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공공분양 패러다임 변화 포석…100만 가구 이상 다량 공급이 관건
싱가포르처럼 싼값에 공급해야 효과 얻을 것…이 경우 재정 부담 우려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범여권에서 싱가포르식 '99년 임대주택' 도입 주장이 나오면서 새로운 유형의 장기 임대주택 공급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용산이나 강남 등 인기지역에도 99년 임대주택을 건립해 ′1급지′에서도 소셜믹스를 적용하자는 구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실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요층에게 인기가 높은 재건축·재개발 임대주택을 비롯해 대부분 공공임대주택이 사실상 영구임대주택으로 공급되는 상황에서, 99년 임대주택은 명칭이 주는 상징성만 있을 뿐 실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진단이다. 게다가 대규모 공급이 정책 효과를 좌우하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싱가포르식 99년 임대주택을 서울 핵심 입지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실제 적용 여부에 시장과 정책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국 대표는 지난 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활 인프라가 좋은 곳부터 다양한 평형과 고품질로 공급하고 장기 주거하도록 해 투기는 막고 자산 형성의 길을 열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민간 독점 구조를 깨는 것이 부동산 개혁의 기본 방향이어야 하며 민간과 국가가 짓고 국민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거대한 부동산 공공시장을 만들어 민간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조 대표가 주장한 싱가포르식 99년 임대주택은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에게 장기 임대 형태로 제공하는 임대주택이다. 싱가포르는 건국 초기부터 정부 산하 주택개발청(HDB)이 공급하는 공공주택에 전체 인구의 약 80%가 거주하는 구조로 공공주택 중심의 주택 정책을 운영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는 앞서 90년대 당시 야권 일각에서 제기된 것으로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캠프에서 공약으로 내건 사항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도 싱가포르의 다주택 보유 억제 정책을 벤치마킹해 국내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싱가포르 국가 주도 주택공급 체계를 잇달아 언급하고 있다. 앞서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던 이 대통령도 99년 임대주택이다. 민영주택 가격의 약 55% 수준에 공급하며 99년 이후에는 주택에 따라 소유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소유주택처럼 장기 거주가 가능한 주택이란 장점에 대해서는 호평하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국내 도입에선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먼저 99년이란 100을 영원으로 해석하는 싱가포르의 기원인 중국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99년이 주는 상징성은 결국 영구임대주택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1898년 영국은 당초 홍콩을 영구 조차할 방침이었지만 국제사회에 반대 압력이 거셌으며 이와 함께 당시 청나라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99년 조차를 단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99년 임대주택이란 사실상 우리의 영구임대주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9년 이후에는 주택에 따라 분양 전환이 가능하지만 지은 지 100년이 된 주택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주택 소유 의지를 꺾고 거주의 목적에만 충실한 주택을 짓는다면 현 정권의 정책 방향과 유사하다.
다만 이같은 정책이 도입되려면 싱가포르와 같은 정권주도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인구 611만명, 인구밀도 세계 3위(7804명/㎢)로 좁은 땅 위에 많은 사람이 사는 전형적인 도시국가라는 특성을 갖는다"며 "특히 역사적으로 강한 정부가 군림하는 형태로 좁은 땅에 돈 있다고 넓은 집을 가지려는 수요를 차단해야한다는 정책적 의지로 이같은 정책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60~70년대 서울과 주택 문제가 없는 현 시점에서 이를 도입해야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조국 대표는 99년 임대주택 공급지역도 추천했다. 그는 용산공원, 서초동, 서울공항 등 핵심 입지 공공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할 것을 주장하며 "생활 인프라가 좋은 곳부터 다양한 평형의 고품질 주택을 공급해 장기 거주하도록 하고 투기는 막으면서 자산 형성의 길은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용산공원을 비롯해 1급지로 불리는 강남권에도 재정비사업과 공공택지에는 반드시 다량의 공공임대주택이 건립되는 것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낮은 주장이란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공공임대주택은 100%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지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공택지를 조성해 짓는 공공임대주택이나 재건축·재개발 임대주택을 정부나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99년 임대주택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며 "기존 임대주택과 다를 바 없으며 임대주택임에도 토지임대부 방식을 강조하는 것을 감안하면 주택 임대료 외 토지임대료를 별도로 받는 방식 도입이 해석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행법상 재건축 연한이 30년인 상황에서 싱가포르처럼 99년 단위 장기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려면 장수명 주택 채용 등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공분양 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공공택지에서 공공이 분양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은 완전 분양이 아닌 99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얼마나 싼 주택을 공급하냐에 정책 성공의 관건이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가포르처럼 민간 대비 55% 수준에 공급한다면 토지임대료를 감안하더라도 경쟁력이 있지만 우리나라 공공분양 시세 기조인 주변시세의 85%에 공급한다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100년 이후를 바라보는 99년 임대주택의 특성상 서울 도심에서 적용되는 초고층·고밀도 아파트에서의 도입은 어렵고 현 장수명주택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도권 공공택지 물량에서는 적용할 만한 기법으로 진단하고 있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장기 거주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99년 임대주택의 도입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정책적 효과를 얻기 위해선 100만가구 이상의 다량 공급이 필요한데 현재 재정이나 주택보급률을 봤을 때 그럴 여건이나 필요성이 많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책 타깃을 부동산시장 안정보다 20~30대 내집마련 수요의 주거 안정성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dong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