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독주 끝, 상주서 피어나는 'K-포도'의 새 얼굴
김시호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 대표, 신품종 재배 성공해
농진청, 포도 신품종 재배면적 2030년까지 '300ha' 목표
한류 열풍을 탄 'K-푸드'는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농식품 수출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쌀'과 '포도'는 새로운 수출 활로를 찾고 있는 전략 품목이다. 특히 국산 쌀은 프랑스 등 신시장 개척에 성공했으며, 포도의 경우 신품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핌>은 변화의 현장을 직접 조명하며, 세계 속에서 확장 중인 K-푸드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글싣는 순서] 세계의 한입
① "우리쌀 프랑스 가불었당께"…K-쌀 수출 실적 '쑥'
② 파리지앵 입맛 사로잡은 K-쌀…이젠 고급화 전략
③ K-푸드 숨은 공신 '샤인머스캣'…품종 다변화 변신
④ 슈팅스타·코코볼·홍주씨들리스…아시아부터 공략
⑤ "K-디저트 가로막는 유제품 검역…시장 분석 필요"
[상주=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 9월 22일, 경북 상주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 하우스 안은 이른 아침부터 습기가 자욱했다. 이파리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마다 연둣빛과 붉은빛 포도송이가 반짝였다.
샤인머스캣의 녹색이 아닌, 코코볼·슈팅스타·홍주씨들리스의 짙은 빨간색이 하우스를 비췄다. 이곳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지정한 저장유통·과수 분야 연구협력농장이다.
올해로 신품종 재배 4년차를 맞은 김시호 대표는 포도송이를 손끝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슈팅스타는 솜사탕 향이 나요. 당도가 20브릭스까지 올라갑니다. 너무 달아서 어른보단 애들이 좋아하죠"라고 소개했다.
이름이 슈팅스타여서일까. 포도알마다 별빛이 흩뿌려진 듯한 자줏빛이 감돌았다. 그는 이 품종을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포도'라고 설명했다. 슈팅스타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개발한 무핵(씨 없는) 포도로, 열매껍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으며 향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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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뉴스핌] 이정아 기자 = 경북 상주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에서 육성하는 포도 신품종 '슈팅스타' 2025.10.15 plum@newspim.com |
슈팅스타는 올해 상주 일대에서 약 3ha(1㏊는 1만㎡) 규모로 시범 재배 중이며, 백화점과 온라인몰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김 대표는 "슈팅스타는 현대백화점에도 납품 중입니다. 2kg 납품가가 5만원이에요. 백화점에서는 더 비싸게 팔리죠"라고 자랑했다.
바로 옆에는 껍질이 코코아 빛을 띠는 코코볼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김 대표는 "이름이 코코아색이라 '코코볼'이에요. 아직 당도가 덜 들어왔지만, 내년엔 제대로 된 맛을 낼 거예요"라고 말했다.
코코볼은 지난해부터 보급된 신품종으로, 얇은 껍질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송이가 성글게 달려 노동력이 줄고, 평균 당도는 19브릭스를 웃돈다.
농촌진흥청은 천안·영천·상주를 중심으로 재배면적을 5ha까지 늘렸으며, 내년에는 홍콩·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 1톤가량의 시범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우스 안 공기는 짙은 포도 향으로 가득 찼다. 김 대표는 하얀 봉지를 벗기며 당도를 확인했다. 그는 "이건 아직 18브릭스 정도예요. 16브릭스에 따면 맛이 없어요. 최소 18브릭스 이상 돼야 제대로 된 맛이 나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일부 농가에서는 포도를 16~17브릭스 상태로 출하했다가 해외 바이어의 '맛이 밋밋하다'는 클레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김 대표는 "수확이 너무 빨랐던 거예요. 착색은 빨리 오는데, 당이 따라오지 못하면 맛이 떨어져요. 이제 그런 실수는 안 하죠"라며 웃었다.
청실홍실농장은 이미 '홍주씨들리스'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다. 김 대표는 "홍주는 씨 없는 붉은 포도예요. 7~8년째 키우고 있는데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품질이 나왔어요"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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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뉴스핌] 이정아 기자 = 경북 상주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 김시호 대표가 포도 신품종 '코코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0.15 plum@newspim.com |
그는 당도계를 들어 보이며 "지금이 제일 좋아요. 작년엔 당도가 안 올라서 힘들었는데, 올해는 괜찮아요"라며 "홍주는 당도가 18브릭스 이상 나와야 하고, 알 크기를 500g 전후로 맞춰야 수출할 수 있어요. 작년엔 그게 안 돼서 클레임이 왔지만, 올해는 괜찮습니다"라고 전했다.
홍주씨들리스는 껍질째 먹는 붉은색 무핵 포도로, 머스캣 향과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농촌진흥청은 현재 약 100ha 규모의 묘목을 보급했으며, 상주와 홍성 지역을 중심으로 약 5ha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품종을 '살아난 포도'라고 불렀다. 그는 "홍주는 한때 재배가 어렵다고 포기했던 품종이에요. 그런데 올해 품질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해거리가 심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어요"라고 자신했다.
김 대표는 하우스 끝으로 걸어가며 잎사귀를 만졌다. 손끝에 흙과 이슬이 묻었다. 김 대표는 "이 하우스 하나 짓는 데 2억 들었습니다. 4년째인데 아직 투자금 회수는 못 했어요. 작년엔 인건비도 안 나왔고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해야 매뉴얼이 생기고, 다음 농가들이 따라올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은 세 품종(코코볼·슈팅스타·홍주씨들리스)의 재배면적을 2030년까지 300ha 확대할 계획이다. 김 대표 같은 선도 농가가 전국 시범단지 조성의 중심에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은 품종 개발과 현장 보급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관(官) 주도의 기술 보급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한국포도회·한국포도수출연합 등 민간단체와 협력해 지역별 생산·유통 통합체계를 구축했다.
충북·경북·충남 등 주요 거점에는 현장 모니터링과 묘목 보급을 맡은 영농조합이 운영되고, 지자체 연구소와 원예특작과학원 연구진이 함께 재배 지침서를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농가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품종별 특성을 안정적으로 발현시킨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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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뉴스핌] 이정아 기자 = 경북 상주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에서 육성하는 포도 신품종 '홍주씨들리스'. 2025.10.15 plum@newspim.com |
※ 본 기사는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plu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