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부터 내·외부 경고에도 황 박 두 前행장 묵살 일관"
[뉴스핌=한기진·배규민 기자] 황영기 전 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대한 제재를 둘러싼 논란이 전개되면서 황 회장측 옹호론 중에는 감독기구들은 뭐했느냐며 역공을 펴는 흐름도 있다.
우리금융의 대주주로서 경영개선 모니터링을 수행해 온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나 건전성 감독의 중책을 맡은 금융감독원 역시 부실 발생에 따른 책임이 없지 않다는 논리인 셈이다.
특히 황 회장이 우리금융 및 우리은행 CEO(최고경영자)를 그만둔 뒤였던 지난 2007년 5~6월 종합검사에 들어갔던 금감원이 왜 당시에는 문제 삼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들춰서 문제 삼느냐는 목소리의 강도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금감원과 예보의 감독 또는 관리 책임은 적절히 수행됐는지 황 회장이 우리금융·우리은행 재임 시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거슬러 가본 결과 황영기 당시 행장뿐 아니라 박해춘 전 행장, 그리고 당시 리스크내부협의회 위원장을 지냈던 이종휘 현(現) 행장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상이 짙다.
◆ 2004년부터 투자 주의 및 경고 여러 차례
2004년, 우리은행은 CDO(부채담보부증권)투자검토에 착수했다. 그러자 금감원은 두 장의 문서를 보낸다. 내용인 즉 ‘유동성 문제와 투자손실 우려가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독단적으로 투자를 결정하지 말고 여러 부서와 협의체를 구성, 심사, 의결할 것’도 특별히 요구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것으로 끝난 것을 보면 제대로 받아들여졌는지 의문스럽다.
같은 무렵 예보와 당시 우리은행 박환균 상근감사위원도 같은 내용의 지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구조화증권은 원래 유동성이 떨어지는 상품이고 당시 주간사들이 물량을 최대한 쏟아내려 하는 등 왜곡현상이 있어 상품특성을 투자자들이 알아야 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황영기 당시 행장에게 상품투자주의를 담은 문서를 직접 보내, 또 한번 자제요구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우리은행의 CDO와 CDS(신용부도스와프) 투자는 2004년 이후 4년에 걸쳐 계속된다.
감독기구 관계자들은 적어도 세 차례의 주의 당부 등을 무시했다고 인식한다.
이 인식에 따르면 2007년 종합검사에서 문제 삼지 않다가 왜 이제 와서 표적 제재를 하느냐는 역공은 당연히 설득력이 소실된다.
이에 대해 황 회장 측은 “직접 투자지시를 내린적이 없을뿐더러 리스크관리협의회 등 내부심사를 거친 정상적인 투자였다”라는 입장이다.
또 “부행장 전결의 적법한 투자였다”며 “천재지변에 가까운 금융위기로 발생한 유가증권 투자 손실은 금융 감독 당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감독기구와 내부 일각의 우려를 무시 또는 묵살했던 '전례'는 황 회장에게서 그치지 않는데다 당시 투자에 따른 책임도 그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당시 파생상품 투자를 심의하는 리스크내부협의회 위원장이 이종휘 현 행장(당시 수석부행장)이었기 때문이다.
황 회장측 반론의 근거중 하나가 ‘리스크관리협의회를 거친 정상적 투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종휘 행장도 심사의 일정부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은행측은 “이종휘 행장은 당시 투자업무를 심사할 책임자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 CDO 사후관리로 피할 수 있었다?
투자가 개시될 당시 CDO의 안정성은 충분히 담보된 시기였을까?
CDO는 쉽게 말해 뮤추얼펀드처럼 서브프라임 등 다양한 채권을 하나로 묶은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따라서 기초자산의 부도율이 증가할수록 CDO의 위험도 커지는 구조다.
투자자에게는 담보자산의 부도율에 따른 손실을 감안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CDO 시장의 붕괴가 감지된 건 2005년부터다. 이때 이미 변곡점을 찍고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2006년 들어 주택경기가 하락세가 가속화되면서 MBS(모기지증권) 시장이 흔들렸고, CDO도 타격을 본격적으로 입는다.
이 때 타격이 커진 이유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초기 2~5년동안 티저(teaser)금리라고 해서 FRM(고정금리모기지)금리보다 낮은 우대금리를 제공해주는 특징에서 기인한다.
우대금리기간이 끝나고 변동금리로 전환한 게 2006년에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갑자기 대출자들의 금리부담이 커지고 채무불이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주택가격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로 모기지로 구입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놓고 있어, 모기지 상환능력하락을 부채질했다.
결국 CDO 물량중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한 것들은 손써볼 사이 없이 타격을 입었다.
골드만삭스가 2006년 모기지 관련 채권들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을 들던 것도 이 때문이다.
◆ ‘투자자제’ 내부 요구 묵살, 사전심의제 마저 폐지
그럼에도 황 행장 재임시절인 2006년에도 추가 투자는 이뤄졌고, 2007년 후임을 맡은 박해춘 당시 행장(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CDS 투자를 전보다 더 늘리는 선택을 감행한다.
2007년 우리은행 양원근 감사는 이에 대해 위험성이 명백하다며 투자하지 말 것을 이사회내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행장 재임시절 상근감사위원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던 일이 반복된 셈이다.
황 전 행장 재임 때나 박해춘 전 행장 때나 내·외부 주의 요청이나 경고는 잘 먹히지 않았다는 것은 대규모 부실을 빚은 결과가 말해 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시 국내 금융시장 분위기는 IB(투자은행)를 키워야 한다며 자산을 늘리는 등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리스크관리보다는 투자확대가 분위기상 우위에 서는 게 당시였다.
실제로 CDO투자 초기, 매번 투자결정때마다 사전심의를 반드시 거쳤다.
하지만 실무부서에서 ‘수익률 변동이 시간에 따라 크기 때문에 투자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사전심의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가 나왔다. 이를 놓고 은행 내부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담당 부장과 부행장의 투자한도를 설정하는 조건으로 사전심의제를 폐지키로 했다. 시장분위기가 원칙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감독기구 관계자는 “손실규모가 몇 조원이 되더라도 절차나 관리에 문제점이 없다면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이번 건은 과정에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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