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세계 유조선들이 4일 미국 항구로 집결해 원유 수출을 확대했다.
- 호르무즈 봉쇄 속 미국이 최대 수출국이 됐으나 재고 감소로 한계 경고가 나왔다.
- 브렌트유 126달러 급등하고 휘발유값 4.40달러 돌파하며 인플레 우려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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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세계 각지에서 유조선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미국 항구를 향해 집결하고 있다. 알래스카와 미국 걸프만 연안에서 원유를 적재한 뒤 일본, 태국, 호주 등지로 향하는 이 선박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중동발 공급 충격을 미국산 원유로 메우려는 국제 수요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의 수출 여력이 물리적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 이 공급 완충 역할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주간 미국 전역의 유전과 저장 시설에서 선적된 원유는 총 2억5000만배럴을 웃돌았다. 이로써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다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가운데 국제 원유 소비국에 대한 사실상의 생명줄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록적인 미국 수출은 동시에 이 공급 완충재가 급속도로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는 경고를 동반한다.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수준의 수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국내 재고는 4주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며 역사적 평균치를 하회했다. 미국 원유 생산업체들 역시 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선임연구원 클레이튼 세이글은 "유조선들이 미국산 원유를 가져가고 있지만, 상당한 규모의 원유가 미국을 떠나기 시작하면 수급 균형이 빠듯해질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재고를 써버리는 방식으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전 세계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 몇 주간 미국산 원유가 꾸준히 수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공급 부족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제 원유의 핵심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약 50% 급등했고 지난주에는 배럴당 126달러를 넘어서며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원유 수출이 사실상 최대치에 근접한 상황에서 배럴 확보 경쟁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내에서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올해 11월 중간선거의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상당수 유권자들은 이렇게 많은 원유가 국제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급증하는 원유 수출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팔고 있는 석유와 가스의 양은 역사상 누구도 본 적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무연 휘발유 평균 소매가는 갤런당 5달러를 소폭 넘어선 바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현재의 연료 가격이 그보다 낮은 수준임을 강조해왔다. 이 5달러 선은 앞으로 선거까지 남은 몇 달 동안 주목해야 할 핵심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소매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미 갤런당 4.40달러를 돌파한 상태다.
라이스타드에너지의 미국 석유·가스 리서치 부문 책임자 제이 싱은 "미국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에너지 위기로부터 차단돼 있는 것이지, 단절돼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란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을 떠난 원유의 상당 부분은 아시아로 향했다. 아시아 정유업체들은 그동안 페르시아만을 주요 원유 공급원으로 삼아왔으나 이번 전쟁으로 미국산 원유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쟁 이전까지 일본은 원유와 연료 공급의 약 90%를 중동에서 조달했고 미국산 원유 도입 물량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미국산 원유를 대규모로 확보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6월 선적 예정 물량, 즉 8월께 도착하는 분량에 대한 매입이 불과 며칠 전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유업체들은 이미 미국산 원유 8000만배럴 이상을 공동 매입한 것으로 해당 거래에 정통한 트레이더들이 전했다.
지역 원자재 거래 허브인 싱가포르에서도 정유업체들이 미국산 원유 매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 2위의 미국산 원유 매입국이었던 한국의 수요도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본과 한국은 자체 원유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이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오만으로부터의 제한적인 원유 공급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 비축량 수준에 대한 공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공급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브라질 같은 여타 수출국들은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원유 품질을 통상적으로 공급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이 원유 순수입국에서 주요 글로벌 공급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0년대 초 셰일 혁명이 이 전환의 기폭제가 됐다. 수평 시추와 수압파쇄(프래킹) 기술이 텍사스에서 노스다코타까지 미국 전역에서 국내 생산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미국은 2015년 1970년대 아랍 오일 엠바고 이후 부과됐던 대부분의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2019년에는 급성장한 셰일 생산에 힘입어 원유와 연료를 합산한 기준으로 순수출국 지위를 달성했다.
분석가들은 미국이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 갈수록 단호한 외교정책 행보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됐다고 지적한다. 올해만 하더라도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장기 집권 지도자를 축출했고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 두 곳에 대한 제재를 집행했다. 또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과의 전쟁을 개시했는데, 이 모든 조치는 전 세계 원유 수급 균형에 위협 요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에너지 패권'이라고 부르는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로, 이란 전쟁으로 발생한 막대한 원유 공급 공백을 미국이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거듭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기자들에게 "지금 우리의 원유 생산량은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텍사스,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로 선박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부터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연료 공급 문제를 주요 외교정책 변수로 인식해왔다. 세계 최대 산유국 경제를 등에 업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에 비해 국내 공급 부족 우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된 이후 오바마 행정부조차 이란 핵 협정, 즉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 대한 국제 지지를 결집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에너지 공급 능력을 보증 수단으로 제시한 바 있다.
워싱턴 소재 컨설팅 기업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의 상무이사 케빈 북은 "미국이 석유 순수출국, 즉 에너지 순수출국이 된 것은 에너지가 변수로 작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을 바꿔놓았다"며 "에너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을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에너지 패권은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란 전쟁 개전 이후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10만배럴 감소했다. 드릴링업체들은 유가가 급등했음에도 증산을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장의 향방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달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4월 말 공개한 에너지 기업 임원들의 익명 의견에서도 이 같은 불확실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보고서에서 한 응답자는 "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특성이 사업 계획 수립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XOM)과 셰브론(CVX) 같은 메이저 석유 기업들도 중동 운영 차질에 직면해 있다.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금요일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이 "극한의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하루 전에는 코노코필립스(COP)가 원유 "치명적 부족"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원유 수출이 기록적 수준에 이르면서 트레이더들은 수출이 사실상의 실질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말한다. 인프라와 선박 제약으로 인해 미국 걸프만에서 일관되게 선적할 수 있는 원유 물량에 상한선이 있다는 것이다. 명목상의 수출 능력은 하루 1000만배럴 수준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 상한선은 현재 수준인 하루 600만배럴에 가깝고 단기 급등 시에도 700만배럴에 근접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트레이더들은 전했다.
핵심 병목 요인은 해상에 있다. 선박 가용성 부족과 고비용의 해상 환적 작업, 즉 선박 간 원유 이송 작업이 선적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출 증가는 국내 비축량 감소를 동반한다. 미국 원유와 석유제품을 합산한 재고는 4주 연속 감소해 총 5200만배럴이 줄었다.
TD증권의 원자재 전략가 라이언 맥케이는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재고 감소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5월 내내 수백만 배럴 단위의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원유 옵션 트레이더들은 이제 미국 수출의 대규모 되돌림에 대비하는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다. 일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수출 금지령을 내릴 경우를 가정한 베팅도 보유하고 있다. 행정부는 지금까지 이를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7월부터 11월에 걸친 선물 계약에서 풋옵션 포지션이 누적되고 있는데, 총 계약 물량 기준으로 약 2200만배럴에 달한다. 미국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브렌트 선물 대비 배럴당 45달러의 디스카운트를 기록할 경우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지난 금요일 7월물 WTI와 브렌트의 스프레드는 배럴당 -11.63달러로 마감됐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산 원유와 석유 정제 제품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수출 규제도 거듭 배제해왔다. 수출 제한에 대해 경고해온 에너지 기업 임원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해당 논의 내용에 정통한 인사들이 전했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화요일 미국 에너지 수출 금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미국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수출 품목"이라며 "우리는 전 세계에 미국산 천연가스, 미국산 원유, 미국산 항공유, 경유, 휘발유를 팔고 있다. 이 수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국내 주유소 가격이 오르는 와중에 대규모 원유와 연료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현재 전쟁 발발 시점 대비 평균 갤런당 1달러 이상 오른 상태다. 경제의 혈액이라 할 수 있는 경유는 갤런당 약 2달러 가까이 뛰었다.
여름 드라이빙 시즌으로 알려진 이 시기, 미국인들이 휴가철 도로 여행을 위해 차량 운행을 늘리면서 연료 수요도 증가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00년 된 해운법 면제 조치를 통해 원유 운송을 용이하게 하거나 휘발유에 에탄올 혼합 비율을 높이는 등 일부 대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제한적이다. 트레이더들이 수출 규제 가능성을 끊임없이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클리어뷰의 케빈 북은 "갤런당 4달러에서 거부됐던 나쁜 아이디어들이 6달러가 되면 다시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