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변상문은 6·25전쟁 희생을 기리며 화랑담배의 뜻을 밝혔다.
- 1950년 6월 25일 새벽 개성 방어선이 포격과 전차에 무너졌다.
- 제12연대는 개성 함락 속에서도 철수하며 재반격을 도모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비 내리는 새벽, 개성이 무너지다.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개성지구와 문산리–적성 일대 임진강 유역에는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다. 산과 들을 축축하게 적시는 가랑비였다. 밤새 내린 비에 산하는 깊이 잠겨 있었고, 임진강과 그 지류를 따라 길게 뻗은 38도선도 적막했다. 국군 제1사단이 담당한 방어지역이었다.
장병들에게 그 새벽은 특별한 것 없는 일요일의 시작이었다. 경계진지의 병사들은 젖은 철모와 군복을 추스르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어둠 속 산등성이에는 희미한 물안개가 걸렸고, 빗물을 머금은 참호 바닥에서는 눅눅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04:00 무렵이었다. 북쪽 하늘에서 낮고 무거운 진동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멀리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졌고, 짧은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곧이어 38도선 부근 국군 제1사단 경계진지 위로 포탄이 떨어졌다.
"쾅!"
산등성이가 들썩였다. 참호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던 장병들이 놀라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북한군의 상투적인 요란사격 정도로 생각한 병사도 있었다. 38도선에서는 이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되었다. 몇 발을 쏘고 물러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포격은 달랐다. 포탄은 한두 발로 끝나지 않았다. 경계진지와 통신시설, 도로와 후방의 연결지점을 향해 집중적으로 떨어졌다. 전화선이 끊어지고 진지의 흙벽이 무너졌다. 빗물과 흙먼지, 화약 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장병들은 급히 총을 들고 사격진지로 뛰어들었다.
포격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군 일부 병력은 이미 38도선의 공격개시선을 넘어 국군 방어진지 전방에 접근해 있었다. 또 다른 병력은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후방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연 너머에서 전차가 나타났다. T-34 전차였다. 전차의 궤도가 빗물에 젖은 땅을 짓눌렀다. 철판으로 덮인 거대한 차체가 포연을 헤치며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군 장병들이 소총과 기관총으로 사격했지만, 탄환은 전차의 장갑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전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국군 제1사단의 일부 부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과 맞닥뜨렸다. 경계진지를 지키던 병사들은 자신들의 정면뿐 아니라 측방과 후방에서도 총성이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국군 제12연대는 교대 초기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연대의 2개 대대가 전방에서 북한군과 교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다. 전선의 상황이 연대본부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어느 고지가 버티고 있는지, 어느 진지가 이미 돌파되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08:00. 개성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개성–문산 도로에도 북한군 일부가 침투했다. 퇴로가 차단될 위험이 커졌다. 교전 초기부터 제12연대는 전투력의 1/3을 잃은 채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야 했다.
개성 북방에 배치된 제12연대 병력은 38도선에서 개성까지 이어지는 약 3km의 지형을 방어하고 있었다. 개성 북방 38도선에서 개성까지는 예성강–청학동–송악산 남사면으로 이어지는 지형이었다. 그 곳에는 제5중대, 제6중대, 제7중대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개성 북방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개성의 조기 점령을 위하여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으며, 공격의 주력은 경의선 남쪽으로 향했다. 송악산 일대의 안개와 빗속에서 북한군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6중대 방어지역으로 먼저 공격이 쏟아졌다. 북한군은 개성 일원을 양쪽에서 압박하며 송악산 정상 부근을 발판으로 삼아 남하했다. 개성 북방에 배치된 제12연대 제6중대와 제7중대 지역에 일부 병력을 침투시키면서, 다른 병력은 1번도로를 따라 개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송악산 남쪽 무명고지에 배치된 제6중대는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전방 소대진지로 포탄과 총탄이 쏟아졌다. 진지와 진지 사이의 연결은 끊겼고, 중대의 유선통신도 두절되었다. 대대본부와 연락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각 소대는 눈앞에 나타난 북한군을 향해 각자 사격했다.
포탄이 진지 안으로 떨어졌다. 폭발과 함께 흙더미가 솟구쳤다. 중대장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지휘관을 잃은 중대는 급격히 흔들렸다. 포성과 총성 속에서 명령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장병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진지가 어디인지, 옆 소대가 아직 버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제6중대의 전열은 무너졌다. 일부 병력은 전사했고, 일부는 부상을 입었다. 남은 병력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중대는 끝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분산되었다.
그보다 앞서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 집중되기 직전, 제6중대 우측 제7중대 지역의 비둘기고지에서는 비교적 평온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중대장 김영선 중위는 상황을 보고 받고 급히 비둘기고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전이 멎은 뒤였다. 전투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었다. 북한군이 더 깊숙이 침투하면서 전선의 위치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대장 김영선 중위는 중대본부로 돌아왔다. 그는 도중에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된 것을 보았다. 대대와의 교신도 끊겼다. 지휘 없이 고립된 중대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제7중대는 관측소가 설치된 비둘기고지를 중심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성으로 통하는 길에는 이미 북한군이 들어와 있었다. 중대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동안 측방과 후방이 차단될 가능성이 컸다.
제7중대장은 대대본부로부터 자남산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전방 세 개 소대의 병력을 수습해 능선으로 연결된 156고지를 확보한 뒤 철수하려 했다. 하지만 소반고개 서쪽 170고지에 배치된 제1소대의 행방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통신은 끊겼고, 안개와 포연은 산을 뒤덮고 있었다.

제7중대는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하던 도중, 매마실에서 북한군과 마주쳤다. 1개 중대 규모의 북한군이었다. 양측 병력은 서로를 발견한 순간 거의 동시에 사격을 시작했다. 좁은 도로와 산기슭에서 총성이 터졌다. 북한군은 제7중대의 철수로를 막고 있었고, 제7중대는 그 길을 뚫지 못하면 개성 북방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국군 장병들은 빗물에 젖은 몸을 땅에 붙이고 사격했다.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소총탄이 도로 위를 갈랐다. 제7중대는 북한군을 격퇴했다.
그러나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 서성거리며 재정비하기에는 북한군의 진출 속도가 너무 빨랐다. 중대는 다시 자남산을 향해 이동했다. 자남산에 도착한 제7중대장은 개성–문산 도로상에서 낙오병을 수습하던 대대장 일행과 합류했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온전한 부대가 아니었다. 연락이 끊긴 소대, 지휘관을 잃은 병력, 각 진지에서 빠져나온 낙오병들이 뒤섞여 있었다. 누구는 철모를 잃었고, 누구는 피 묻은 붕대를 팔에 감고 있었다. 장병들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북쪽을 돌아보았다. 개성 시내 쪽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계속 들려왔다.
제12연대 제2대대장 한순화 소령은 개성 시가지를 돌아 나갈 수 있는 자남산에서 잔여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시각, 서울행 열차 한 대가 개성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군의 기관총 사격이 열차를 향해 쏟아졌다. 객차와 기관차 주변으로 탄환이 튀었다. 대대장은 기관총 사격을 가하는 북한군을 공격하여 열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철수명령이 내려왔다. 제2대대는 철수 도중 제7중대 병력과 마주쳤다. 흩어졌던 병력이 조금씩 모였다. 하지만 어느 길이 열려 있고, 어느 길이 북한군에게 차단되었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제1대대장은 제7중대로 하여금 진봉산 부근 1.3km 지점의 133고지를 점령하게 했다. 철수하는 병력이 적정에 대처할 수 있도록 방어선을 마련하려는 조치였다. 대대장 자신은 본부 요원과 일부 병력을 지휘하여 연대본부로 향했다.
그러나 연대본부도 이미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1대대장과 제1대대 병력이 연대본부에 도착하기 전, 연대본부는 대남문을 거쳐 문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개성으로 들어오는 길은 북한군에게 장악되기 시작했고, 남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09:00 무렵이었다. 연대장 전성호 대령은 적정과 아군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했다. 개성 방어선은 이미 곳곳에서 끊겼다. 통신은 두절되었다. 병력은 흩어졌다. 1번도로까지 차단되기 전에 철수하지 않으면 제12연대 전체가 개성에 갇힐 수 있었다.
연대장은 철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병력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북한군에게 일격을 가해 남하 속도를 늦추고, 흩어진 아군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 임무는 제2대대장에게 주어졌다.
제2대대장은 병력 일부와 각종 화기를 수습했다. 여기에 낙오병을 합쳐 특공대를 편성했다. 공격개시 시각은 10:00였다.
특공대는 개성 시내 남대문까지 진출했다. 개성의 거리에는 총성과 포성이 메아리쳤다. 집과 담장 사이로 연기가 흘렀고, 도로에는 황급히 피란하던 주민들이 버리고 간 물건이 흩어져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거리를 따라 이동하며 북한군의 위치를 찾았다.
그때 행군대열을 갖추고 개성 시내로 들어오는 북한군이 보였다. 특공대는 북한군이 충분히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기관총과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받은 북한군 대열이 흐트러졌다. 특공대는 최대한의 사격을 가한 뒤 남대문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개성은 이미 북한군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특공대는 중화 국민학교로 철수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차량 한 대를 구했다. 장병들은 차량에 부상자와 장비를 싣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토성 부근에서는 강릉동을 거쳐 영정포로 이동했다. 이후 저녁 무렵에는 어선을 이용하여 임진강을 건넜다.
제2대대장 한순화 소령은 그 뒤 김포반도에서 제12연대 철수병력을 다시 수습했다. 흩어진 병사들은 각기 다른 길로 개성을 빠져나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부대를 찾아서 모여들었다. 그들의 뒤편으로 개성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 개성 북방의 경계진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북한군은 포병사격과 T-34 전차를 앞세워 38도선을 돌파했고, 국군 제1사단의 전방부대들은 통신이 끊긴 상태에서 각개로 싸워야 했다. 제12연대는 개전 초기부터 전투력의 1/3을 잃었다. 개성–문산 도로마저 차단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장병들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제6중대가 송악산 남쪽 무명고지에서 분산되는 동안 제7중대는 매마실에서 북한군을 격퇴하며 철수로를 열었다. 제2대대는 개성 시가지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했다. 흩어진 병력은 자남산과 문산 방면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이 물러난 것은 전쟁에서 달아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살아남아 다시 싸우기 위한 철수였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개성은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그러나 개성에서 빠져나온 제12연대 장병들에게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각, 청단·연안·백천지구에서도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계진지와 소대거점 사이의 거리는 멀었고, 통신은 차례로 끊겼다. 북한군의 포성과 전차 소리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