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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마포구도 재건축 진행되나…안전진단 '물밑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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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극동 정밀안전진단 용역업체 선정…집값 연이어 신고가
마포현대도 재건축 기대에 신고가…신안산선 연장 기대감도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 재건축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송파구 풍납동, 마포구 공덕동에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정밀 안전진단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다.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정비구역지정, 조합설립,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을 진행할 수 있다. 풍납동, 공덕동 일대 아파트 가격도 재건축 기대감에 오르고 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도심 아파트의 모습. 2020.10.29 yooksa@newspim.com

◆ 풍납극동 정밀안전진단 용역업체 선정…집값 연이어 신고가

14일 서울시 및 송파구에 따르면 지난 8일 풍납동 풍납극동아파트 정밀안전진단 용역을 맡을 업체로 대영구조기술단이 선정됐다. 오는 15~16일경 적격서류를 제출받아 심사할 예정이다.  

정밀 안전진단은 등급별로 ▲A~C등급 유지·보수(재건축 불가) ▲D등급 조건부 재건축(공공기관 검증 필요) ▲E등급 재건축 확정 판정으로 나뉜다. D등급 이하를 받아야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풍납동 극동아파트는 1987년 12월 지어진 35년차 아파트다. 풍납동 일대는 잠실과 가깝고 지하철 5·8·9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 때문에 몇십년간 개발을 할 수 없었다. 땅을 파다가 유물이 나오면 사업이 '올스톱' 되기 때문이다.

단지에서 걸어서 26분 거리에 있는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25년 대홍수 때 한성백제 유적과 유물이 다수 발견됐다. 일제는 1936년 풍납토성을 고적(제27호)으로 지정했다. 이어 해방 후에는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1963년 풍납토성을 사적 제11호로 지정했다.

당시 송파구 풍납동 1151필지, 35만5000㎡가 처음 지정됐다. 이어 2014년 풍납동 80-2번지 등이 추가돼 총 35만7000㎡가 사적으로 보호받았다.

하지만 지난 2019년 3월 서울시가 소규모주택사업인 자율주택정비사업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풍납동 일대도 개발할 길이 열렸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시·도조례로 정할 수 있는 자율주택정비사업 대상범위에 '역사문화 환경 보존지역 중 구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구청장이 인정하는 지역'이 추가됐다. 낙후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자율정비를 유도해 해당 지역의 주거환경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시 도시재생 활성화지역. 오른쪽 아래 동그라미 친 곳이 풍납동 토성. [자료='2025 서울시 도시재생전략계획' 변경공고 캡처] 2021.02.10 sungsoo@newspim.com

이에 따라 송파구 풍납동이 지난 2019년 11월 서울시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중심시가지형)으로 추가 선정됐다. 풍납동 정비사업 활성화의 길이 열리면서 실거래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

풍납극동아파트 전용 59㎡는 지난해 12월 9억8000만원에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2019년 10월 6억7500만원에 거래된 것보다 3억원 넘게 오른 것. 현재 매도호가는 11억원까지 뛰었다. 같은 단지 전용 60㎡도 작년 12월 10억5000만원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풍납극동 맞은편에는 지난 2019년 풍납 우성아파트를 재건축한 '잠실 올림픽공원 아이파크'가 있다. 이 단지는 지난 2019년 11월 입주했으며 전용 59㎡ 호가가 15억4000만~16억5000만원 수준이다.

풍납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풍납동은 잠실하고 가깝지만 문화재 보존 때문에 그동안 부동산시장에서 소외받은 측면이 있다"며 "인근에 또 다른 문화재가 발굴될 위험은 여전히 있지만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마포현대도 재건축 기대에 신고가…신안산선 연장 기대감도

마포구 공덕동도 재건축을 위한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마포구는 지난 3일 마포현대아파트 재건축 추진을 위한 정밀안전진단 용역업체 입찰에서 라온구조안전기술 주식회사를 1순위로 정했다. 다만 아직 최종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마포현대는 1988년 5월 지어진 34년차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2006년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입주민들이 재건축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마포현대 전용 85㎡는 지난달 16일 12억5000만원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작년 2월 9억3500만원에 거래된 것보다 3억원 넘게 오른 것. 현재 매도호가는 13억5000만원까지 뛰었다.

같은 단지 전용 59㎡도 지난달 14일 9억1000만원에 거래되며 직전 최고가를 뛰어넘었다. 작년 5월 7억2000만원에 거래된 것에 비해 2억원 가까이 올랐다. 현재 매도호가는 9억7000만~10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공덕동은 서울에서 드문 4개 철도(쿼드러플) 환승역이다. 현재 지하철 5호선, 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가 지나고 있다. 신안산선 복선전철 2단계(여의도~공덕~서울역)도 추진 중이다.

신안산선 운행 노선도 [자료=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작년 3월 신안산선 복선전철 2단계(여의도~서울역) 사전타당성 용역을 재공고했다. 사전타당성조사는 예비타당성조사와 달리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구상용역', '~검토용역' 등의 이름으로 국토부 또는 시도지사에 새로운 사업을 건의하기 위한 근거로만 사용된다.

이 용역은 사단법인 대한교통학회와 제일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가 각각 6대 4 지분으로 수주했다. 작년 5월 7일 계약이 체결됐으며 지난 1월 2일 계약이 끝났다.

신안산선 1단계는 여의도역~한양대역, 그리고 광명역~국제테마파크역까지 잇는 구간이다. 지난 2019년 9월 착공했으며 오는 2024년 개통 예정이다. 

신안산선 공사를 1~2단계로 나눈 것은 한강에 설치될 다리 건설비용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다리 건설에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그 비용을 감수하고 수익을 내려면 그만큼 이용승객 수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1단계로 다리를 건설하기 직전인 여의도역까지만 먼저 신안산선 1단계를 운행한다. 이후 월곶~판교선과 한국고속철도(KTX) 운행이 더 활발해지면 2단계 서울역까지 노선이 연장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향후 신안산선 2단계가 개통하면 공덕역과 서울역은 환승 없이 직행으로 오갈 수 있게 된다.

다만 국토부는 신안산선 2단계 사업의 가시화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정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면 법적 절차인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다. 

예타조사는 국가교통망 구축계획에 포함된 노선을 대상으로 한다. 실제 사업 추진(본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기본 및 실시설계, 시공)에 필요한 국가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예타조사를 맡는다.

국토부 철도투자개발과 관계자는 "신안산선 2단계의 예타 진행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서 사업성에 대한 언급을 하기 어렵다"며 "예타를 거친다면 올 하반기로 예상되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넘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sungso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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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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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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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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