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전 세계 주요은행들이 글로벌 건전성 규제 강화와 관련해 한숨을 돌리게 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위원회가 유동성 규제 강화 도입 시점을 연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당국의 노력은 은행들의 반발에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은 이러한 규제가 과도한 것이며 대출 능력을 급격히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로비를 벌여왔다.
지난 6일(현지시각) 스위스 바젤에 모인 주요국 중앙은행장과 감독당국자들로 이루어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주요은행의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의 도입 완료 시점을 당초 2015년에서 2019년으로 4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고유동성 자산 인정 범위도 확대하고, 위기 시 손실 위험 가정들도 완화하는 등 전체적으로 은행권에 매우 유리하게 규제 수위가 변화됐다.
바젤위는 개별 회원국이 위기 시에 상황을 보아서 규제를 좀 더 완화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겼다.
지난 2010년 합의 때는 당초 2015년까지 유동화 자산을 위기 발생 시의 예상 손실 규모까지 100% 충족시켜야 했던 은행들은 일단 60%만 채우고 그 뒤 4년 동안 매년 10%씩 비율을 높이면 된다.
LCR은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의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유하게 하는 것으로, 은행의 기본 자기자본비율 상향조정과 함께 '바젤III'의 핵심 규제안 중 하나다.
'바젤III'는 ‘자본건정성 규제’와 ‘유동성 규제’가 골자로, 자본건전성 규제는 경기에 대응하는 완충자본과 기본 자기자본(Tier 1)과 핵심기본자본(Core Tier 1)이며, 유동성규제는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NCR)과 순안정자금조달비율(Net Stable Funding Ratio, NSFR)에 관한 것이다.
이번 바젤위원회 회의에서는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성 자산의 범주에 중앙은행 지준 현금과 국채, 우량 회사채만 포함했지만 이번에 우량 주택저당채권유동화증권(RMBS)과 'BBB-' 등급 이상의 투자긍급 회사채 등 전통적으로 안전한 유동화자산 외의 증권 비율도 15%까지 포함하기로 하는 등 기준을 완화했다.
특히 미국 은행을 비롯한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이러한 유동화증권 보유 규모가 많으며, 2008년 위기 발생에서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들 자산을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으로 포함할 때는 25% 할인된 금액을 인정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우량주식과 주택저당채권(MBS), 보유 금 등까지 포함하도록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규제당국은 묵살해왔지만, 유럽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서 일부 국채가 투기등급까지 하락하는 등 상황이 바뀌면서 범위를 재검토하게 됐다.
또다른 규제당국의 양보는 은행들이 직면하게 될 금융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가정을 변경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 규제는 이론적으로 30일간 전개되는 금융 위기 초반에 은행의 개인 예금이 5% 빠져나가는 것을 가정했는데, 이것이 비현실적이라면서 그 빠져나가는 예금의 가정 비율을 3%로 완화했다. 또 기업고객들이 위기 발생 시에 여신한도를 100% 빼갈 것이라는 당초 가정을 30% 수준으로 낮췄다. 이런 가정 변화에 따라 은행들이 보유해야 하는 유동성 자산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규정이 완화되다보니 또다른 핵심 유동성 규제방안인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대목도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부 업계 경영진들은 이 규제도 일단 보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자금조달 비율 규제는 금융기관 자산부채구조에 내재된 유동성 위험을 보완하기 위해 1년 내 유출 가능성이 큰 부채 규모를 충족할 수 있는 장기 안정적 조달자금을 금융회사가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중장기유동성비율'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규제의 끈이 느슨해지다 보니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아예 미국과 같은 일부 나라는 '바젤III' 규제 도입을 완전히 거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바젤III'는 개별국가들이 금융회사에 맞추어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사실 이 같은 규제가 은행의 취약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과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능력을 훼손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평가가 없다. 과거 바젤위원회의 건전성 규제는 금융 위기 발생을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준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가 되지만, 단순한 건전성 규제보다는 금융시스템 자체의 낡은 문제점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 더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젤위원회나 개별국가 금융당국은 과거 규제보다는 새롭게 강화되는 건전성 및 유동성 규제가 위기 전보다는 금융시스템을 좀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바젤위는 2011년 말 현재 세계 200대 은행들 중에서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을 충족하는 곳은 절반에 불과하며, 2015년까지 100% 기준을 충족하려면 약 1조 8000억 유로(2500조 원)의 고유동화 자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진행한 머빈 킹 영란은행(BOE) 총재는 200대 주요은행들 중에서 절대 다수가 이번에 완화된 기준을 충족하고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의 위기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이라는 이례적인 정책 수단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킹 총재는 기준 완화 결정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나 기준을 얼마나 강하게 해야 하는지 또는 완화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현실적인 규제를 만들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바젤위 의장인 스테판 잉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는 유동성 규제에 대해 "중대한 성과이며 또 전 세계 금융 안정성을 이룩하는데 매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