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스웨덴 의회도서관에서 낡은 제본을 펼치면,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단순한 형태로 나타난다. 선거 포스터도, 혁명의 군중도, 정열적인 연설문도 아니다. 회의록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의회 속기록이다. 표지에는 날짜와 본회의 회차가 찍혀 있고, 안쪽에는 수백 개의 문장이 단정한 글씨로 쓰여 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물었는지, 어떤 장관이 어떻게 답했는지, 어떤 의원이 어떤 단어로 상대를 규정했는지, 그리고 그 말들이 어떤 표정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민주주의의 흥망을 말하려면, 우리는 결국 이 숨어 있는 속기사들의 문장들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정치학 연구에서 민주주의를 제도로만 이해하려는 습관은 오래되었다. 헌법과 선거, 정당과 의회, 권력 분립과 법치. 물론 이것들은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제도가 살아 있는데도 민주주의가 병들어 가는 순간, 법률이 존재하는데도 공적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 선거가 치러지는데도 시민이 서로를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순간이다. 이때 먼저 흔들리는 것은 보통 제도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 공적 정당화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근거가 줄어들고, 상대의 시민성을 인정하는 문장이 사라지고, 반대자를 설명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단어들이 늘어난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를 공적 정당화의 절차로 이해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투표 이전에, 서로에게 이유를 제시하고 반박을 견디는 언어적 질서라는 뜻이다(Habermas 1996).
이 글에서 붙잡고 싶은 것은 그 언어적 질서의 온도다. 지도자의 말은 중요하다. 한 문장이 시대를 규정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지도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가 매일 작동하는 현장은 의회다. 그리고 의회의 실체는 속기록이다.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Hansard, 스톡홀름의 Riksdagsprotokoll, 워싱턴의 Congressional Record, 파리의 Journal Officiel,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Reichstagsprotokolle. 이 문서들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종이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자신을 유지하려고 어떤 말을 반복하는지, 반대로 스스로를 좀먹을 때 어떤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지, 그 흔적을 남기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이 글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한 장면을 떠올린다. 본회의장. 의장석의 망치 소리. 의사 일정을 알리는 목소리. 이어서 야당 의원이 일어나 정부를 향해 질문한다. 왜 이 정책을 추진했는가, 왜 이 예산을 삭감했는가, 왜 이 전쟁을 지지하는가. 질문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징표처럼 보인다. 그런데 질문이 질문으로 남지 않을 때가 있다. 질문이 이유를 묻는 장치가 아니라 낙인을 찍는 장치로 바뀔 때다. 답변이 책임을 지는 언어가 아니라 회피와 위협의 언어로 바뀔 때다. 토론이 설득이 아니라 굴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뀔 때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반복해서 보여주듯, 시민은 정책의 기술적 복잡성보다 갈등의 감정적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치인의 적대적 신호는 대중의 적대와 불신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Iyengar and Westwood 2015). 의회가 그 신호를 매일 생산한다면, 사회 전체는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까.

앞으로 제시할 글에서 제안하는 관찰 도구는 두 개다. 하나는 설득의 기술을 해부하는 지표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언어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지표다. 전자는 CPS-15(Civic Persuasion Score)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고전 수사학에서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이르는 이론들을 묶어 설득의 구조를 15개의 관찰 변수로 분해한다. 주장과 근거, 증거와 반박, 상대를 어떻게 호명하는지, 감정이 논리를 어떻게 감싸는지, 제도와 법치가 정당화의 근거로 사용되는지, 논리적 오류와 인지적 편향이 어느 정도 동원되는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ethos, pathos, logos의 균형(Aristotle), 키케로의 발상과 배열, 문체와 전달(Marcus Tullius Cicero), 버크의 동일시(Burke 1969), 툴민의 논증 구조(Toulmin 1958), 페렐만의 신수사학(Perelman and Olbrechts-Tyteca 1969) 같은 전통을, 의회 토론이라는 살아 있는 장르에 맞춰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전환한다.
후자는 DRHI(Democratic Rhetorical Health Index)라는 6개 지표다. 다원적 시민성을 유지하는가, 갈등을 절제하는가, 정당성을 법과 제도에 묶는가, 사실과 증거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 상처를 통합과 화해의 언어로 다루는가, 시민을 판단의 파트너로 대우하는가. 이 여섯 가지는 민주주의가 언어로 유지되는 최소 조건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설득력이 높다고 해서 민주주의적 건강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은 종종 설득 기술이 뛰어난 말이 공적 규범을 파괴할 때였다. 언어는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던 것은 바로, 진실과 현실 감각이 무너질 때 정치가 어떤 깊은 어둠으로 떨어지는가였다(Arendt 1967). 말이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남는 것은 강제와 믿음의 경쟁이다.
이 두 측정 지표는 저자가 16개의 설득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했다. 방법론은 뒤에서 더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분석은 숫자를 내세우되 숫자만으로 말하지 않으려 한다. 점수는 초행자의 여행을 돕는 지도처럼 이해 도구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의회 속기록 속 장면들을 불러내고 싶다. 경제 위기의 해, 예산안 토론이 길어지던 밤. 외교 위기가 번지던 아침, 한 의원이 국가의 존엄을 말하며 타협을 배신으로 규정하는 순간. 총리의 답변이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 상대의 동기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기울던 장면. 반대자를 시민으로 남겨두는 문장과, 반대자를 적으로 밀어내는 문장이 공존하다가 어느 순간 후자가 우세해지는 과정.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이야기로 체험할 수 있고, 동시에 지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이 숫자를 가난과 질병 퇴치라는 삶의 이야기로 바꾸어 보여주었듯(Rosling 2018), 민주주의의 언어도 궤적의 형태로 시각화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미리 피하고 싶다. 말의 질을 논한다고 해서 품격이나 예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의는 중요하지만, 핵심은 더 깊다. 공적 토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규칙, 즉 이유의 제시, 증거에 대한 책임, 상대의 시민성 인정, 법과 절차의 존중, 갈등의 절제, 통합의 언어가 유지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논리적 오류나 인지 편향 목록은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한 사전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병들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적 증상이다. 인신공격이 정책 논의를 대체하고, 무지에 호소하는 말이 증거를 밀어내고, 위협의 논증이 설득의 자리를 차지하고, 조롱이 반박을 대신하고, 허수아비 공격이 상대의 실제 주장을 지워버리는 순간, 의회는 점점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오염시키는 곳'이 된다.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 붕괴가 어느 날의 쿠데타로만 오지 않고, 규범의 침식과 상호 관용의 붕괴로 서서히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Levitsky and Ziblatt 2018). 그 침식은 종종 의회 속기록의 단어 선택에서 먼저 드러난다.
앞으로 진행할 이 시리즈의 첫 질문은 단순하다. 국가가 흥할 때 의회의 말은 어떤 모습을 띠는가. 국가가 정체할 때 의회의 말은 어디에서 경직되는가. 국가가 쇠퇴하고 자멸로 향할 때 의회의 말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지는가. 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13년을 이 질문의 가장 잔혹한 교과서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바이마르에서 멈추지 않는다. 북유럽 의회의 언어가 왜 높은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었는지, 웨스트민스터의 대립이 왜 붕괴가 아니라 제도 경쟁으로 수렴하는지, 미국과 프랑스 같은 강한 민주주의도 언제 DRHI가 흔들리는지, 일본의 군국주의 시기에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에서 어떻게 전쟁의 언어를 정상화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말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까지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결국 현재형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속기록을 쓰고 있는가. 오늘의 의회에서 누군가가 상대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증거가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가. 시민은 판단의 주체로 존중받고 있는가, 아니면 동원의 도구로 취급받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매일의 언어로 유지되는 공사 현장이다. 그리고 그 공사 기록이 바로 의회 속기록이다. 내일의 국가를 예측하고 싶다면, 오늘 의회에서 어떤 문장이 반복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바이마르 의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한 번의 연설이 아니라, 수백 번의 질문과 답변이 축적되며 민주주의의 체온을 떨어뜨리는 과정을, 날짜가 박힌 속기록의 문장들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