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 여성 최초 임원 "새벽까지 실험해 우루사·코큐텐 개발"
"정치는 생각도 못했지만…그간 경험 국민께 돌려드리고 파 입문"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 꿈부터 제약업계 최연소 여성 임원 그리고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인생 궤적을 소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 9일에 촬영됐다.
최 의원은 경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대웅제약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10여 년간 연구를 이어갔고, 국내 대표 의약품인 우루사와 코엔자임Q10 개발에 참여했다.
최 의원은 "새벽까지 혼자 실험하고 낮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걸 10년간 반복했더니 득도한 느낌이었다"며 "우루사 원료를 대체할 화학적 방법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시장이 크게 확장됐다"고 돌아봤다.
성공적인 제약 경력을 뒤로하고 정계에 입문한 배경에 대해 최 의원은 "정치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길"이라며 "주변의 권유에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이제는 선수보다 감독이 돼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밝혔다.
그는 "내 인생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바이오 제약부터 산업, 투자, 대학까지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듯 정치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였다"며 "국회의원으로서도 변신이 아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이어갈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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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TV] |
1968년생인 최수진 의원은 서울 영등포여고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에서 화학과를 전공했다. 이후 동대학원에서 화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도 밟았다.
최 의원은 1995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최연소 연구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냈다. 재직 기간 동안 '우루사' '코엔자임 Q10' 등 주요 의약품 원료 개발에 참여했으며, 제약업계 최초의 여성 임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최 의원은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신산업 MD와 OCI 바이오사업부 부사장,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를 거쳐 한국공학대학교 특임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며 당 내에선 원내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다.
다음은 최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최수진 의원, 이하 최 의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 기자)
요즘 원내수석대변인 맡고 계셔서 바쁘실 것 같은데 좀 어떻게 지내셨어요?
▲(최 의원)
대변인 맡아서 바쁜 것도 바쁜 건데 지금 현안이 너무 많아요.
복잡한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야당 되니까 정말로 깔 게 많더라고요.
그리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투쟁해야 될 것도 많고 진짜 이거는 국회의원인지 노동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해야 되니까 우리의 갈 길 가고 있죠.
-(신 기자)
이제 곧 있으면 국정감사 시작되잖아요. 그런 준비도 좀 잘 되어 가시나요?
▲(최 의원)
솔직히 못하고 있어요. 지금 이제 10월인데 지금부터 사실은 작년 요맘때 제가 초선 때 와가지고 국정감사를 처음 할 때는 거의 한 달 반 전부터 저희가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뭐 이번에는 그렇게 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지금 보세요.
세개 특검법 지금 추가로 더 한다고 하잖아요. 그것뿐만 아니라 내란 특별재판부 그것도 한다고 그러지 방송에 관련된 것 중에 언론중재법 그것도 또 하잖아요.
방송 3법도 통과한 다음에 뿐만 아니라 지금 얘네들이 이번에 조직 개편안 또 냈잖아요.
이런 것들을 본회의에서 다 상정시키겠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야당 의원들 다 압수수색 엄청 한판탕 했고 구속까지 시킨다잖아요.
그래서 우리 권성동 의원 한다고 그랬지 그다음에 추경호 대표님 이제 피의자로 지금 적시하고 있죠.
이래서 저희가 무슨 내란몰이로 막 몰아가고 있는 거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야당 탄압을 넘어서 이거는 국민 탄압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 세이브코리아 손 목사님 구속시켰잖아요.
정말 종교 탄압까지 세상에 이런 정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희 맨날 압수수색 들어와도 아무것도 안 가져 못 가져가잖아요.
없어 가지고 그러니까 이제 또 더 센 특검법, 더 센 상법, 더 센 노란봉투법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지금 상황들이.
-(신 기자)
최근에 여야 대통령 회동 했잖아요. 협치 가능성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좀 어떻게 보셨어요?
▲(최 의원)
거꾸로 한번 여쭤볼게요. 우리 기자님 될 것 같아요?
-(신 기자)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최 의원)
그렇죠, 그래서 처음에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우리 송원석 대표님도 똑같았어요.
저는 이 레파토리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인 거는 민생 관련된 일은 좀 해보자 이렇게 얘기를 해서 그나마 좀 국민들한테는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나 실제로 그들이 할까 그것도 그 얘기하잖아요.
정례화하는 게 아니고 여당이 요청하면 하겠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장난하는 거지 그래서 저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아마 9월에 원하던 대로 다 몰아칠 겁니다.
지금 얘기했던 법안들을 근데 결국은 그런 문제점들이 다 국민한테 돌아갈 거고 국민들이 사법이나 치안이나 본인들에 대한 헌법적인 국민의 그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을 거예요.
그다음에 예산 같은 경우 지금 기재부 예산 권한 다 줄이고 다 대통령 행안부로 몰아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사법 예산 그다음에 어떤 검찰 언론 다 대통령 제왕적인 중심으로 다 가버린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실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삼권 분립 다 무너졌습니다.
실제로 그거에 대한 투쟁을 하지 않고 알리지 않으면 그거는 또 우리의 죄라 생각하고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렵네요, 상황들이.
-(신 기자)
네 의원님 좀 무거운 얘기 잠깐 뒤로 하고 좀 의원이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이제 영등포여고랑 경희대 화학과 졸업하시고 동대학원에서 화학 석박사 과정까지 마치셨는데 혹시 어린 시절부터 꿈이 과학자셨는지 궁금합니다.
▲(최 의원)
저 같은 경우는 이과의 과목들을 좋아했던 것 같고 화학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제 뭘 할까 하다가 그때 의대를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 의대가 안 되면서 2지망으로 제가 화학과를 지망해서 가게 된 거고. 어쨌든 실험실이나 탐구하고 새로운 걸 찾고 이런 호기심, 이런 건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과학자로 가는 길이 맞았다 그런 생각은 분명히 들어요.
제가 석사까지 마치고 대웅제약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대웅제약을 다니면서 한 10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학위도 따고 여러 가지 좋은 성과들도 만들어내고 그랬던, 정말 남들보다 한 두세 배 노력했던 시간들이 한 10몇 년 동안 그러고 살았던 것 같아요.
-(신 기자)
공부를 병행하면서 일하는 것 자체도 좀 되게 어려운 일인데 거기다가 이제 대웅제약에서 여성 최초 임원까지 하셨잖아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따로 있었을까요?
▲(최 의원)
그러니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뭐 '모르고 할 때 할 수 있다'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 아무도 못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에 취업을 하게 됐고 그때 이제 회사에서 하게 하는 시스템이나 제도가 없었어요.
그거를 처음으로 학교를 설득하고 회사를 설득하면서 하게 됐죠.
이런 일들을 했더니 거의 10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끝날 무렵에 임신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집하고 학업하고 직장 생활을 3개를 같이 시간을 엄청나게 쪼개면서 사용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회사 일도 되게 열심히 했어요. 예를 들어 뭐 논문을 써라 논문 실험을 해라 그럴 처지가 아니었어요.
저는 거의 밑에 직급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혼자서 막 새벽까지 실험하고 일하고 학교 수업도 하고 그 시간 동안 10년이 딱 지나고 나니까 그러니까 약간 득도한 느낌 공부도 많이 했고 그 힘든 과정을 딱 겪고 났더니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그 당시에 그래서 코엔자인 큐텐 우르사 이런 것들을 제가 같이 이제 개발을 시작을 했죠.
그러면서 그때 했던 일들의 결과물들이 지금은 많은 성과가 됐다.
진짜 어려운 거를 그 고통과 그때 뭔가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으면 결국은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저는 뭔가 해냈잖아요.
그런 느낌. 그러니까 그런 내공이 쌓였던 한 10년간의 시간이었더라.
-(신 기자)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오셨는데 사실 그렇게 쉼없이 좀 달려가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거나 힘들 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럴 때 좀 이겨내는 방법이 따로 있으셨을까요?
▲(최 의원)
늘 힘들었지 늘 그 요즘도 힘들어. 요즘도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이 시간들이 예측되지 않는 시간들이잖아요.
사람이 예측이 돼야 이제 뭐 계획도 짜고 앞으로의 뭔가 꿈도 그리고 비전도 그렸는데 지금도 그 얘기해요.
'너 뭐 하고 싶어?'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하루하루를 그냥 견뎌내고 살아가는 거 그게 내 인생의 목표인 것 같다.
맨날 이 말을 해요. 무엇이 되고 싶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이랬던 기억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걸 안 넘으면 다음이 없다고 늘 생각하니까 이런 생각 안 하세요.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는 게 되게 비슷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하고 안 하는 사람하고 근데 하루하루는 그렇게 큰 차이가 안 나요.
근데 그거를 1년 크게는 10년까지 내다보면 엄청난 격차가 생겨요. 그러니까 사람이 똑똑해지고 그거에 대한 내공이 쌓이는 시간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저는 그런 경험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뭔가 해보겠다는 세계적인 걸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안 했지만 지금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그 과정에서 뭘 극복하면 이 단계에 도달하는지 그런 거를 그냥 몸으로 체험한 거 이런 것들이 되게 남았던 것 같아요.
그런 걸로 좀 견뎌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진짜 새로운 거를 개발하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그 길은 성공할지 안 할지 아무도 몰라요. 우루사 같은 경우는 이미 일본에서 수입된 약이었어요.
1970년대 원료는 이태리에서 수입을 했었습니다. 주 성분이, 그때 뭐가 문제였냐면 그 소에서부터 나오는 원료였어요. 그러니까 광우병이 돌면서 전 세계 원료가 쇼티지(공급 부족)가 되는 거예요. 그럼 원료 수입량이 없어요.
그러면 우루사가 발매할 수가 없겠죠 네 그래서 이제 회사에서 그걸 고민하다가 다른 기술로 네가 좀 개발 좀 해봐 그랬는데 결국은 이런 다양한 가축이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곰의 쓸개로 전환시키는 화학 방법을 제가 개발을 했던 거죠.
그래서 2000년대 초에 개발을 했고 그걸 통해서 우루사 시장이 엄청나게 확장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국내에서도 이미 1000억 이상 파는 브랜드 제품이고 해외 수출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그거를 중국 같은 데를 다 돌아다니면서 원료 소싱부터 시작해서 다 개발을 한 거죠.
이번에 제가 최고위원 나갔잖아요. 그래서 우연히 이렇게 수다 떨다가 내 소개를 하면서 제가 회사도 다녔고요.
제약회사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걸 개발했습니다.
했더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고 나서 이제 그때서야 우루사가 나보다 훨씬 유명하지 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코큐텐도 우리나라에서 되게 만들기 어려운 약이에요.
몸에 있는 조효소인데 그러니까 에너지를 만드는 효소다. 쉽게 설명하면 조효소인데 문제는 나이가 30이 넘어가면서 조효소가 생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외부에서 넣어줘야 돼요. 그걸 만약에 안 먹으면 이런 우리가 근육 같은 데 에너지가 없어요.
그러니까 근 이완증이라 해서 근육이 점점 늘어지는 거죠.
그거를 다 운동이나 다른 걸로 뭔가 피지컬한 걸로 보충하지 않는 한 사람이 늘어지거든요.
에너지가 안 나오고 그래서 이제 그거를 먹어서 보충을 하는데 아주 항산화 효소로 비타민c보다 더 좋은 그런 효능이나 효과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거를 개발했고 제가 CF에도 나왔어요.
-(신 기자)
CF에 직접 출연하신 거예요?
▲(최 의원)
직접 출연해서 그게 뭔가 설명도 했어요. 옛날에 그 유산균 선전할 때 그런 무슨 매치 뭐지 박사님 나와 가지고 선전하듯이 제가 그때 코큐텐 브랜드 선전까지 했었어요.
-(신 기자)
영상에 이제 자료 화면으로 나갈 겁니다.
▲(최 의원)
여기 처음 공개하는 거예요. 그거를 제가 그 얼마 전에 찾은 거예요. '아 내가 선전한 적도 있었지' 하고.
-(신 기자)
그때가 대략 언제쯤이에요?
▲(최 의원)
2000년대 거의 초반에 연구했을 때니까 벌써 20년 됐네요.
20년 넘었네요. 창피하지만 하고 그런 거를 TV에 잠깐 봤었어.
-(신 기자)
성공을 하셨던 만큼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게 더 많이 좀 부담이 되고 고민이 되셨을 것 같은데 의원님의 그 당시 고민이나 아니면 혹시 넘어가실 때 가족분들은 또 혹시 뭐라고 반응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최 의원)
제가 정치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진짜로 그래서 20년간 직장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항상 느끼는 게 뭐냐 하면 최고일 때, 아름다울 때 떠나라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이제 떠날 타임이 됐다. 그러면서 이제 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겉으로는 되게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시면 다 새로운 길을 걸은 거예요.
사실 산업부 간 것도 바이오나 제약 분야에서 간 사례가 제가 최초예요.
거기서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의학 빅데이터를 모아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인공지능(AI)이나 4차 산업혁명 그때 일어날 때 의료 데이터 통합하는 건 전 세계에서 제가 최초로 했을 거고 지금도 한 데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제 그런 일들도 했고 그다음에 OCI 가서 진짜 벤처 투자 해외까지 하는 일도 새로 했고 그리고 그 부서를 처음부터 제가 다 셋업하고 만든 거예요.
거기는 전형적인 제조업이에요. 제조업에서 투자하는 바이오업으로 옮겨간다는 건 완전 다른 문제예요.
그래서 사람들도 너무 마인드도 달랐고 그런데 그걸 했고 또 학교에 가서도 거기는 한국 공대인데 공대가 있지 바이오 제약 쪽은 아예 없는 곳이에요.
제가 거길 가서 시흥과 송도를 연결하는 바이오 허브를 만들어 놓고 나왔어요.
그런 와중에 제안이 들어왔죠. 정치를 해볼 생각 없냐고. 처음엔 거절했죠.
왜냐하면 나는 정치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정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일반 국민들처럼.
(정치는) 썩은 물 같은 느낌. 그리고 왠지 거길 가면 내가 엉망진창이 될 것 같은. 지금까지의 나의 명성과 전문 트랙에 뭔가 오점이 남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일단 (정치에 대해) 모르고. 그래서 거절을 몇 번 했고요.
그 와중에 우리 조 의원님 저를 꼬셨죠 완전 꼬셨는데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제는 선수로 뛰지 말고 감독이 돼야 된다. 그리고 너의 지금까지 이런 경험들을 좀 국민한테 되돌려주고 이런 법안과 정책을 만들어 보면 어떠냐 그렇게 제안을 했고 두 번째로는 여기에 있으면 네가 뜻을 이루기에 생각보다 다른 데보다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최소한 네가 만나달라고 하면 사람들이 만나줄 것이다. 그럼 너의 동지를 얻어라.
진짜 혹하잖아요. 그게 정치야? 내가 생각했던 정치하고 달라. 막 이런 생각 했어요.
그리고 제 일 열심히 하다가 뭐 면접 보고 뭐 원서 내라고 그래서 그냥 진짜 기대 안 하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정치를 한다고 생각 못했어요.
진짜로 그리고 그냥 물 흐르는 대로 갑자기 확 흘러간 거야.
갑자기 그리고 내가 정치를 왜 해야 되는지도 몰랐고 그래 갖고 이제 원서 쓰고 쓰라니까 이왕 시작했으니까 일단 써볼까 했는데 어느 날 덜컥 된 거야. 3번으로 된 거예요.
-(신 기자)
어떠셨어요? 그때.
▲(최 의원)
그때부터 이제 나는 너무 갈등을 겪기 시작한 거죠.
혼자서 사실 제 모든 사람이 그럴 거예요. 무슨 확고한 의지나 방향이 서지 않으면 이렇게 액션하거나 움직이기가 되게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되게 고민의 시간이었어요. 그때 그런데 이제 주위에서는 어드바이스를 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정치인이 없었으니까. 그 길을 가본 자가 한 명도 없으니까 그래서 혼자 되게 고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내 인생이 도전을 하며 살지 않았나 그러면 정치도 새로운 도전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바이오 제약이라는 완전 중심 거기를 중심으로 해서 연구도 했고 마케팅도 해봤고 그거에 대해서 투자도 해봤고 정부 전체에 대한 기획 예산까지 다 해봤고 제가 중간에 기자처럼 인터뷰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 갖고 이렇게 우리나라 벤처 성공한 그 CEO 대상으로 했던 그런 그것도 처음 말씀드린다.
그것도 제가 코너를 만들어 가지고 진짜 다음 세대를 위한 이런 인터뷰를 제가 그 코너를 한 적이 있어요. 온라인으로 엄청 각광받았어요. 성공한 사람이 실패하는 건 당연했다. 근데 실패를 어떻게 겪었냐 거기에 포인트를 둬서 경험담을 얘기하는 코너를 만들었었어요.
그래서 우리 애널리스트들까지 다 봤어요. 그 회사를 평가하면서 CEO를 알아야 되니까.
제가 그런 일도 해보고 마지막에 해볼 거 다 해봤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더 이제는 원 없이 해봤다. 학교 교수까지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뭔가 기여하고 싶다. 다음 나의 후배들한테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 그 마음이 딱 들었던 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내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똑같다.
회사랑 가는 길이 똑같을 것이다. 지금 내가 걸어왔던 길처럼 나는 국회의원을 할 거다.
나는 변신할 필요가 없다 하나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를 임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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