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는 산은 IB부문을 떼어 내 대우증권과 합병하고 이 과정에서 지주사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지분을 팔아서 20조원이 마련되면 정책금융 펀드인 KIF를 만들어 정책금융 기능을 남긴다는 복안을 내놨다.
그런데 인수위는 굳이 이 방식으로 민영화하는 이유가 △공적 금융기능 강화 △한미 FTA체제 등에 적합한 정책금융체제 확립 △토종 투자은행 육성 등이라고 내세웠다.
이들 목표만 놓고 보면 이것이야 말로 한국 금융산업의 지상과제들이다. 금융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마땅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왜 하필 산업은행 민영화 없이, 그것도 증권사 대표주자 하나를 묶어서 매각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또 반드시 그래야만 더 맛있고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설득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그런 민영화 없이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면 손댈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인수위는 산업은행의 투자은행 업무와 정책금융 업무가 80대 20의 비중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일단 이것은 분리 매각과 합병의 기준으로 삼기에 터무니 없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산업은행이 하는 일이 투자은행 아니면 정책금융이라는 2분법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올해 모두 26조5000억원의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투자를 통한 것이 10조5000억원이나 되지만 대출로 나가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을 합하면 14조5000억원에 이른다.
편의상 투자를 통한 공급 전부가 IB라고 분류하더라도 39.7%에 그친다. 반면에 기업대출은 54.7%로 절반이 넘는다. 게다가 전통적인 용어로 정책금융이라 부를만한 재정과 기금을 통한 공급은 5000억원이 전부다.
산업은행은 기업금융 전담 국책은행이다. 기업금융을 위해 전통적 은행업무인 대출 말고도 IB를 동원하고 국내 뿐 아니라 외국자금까지 끌어들여와 전통적 방식과 IB를 때로는 혼합하고 공조체제를 갖춰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해왔다.
산은의 변모과정은 오늘날 기업금융의 진화와 같은 궤도였고 시중은행 기업금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 시중은행 한 고위관계자는 "기업금융은 갈수록 투자금융 기법을 직접 가미하거나 IB의 뒷받침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도 IB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중은행 IB업무도 은행의 예수금과 공신력을 바탕으로 한 자금조달과 전통적 기업금융과 떼어 놓고 혼자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융계 현실을 단순화 비유를 내놨다.
그는 "다른 은행에 뺏기기 싫은 중요한 대기업 고객이 있다고 치자. 만약 이 기업이 M&A가 활성화돼 업종다각화 또는 주력 분야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M&A에 나서려 했을 때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면 그걸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만약에 이같은 프로젝트를 남에게 뺏겼다가는 알짜기업이고 규모가 큰 기업고객을 지키기가 위태롭기 십상"이라고 장담했다. "당장 M&A 과정에서 그것을 주선해주고 자금지원을 통해 수익을 못 먹는 걸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는 IB기법과 노하우가 월등한 다른 은행과 거래하기 마련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 금융시장은 이미 개방됐다. 초국적 금융자본들은 연일 시장전망이 밝다고 치켜세우는 한편 시장의 지배자가 되려고 혈안이 돼 있다.
국내 금융사들은 여기에 맞서 오히려 해외무대에 나가 갈고 닦은 금융기법, 특히 이제 막 고도화의 길로 접어든 IB역량을 발휘해 아시아 일부 지역 국가의 금융시장을 주름잡고 싶어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문가들과 금융계 인사들은 산업은행이란 버팀목 없이 한국 금융이 글로벌 강자대열에 합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LG카드 사태와 같은 위기가 왔을 때처럼 시장기능이 실패했을 때 민영화된 산은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민간 은행들과 거의 대부분을 전면 경쟁하는 민영화된 산은이 다른 금융회사 IB와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공공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발상은 넌센스다.
산업은행은 국민의 재산이었기에 지금까지 국내 IB와 기업금융 무대에서 상업적 이윤 추구를 최소화하면서 다른 금융회사들과 시장을 함께 넓히고 공존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런 산은의 상당부분을 떼어 내 증권업계 선두를 다투는 대우증권과 함께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은 사상 초유이자 최대의 실험일 수밖에 없다.
금융과 산업자본 분리를 완화한다는 정책과 맞물려 산업은행의 발전가능성 큰 부분과 증권사 대표 기업 중 하나를 묶어서 특정 재벌에 팔겠다는 것인지, 초국적 금융자본에 넘기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전자는 경제력의 초집중 현상 우려와 논란을, 후자는 금융주권을 해외자본에 넘김으로써 실물경제를 종속시킬 우려와 논란이 동반할 것 또한 자명한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실험이 자칫 실패로 판명되면 곧바로 한국 금융산업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얼마나 큰 손실로 확산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인수위는 맞춤형 보고를 방불케 한 재경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곧바로 확정하는 수순을 밟음으로써 모험가에 가까운 면모를 과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최소한 금융시장과 산업 전체에 대해 통찰하고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보면서 한치의 어긋남 없이 치밀하게 실행하려는 예비 국정운영자답게 해법을 찾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동시에 발화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