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에너지 인프라 폭격 경고 병행… 세계 공급망 쇼크 우려 키워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이란과의 전쟁이 한 달째를 맞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교적 타결과 물리적 초토화 사이를 오가는 '지그재그' 이란 전략으로 국제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 달러 선을 위협하며 급등하는 등 에너지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백악관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재개방을 이란 전쟁의 '핵심 목표'에서 사실상 후순위로 두는 기조를 내비쳐 글로벌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 레빗 대변인 "군사적 성과 속 대화도 순조"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 작전의 성과를 일일이 열거하며 이란 정권을 재차 압박했다. 레빗 대변인에 따르면 미군은 현재까지 이란 해군 함정 150척 이상을 파괴했으며, 이 중 주요 전투함선의 약 90% 이상이 작전 불능(Neutralized) 상태다. 또한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은 작전 초기 대비 약 90% 감소했고, 미사일·드론 생산 시설의 상당 부분이 파괴돼 이란 방산 기반이 사실상 전투 불능 수준으로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어 이란과의 대화도 순조롭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정권의 공개적인 허세와 거짓 보도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 이성적(Reasonable)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과 비공개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내용은 매우 다르다"고 강조하며, 공개 발언과 물밑 협상 사이의 격차를 부각했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이 4~6주간 이어질 것이라는 기존 시간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재확인하면서 "앞으로 며칠 안에 직·간접 대화의 산물로 추가 유조선 20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 "두 개의 트랙"…대화와 병력 증강
이날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집에서 TV를 보는 미국인들이 대통령의 대화 의지와 특수부대(Navy SEALs, Army Rangers) 파견을 동시에 볼 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묻자, 레빗 대변인은 '두 개의 트랙'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에픽 퓨리 작전의 목표 달성에 집중하고 있다"며 "중동 지상군과 관련해서는 통수권자에게 최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펜타곤의 임무일 뿐, 그것이 대통령이 추가적인 지상전 개시 결정을 내렸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어 "외교는 항상 대통령의 최우선 옵션"이라면서도 "작전 개시 전에도 최고 협상가들을 보내 이란과 합의를 시도했지만, 이를 거부한 이전 이란 지도부는 지금 미군의 물리적 타격을 입었거나 권력 핵심에서 제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합의의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30일 전 설정한 군사적 목표와 우리 군이 매일 쌓고 있는 성과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며, '외교·군사적 압박 병행'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발전소와 유전, 하르그섬(Kharg Island), 담수화 시설 등 핵심 에너지 기반 시설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경제적 멸망' 시나리오를 공개 거론하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사용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고 경고했다. 이는 이란 정권이 향후 10일 이내(4월 6일 시한) 미국이 제시한 요구안을 포함한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세계 원유 공급망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하겠다는 강력한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핵심 목표'서 밀려나나
한국을 비롯한 에너지 수입국들이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 여부다. 레빗 대변인은 해협이 일부 폐쇄된 상태에서 전쟁을 종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완전 재개방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작전의 핵심 목표(Core objectives)는 군 통수권자에 의해 명확히 정의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란 해군 궤멸 ▲탄도미사일 전력 파괴 ▲방산 인프라 해체 ▲핵무장 저지를 4대 주요 군사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해협의 물류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더라도 이 네 가지 군사 목표만 달성되면 '승리 선언' 후 철군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발언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란 측이 통행 유조선에 대해 거액의 통행료를 징수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백악관은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 루비오 "호르무즈,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열린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날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법 준수이든 다국적 군사 노력의 결과이든 어떤 방식으로든(one way or another) 재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을 선호하지만, 이란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오 장관은 또 "향후 수주 안에 이란의 공군·해군 전력과 무기 생산시설을 집중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4월 6일 시한 내 군사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은 이란에서 정치적 변화를 강요하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다른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해, 간접적인 정권 교체(Regime Change)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 4월 6일 운명의 마감 시한…한국 경제도 긴장
트럼프 행정부가 지그재그식 이란 압박을 이어가면서 에너지 시장은 이번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30일 오후 3시15분(미 동부시간·한국시간 31일 오전 4시15분)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5월물은 배럴당 102 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뒤흔들렸던 2022년 이후 처음으로 100 달러(종가기준)선을 상회한 것이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5월 인도분) 가격 역시 장중 한때 배럴당 116 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공급 부족에 대한 공포를 반영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중동 내 미군 병력 증강과 예멘 후티 반군의 참전 등으로 휴전 기대감이 '희망고문'에 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물리적으로 확보해 반출(extract)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단순 시설 타격을 넘어선 고강도 충돌 가능성이 유가 상단을 열어젖힌 상황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4월 6일을 사실상의 협상 마감 시한으로 설정하고 이란 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 및 핵 시설 타격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통제 불능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원유 도입선의 절대적인 비중을 의존하는 한국은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넘어서는 전례 없는 공급망 충격과 고물가 직격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