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물류비 상승에 완성차 '수익성 압박'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고유가가 전기차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오히려 전기차 가격 부담을 키워 수요 확대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기차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면서 소비자 체감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907.31원을 기록하며 전일 대비 4.64원 상승했다. 국제유가 역시 상승세를 이어가며 9일 기준 원유 가격은 배럴당 125달러로 집계돼 전일 대비 24.58달러 올랐다.
이러한 고유가 흐름에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이 전기차 수요 확대를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른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내연기관 차량의 유지비 부담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연료비 부담이 낮은 전기차의 경제성이 부각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기차 시장의 구조가 달라지면서 단순히 유가 상승만으로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구매를 결정하는 데 있어 연료비 절감보다 차량 가격과 보조금, 충전 인프라 등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유가 환경은 전기차 생산 비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금속 원자재를 기반으로 생산되는데,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이러한 원자재 채굴과 정련 과정의 비용을 높인다. 배터리 제조 공정 역시 전력과 열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여기에 물류비 상승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동 지역 긴장 등으로 주요 해상 운송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부 선박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경우 운송 기간이 약 2주 이상 늘어나고 운임과 보험료 역시 상승해 배터리 소재와 부품 조달 비용 전반을 끌어올릴 수 있다.

중동발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자동차 산업 전반의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원자재와 물류 비용 상승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발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불안을 야기해 글로벌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 공급망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특히 석유화학 원료 가격이 15~25%가량 상승하면서 내장재와 절연체 등 전기차 구성 부품 전반의 제조 원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비용 압박은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가격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는 수요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 인하 경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원가 부담이 커질 경우 추가적인 가격 인하 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보조금 축소와 환율 변동성까지 겹치면서 제조사 입장에서는 대당 수백만원 수준의 가격 방어가 쉽지 않은 구간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을 소비자 가격에 온전히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경쟁 구도도 변수다. 이 교수는 "중국 업체들은 배터리와 원자재 공급망을 수직 계열화한 구조를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 경쟁이 기술력뿐 아니라 원가 통제력 경쟁으로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