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재계가 살생부식 기업 구조조정 대신 자발적인 군살빼기가 되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기업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주체로 봐달라는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12일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 추진애로와 정책과제’건의서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옥석 가리기 식'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며 "이같은 방식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채권금융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의 기업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살생부에 의한 응급처치 대신 기업 스스로 군살을 빼고 부실을 해결해 나가도록 정부가 지원 제도를 확충하는 등 도와달라는 주문이다.
대한상의는 이와 관련 뒷받침돼야할 제도로 ▲ 기업구조조정목적의 자산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투자회사(CR리츠) 설립규제 완화 및 구조조정기금(캠코)에 의한 부실기업 부동산 매입 ▲ 구조조정대상기업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양도세 감면 등의 지원혜택을 자발적 구조조정 추진기업에 대해서도 적용 ▲ 구조조정기업 주식인수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구조개선 사모펀드(PEF) 설립 촉진 및 현재 불법행위로 간주되고 있는 '차입에 의한 기업인수'(LBO) 적법 허용 ▲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용조정 대신 임금삭감을 할 수 있도록 노동계에서 협력해 줄 것 등을 꼽았다.
무엇보다 기업이 부동산 등의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지만 매수기반이 취약해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며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상의는 "상장제조업체인 A사는 지난해말부터 공장부지를 매각하려 했으나 매각이 성사되지 못해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건설자재업을 영위하는 또다른 상장사인 B사도 원매자가 제시한 가격이 매도희망가격보다 30%나 낮고 장부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어 포기하고 담보대출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의는 아울러 기업자산의 매수기반이 확충될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부동산 투자회사(CR리츠)에 대한 최저자본금 요건을 현행 100억원에서 50억원 수준으로 완화하고, 부동산 매입시 취․등록세 면제 등의 인센티브 부여를 건의했다.
또한 다음달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설치예정인 구조조정기금이 금융기관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기업의 보유부동산 등을 직접 매입할 수 있게 해 줄 것도 주문했다.(현재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만 매입할 방침임)
대한상의는 "현행 양도세 과세체계는 부동산 호황기에 만들어져 자산매각에 따른 세부담이 과다한 측면이 있다"며 현재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대상기업으로 지정된 경우에만 지원되는 양도세부담 완화조치(비사업용 토지매각시 양도차익의 30%를 법인세로 중과하는 제도 적용배제) 확대도 건의했다.
즉 키코 혹은 거래업체 연대보증 등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거래업체 부도로 연쇄부도위험을 겪는 기업,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해 재무구조를 개선 중인 기업 등이 자발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 대해서도 적용해 달라는 요구다.
대한상의는 이외에도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이 핵심자산 등을 매각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주인을 찾아 정상화될 수 있도록 M&A 관련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발전법상의 구조개선 사모펀드(PEF)에 대한 세제지원(주식양도차익 감면 등)을 통해 자본잠식 등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들이 외부의 투자가들로부터 자본참여를 받을 기회를 다각도로 확충해야한다는 것.
아울러 LBO 방식의 기업인수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배임죄로 처벌하고 있는 것도 고쳐져야한다고 주장했다.
LBO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M&A방식이고, 합병 후에는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이 동일해지며 피인수기업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피인수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규제의 실익이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자금력이 부족하더라도 경영능력이 있는 인수자가 M&A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 해줘 시장의 신진대사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 대한상의는 고용안정을 전제로 복지지출, 임금감축 등을 통해 경상경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노동계가 근로조건의 변경에 협력해 줄 것을 주문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 때는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했지만 지금의 구조조정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한편 위기이후를 대비해 신성장기반을 마련하자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채권금융기관에 의한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기업의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촉진하는데 정책의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