의 마음도 바빠졌다. 성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사업시행계획부터 다시 짜야 하기에 사업 지연에 따른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이후 공식 사과와 함께 성당의 합의안을 수용하기로 했고, 해당 안건이 올 2월 대의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상적인 재개발 진행이 가능해졌다.
경기 성남시 상대원2구역 재개발 조합은 사업구역에 위치한 교회 여러 곳의 이주가 지연되면서 지난해 말 시공사인 DL이앤씨로부터 철거공사 중단 통보를 받았다. 철거 공사가 80%가량 이뤄진 상황에서 교회가 자리를 지키면서 대기 비용과 공사 지연에 따른 현장 상주인력 관리 비용이 늘어나자 장비와 인력을 아예 빼버린 것이다. 조합 측은 각 교회를 대상으로 명도 소송을 제기해 3심 간 끝에 승소했다. 이에 공사는 재개된 상황이다.
◆ 재개발 속도보다 우선되는 '종교의 자유'… 사업 걸림돌 어쩌나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 사업지 내 부동산 소유자가 사업에 참여하면 조합원이 되는데, 이때 종교시설만 따로 분류하진 않는다. 이사를 가거나 잠시 가게를 이전하면 되는 주택이나 상가 소유자와 달리 종교시설은 공사 중에도 꾸준히 활동해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어 이전이 특히 어렵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전국 재개발 구역 및 보상금 관련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재개발 구역 수는 총 186곳이다. 이 중 종교시설 이전이 필요한 재개발 구역은 30.1%(56곳)이나 된다. 전국에선 23곳 사업장의 70.8%(17곳)가 종교시설과 갈등을 겪고 있는 대전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진행 중인 사업지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75곳)로, 세 곳 중 1곳(22곳, 29.3%)이 종교시설 이전으로 협의 중이다. 이 가운데 8곳은 보상금 지급을 마쳤고 3곳은 지급 과정에 있다. 이렇게 집계된 총 보상금 규모는 약 2068억원이다. 나머지 14곳은 아직 지급 여부나 금액도 미정이다.
현행 법령엔 정확한 보상금 액수 비중도 없다. 종교시설에 지급해야 할 보상금 액수를 법령으로 묶어두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서울시는 2009년 '종교시설 처리방안'을 마련, 재개발 사업 관리처분계획 수립 시 종교시설은 우선 존치를 검토하고 이전이 불가피할 땐 조합이 ▲기존과 같은 면적의 용지(대토) 제공 ▲사업 기간 동안 사용할 임시 장소 마련 등을 제안했다.
이러한 지침에도 이를 따르는 조합이나 종교시설이 많지 않다. 단순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는 탓이다. 조합과 종교시설 간 합의가 안 되면 결국 소송밖엔 답이 없다. 사건이 법정으로 가게 되면 조합이 불리해질 확률이 높다. 정비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업이 지연되면 금융비용이나 공사비 인상 등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더 클 수도 있다. 종교시설이 부르는 대로 최대한 보상금을 맞춰주는 조합이 많은 이유다.
현실적으로 정비사업 대상지 내 종교시설 보상기준만을 다루는 입법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종교의 자유는 한국의 최고 상위법인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는 논리가 배경이 된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과 종교시설 사이 보상금 지급 기준을 명문화한다면 사인 간 민사적 관계를 규율하는 데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종교마다 신도마다 신앙의 깊이나 종교시설이 일상을 차지하는 정도가 모두 다른데 그 편익을 일원화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강제집행이 쉬운 것도 아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협의가 안 되면 명도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조정을 거치거나 끝까지 가서 강제집행 판결을 받기도 한다"며 "강제집행 판결을 받아도 무작정 안 나가고 버틴다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성북구 장위10구역 재개발 조합은 사업지 내 사랑제일교회와 수 년간 이주를 사이에 두고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정비사업에서 교회 자체를 제척해버렸다. 조합은 교회를 상대로 명도 소송을 제기, 3심까지 승소한 뒤 공탁금을 내고 강제집행을 하려 했지만 반발이 너무 거세 여섯 차례의 시도 끝에 교회와의 협의를 아예 포기했다. 당시 교회 측이 요구한 보상금 563억원 중 500억원까지는 지급하겠다는 조합원 의사도 없던 일이 됐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