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조정 후 이어진 수사지연, 피해자 경제적·심리적 부담↑
검찰개혁 후 더 복잡해지는 수사기관…"수사지연 불가피"
[서울=뉴스핌] 김지나 김영은 백승은 기자 = #. "의붓딸인 피해자 아름 양(가명)의 진술 번복 가능성이 충분했으며, (경찰이) 적어도 피해자들로부터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구속영장을 반려한 것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 - '청주 여중생 사건' 공동 피해자인 아름 양 친구 미소 양(가명) 부친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2심 판결문 中 2025.09.11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5월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미소 양(당시 14세)과 아름 양이 함께 투신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아름 양의 계부 원모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였다. 미소 양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죽음은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에서 빠르게 수사하고, 피의자와 피해자를 제대로 분리 조치만 했더라면 두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미소 양 아버지는 국가와 청주시를 상대로 2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난 11일 항소심에서도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미소 양 아버지는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청주 여중생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 지났지만 피고인 재판만 끝났고, 검찰과 경찰, 청주시 누구 하나 징계를 받은 게 없다"면서 "정치인들은 자기 정치 집단이나 자기 단체에 이익이 되는 사건에만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보통사람의 수사] 글싣는 순서
1. 성범죄 피해자 도운 활동가의 경고…"검찰개혁, 빨리 하면 빨리 망한다"
2. '수사지연'이 불러온 두 여중생의 비극…父 "누구 하나 징계 받은 게 없다"
◆ 보완수사 10건 중 3건 3개월 넘겨도 수사기관 책임 없어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지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특히 민생사건의 지연은 한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지만, 정작 국가 수사기관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안지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쪽에선 과거 '김학의 법무부 전 차관 사건'으로 검사의 부실수사에 대해 주장하지만 이것은 아주 일부 사건일 뿐"이라며 "청주 의붓아버지 성폭행 사건과 같이 부실수사의 책임 소재에 법적 책임을 따져봤을 땐 그것이 불법 행위가 되냐, 안 되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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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 대검찰청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2024년 하반기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한 사건 중 보완수사 처리가 3개월을 초과한 사건은 전체의 31.1%에 달했다. 보완수사란 경찰이 1차적으로 수사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후 검찰이 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경찰에 다시 수사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대통령령 '감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을 보면 경찰은 보완수사 요구가 접수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보완수사를 마쳐야 하지만, 실제론 보완수사 요청 사건 중 10건 중 3건이 3개월을 초과해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재수사 요청이 이행되는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재수사 요청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혐의 없음 등)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 검사가 그 이유를 문서로 명시해 경찰에 다시 수사하도록 요청하는 제도다. 2024년 하반기 요구 기준 경찰의 재수사요청 소요기간이 3개월을 넘어가는 사건 수는 전체 재수사요청 사건의 41.1%다.
검사 출신이자 형사전문 김은정 리움 변호사는 "검찰에서 경찰에 보완수사를 내리면 경찰 입장에선 규정상 3개월 안에 보완수사를 하도록 돼 있지만 구속력이 없어 본인이 봤을 때 과도한 요구라고 판단되면 보완수사를 천천히 한다"면서 "경찰 입장에선 일이 많은 게 보완수사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일 테고, 경찰도 자기 업무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언론에 난 큰 사건 하나를 잘 처리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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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개지는 중수청·공소청, 복잡한 수사기관 피해자 부담 가중 우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도 수사기관이 복잡해지며 발생할 수 있는 수사 지연 문제다. 이미 문재인 정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선 수사 지연 문제가 심각한데, 현 정부의 검찰개혁이 이 문제를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검찰청은 폐지되고, 검찰청 역할은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나뉜다. 한 조직에서 담당했던 역할이 두 개의 조직으로 쪼개지는 데, 세분화된 수사기관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사지연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엔 검찰청이나 경찰서 아무데나 고소장을 보내도 접수가 됐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고 검찰개혁이 되면 수사기관은 더욱 복잡해져 어디에 고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면서 "중수청과 공소청이 쪼개지고, 국가수사위원회까지 둘 경우 수사 단계가 길어져 수사 지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사 기관이 복잡해지고 수사가 지연될수록 범죄 피해자 입장에선 소송비용을 포함한 경제적, 시간적 비용 부담과 심리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되며 과거엔 전건 검찰로 송치되던 사건들이 경찰 선에서 불송치 결정으로 수사 종결이 가능해졌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 한 피해자는 이의신청을 하게 되는데, 수사기관 문턱을 한 번 더 넘어야 하는 피해자 입장에선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커지게 됐다.
김은정 변호사는 "고소장을 쓰는 것보다 이의신청서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운데, 그 이유는 경찰이 불송치를 내린 사건에 대해 잘못 수사한 부분을 지적을 해야 하고, 고소장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또 비용이 발생한다"면서 "경찰이 업무 과다로 소홀하게 수사되는 사건 등이 전건송치로 검찰로 넘어가면 한 건이라도 더 확인돼 진실을 밝힐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돈 있는 사람만 이의신청을 해서 권리를 구제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활동가 '연대자D'(활동명)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서 불송치하면 사건이 끝나게 되는데, 이의신청을 하려면 법률 비용이 들어간다"면서 "고소장 작성 단계부터 진술의 신빙성을 위해 국선변호사와 연결하는 것이 좋은데, 지역권은 무료법률지원 변호사와 연계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설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