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퇴직 이후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질문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연말이 되면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된다. 적극적으로 재취업을 준비해 온 중장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퇴직을 경험한 중장년을 상담하다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전의 경력과 역할은 분명하지만, 정작 "퇴직 이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심리적인 불안감과 막연함이 함께 담겨 있다. 즉 경력목표가 모호하다. 문제는 이 막연함이 재취업의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퇴직 이후 제2의 경력은 구체적인 '목표 설정'에서 시작된다. 중장년 재취업 성공률은 목표 설정과 타기팅(targeting)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목표설정이 지금 중요할까? 목표설정(goal-setting) 이론에 따르면 목표가 구체적이고 약간 도전적일 때 행동이 가장 빠르게 일어나며, 이러한 목표가 있을 때 개인은 선택을 명확히 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게 된다. 경력 전환에서도 역할과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한 경력 목표일수록 구직 과정이 구조화되고 속도가 붙는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새해는 또 하나의 기회다. 따라서 새해를 앞둔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목표 설정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퇴직 이후 제2의 경력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좁히고, 그 길을 실제 중장년 노동시장 수요와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작업이 바로 타기팅의 핵심이다.
첫째, 퇴직 이후 현실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역할'도 생각해 보자. 목표 설정의 첫 단계는 자신의 강점을 기반으로 조직에서 필요한 역할(role)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장년의 관리, 조정, 협상과 같은 조직운영, 기술 및 현장의 실무기반, 교육지원 및 전문 서비스와 같은 대인 서비스 등 이런 역할 단위를 기준으로 자신을 재정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직무나 직업명으로만 접근하면 선택지가 좁아진다.
그러나 역할로 접근해 보면 선택지가 확장되고 다양한 기회도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이 과거 수행했던 직무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군을 공략해 본다든지, 스타트업이나 사회적 기업도 중장년 구직자가 기회를 엿볼 수 있는 틈새시장이다.
둘째, 퇴직 이후 경력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경력목표가 구체화하면 구직활동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필자가 상담했던 한 50대 후반 A 씨의 예가 있다. 그는 30년 넘게 한 기업에서 관리 및 지원 업무를 맡아왔다. 퇴직 이후 처음에는 "아무 일이나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막상 구직활동에서는 방향이 잡히지 않고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답답해했다.
A 씨의 경력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세 부분으로 재정리했다. 사람 관리, 조직 운영 지원, 대외 협력 이 세 가지가 그의 핵심 역량이었다. 그리고 이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마케팅 및 영업 지원'이라는 제2의 경력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였다.

이력서 및 경력기술서 등 지원서 작성부터 면접 준비까지 모든 것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 결과 한 달 만에 프로젝트 기반의 업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추가적인 프로젝트 역할을 맡고 있다. 핵심은 단순했다. 경력목표가 선명해지자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중장년 구직자의 핵심 역량이 명확해지니 목표가 자연스럽게 세워졌고, 목표가 명확해지니 행동도 즉시 변화했다.
셋째, 타기팅을 꼭 해야만 한다. '가능한 많은 곳'이 아니라 '맞는 곳 하나'가 더 필요하다. 노동시장에서 중장년 채용은 광범위한 역량보다 특정 문제 해결 능력을 우선하여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장년 구직자의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지원하고자 하는 영역을 무작정 너무 넓히는 것이다. 퇴직 이후 무작정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력은 흐려지고, 중장년 채용 시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진다. 이에 타기팅은 시장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그 일을 진정 좋아할 수 있는 곳, 나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는 곳 즉 이 세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되는 지점을 찾는 일이다.
넷째, 새해를 위해 중장년 경력 목표 설정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봐라. 점검해야 할 요소는 다음과 같다.
직업명보다 역할로 나를 정의한다면? 향후 조직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의 경력 핵심축은 무엇인가? 경력의 핵심 역할을 한 대표적인 세 가지 경험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경력의 방향은 어디인가? '연봉', '직책'보다 '일의 본질'에 집중해서 생각한다면, 노동시장에서 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인가? 구체적인 산업, 업종, 기업 유형은 무엇인가? 경력목표를 3단계로 쪼개어 단기, 중기, 장기의 목표는 무엇인가?
중장년의 제2 경력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라 '경력목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경력목표가 분명해지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또한 타기팅이 정확해지면 구직활동의 속도가 달라진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나는 어디로 가고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새해 경력 계획의 첫걸음이다.
연말에 1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경력 목표를 손 글씨로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새해는 누구에게나 백지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라.

*장욱희 박사는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와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커리어 파트너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방송 관련 활동도 활발하다. KBS, 한경 TV, EBS, SBS, OtvN 및 MBC, TBS 라디오 등 다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고용 분야, 중장년 재취업 및 창업, 청년 취업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성SDI, 오리온전기, KT, KBS,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서울시설공단, 서울매트로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전직지원컨설팅(Outplacement), 중장년 퇴직관리, 은퇴 설계 프로그램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대학생 취업 및 창업 교육,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공공부문 면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는 당당하게 다시 출근한다'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아웃플레이스먼트는 효과적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여가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비상임 이사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