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매입→LH 직접시행…시행사 설 자리 잃었다
'안전판' 잃은 영세 시행사…"일감 90% 증발, 줄폐업 위기"
'개점휴업' 속출…대규모 실업 사태 오나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시행사 일감에 80~90%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금도 건설업황 악화에 매출 유지가 어려운데 정부 기관의 직접 시행이 본격화하면 기존 사업들은 손가락만 빨게 될 수밖에 없다." (영세 시행사 대표 A씨)
정부가 9·7 부동산 대책의 핵심 전략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사업 전면에 내세우는 'LH 직접 시행' 방식을 채택하면서, 기존 공공주택 사업을 통해 일감을 모색해왔던 민간 시행사들의 향후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 공공택지 매입→LH 직접시행…시행사 설 자리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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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9·7 부동산 대책에 따라 공공주택 사업이 LH 직접시행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시행사들의 일감 흉년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공공사업에 큰 비중을 뒀던 영세 시행사들의 잇단 도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정부는 내년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연평균 27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착공해 2030년까지 135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결정하면서, LH가 직접 시행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우선 수도권 공공택지 사업 주체를 민간에서 LH로 전환해 5년간 약 6만 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LH 소유의 신도시 6개 규모 비주택 용지도 주거용으로 전환해 1만5000가구 이상을 건설할 예정이다.
보편적으로 민간의 공공주택사업 참여 방식은 LH가 조성한 공공택지를 매입하여 자체적으로 주택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택지를 입찰을 통해 매입한 뒤 사업 자금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을 책임졌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택지 사업에서 민간참여사업 위주의 공급 대책을 추진하면서 공공택지 매입 방식은 폐기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사업 방식 역시 종전의 손익공유형보다는 사업비정산형(도급형)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손익공유형은 과거 민간참여 사업의 주류를 이뤘던 방식으로, LH와 민간사업자가 공동 투자자로서 사업의 성과를 함께 나누지만, 도급형에서 민간은 약정된 공사비 등 고정된 사업비만을 지급받게 돼, 실질적으로는 시공사만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상 LH의 향후 공공사업에서 시행사는 제외되는 수순으로, 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책으로 인한 시행 업계의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행사들은 향후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공공 부분을 제외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한 대형 시행사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는 공공 부분에서 사업이 상당 축소될 것으로 전망 중"이라며 "직접 시행으로 향후 사업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사업 구조에서 공공 부분이 제외된 것으로 이해한다"며 "(공공 부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 향후 사업 구조를 민간토지 개발이나 도심 재생 사업으로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안전판' 잃은 영세 시행사…"일감 90%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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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건설현장의 모습 2025.08.11 yooksa@newspim.com |
문제는 대형 시행사와 달리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영세 시행사들이다. 대형사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나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지만, 공공택지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영세 시행사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대책은 사실상 정부에서 시행사의 폐업을 독촉하는 수준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과거 주택 사업을 진행하던 영세 시행사들에게 공공사업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영역이었는데, 공공택지 매입 중단에 이은 LH 직접 시행은 업계 사업 구조 자체를 뿌리부터 흔드는 처사라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LH는 공공택지 매각 방식으로 연평균 8만5000가구 규모, 민간참여사업을 통해서는 연간 2만~3만 가구 규모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사업을 영위했던 시행사들에게는 일감 자체가 증발한 수준이다.
시행사의 공공사업 의존도가 컸던 이유는 민간 택지 사업보다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쉽고, 분양도 수월한 안전 파이프라인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공공택지는 정부(HUG, HF)가 사업성을 보증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할 수 있어 시행사는 정부 보증서만 있으면 은행에서 저리의 PF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불거진 준공 후 미분양 문제로 시행사는 PF 리스크를 키운 주범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말 기준 2019년 100조원 미만이던 금융권 PF 익스포저(대출, 증권사 보증)는 4년 만에 151조원으로 급증하면서 토지담보대출, 새마을금고대출, 전 금융권 보증 등 유사 PF 익스포저를 포함하면 231조원을 기록 중이다.
시행사의 신용도가 급락하며 필요 자기자본(에쿼티)이 20%로 상향되고, 아파트 외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등 중소형 주택 사업을 가능하게 했던 책임 준공 시스템도 유명무실해졌다. 이 같은 불황 속에서 LH의 직접 시행은 영세 시행사와 중소 건설사의 공공사업 고리를 끊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경기권 한 시행사 대표는 "LH의 공공택지 매각 중단과 직접 시행 제도 확산은 단순히 사업 물량 감소가 아니라, 업계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며 "(이미) 시행사의 일감은 80~90%가 줄었고, 중견 건설사도 5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같이 시행업을 하던 이들의 70%~80%가 망하거나 망할 예정인 사람들"이라며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냐고 토로하는 업체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2022년 기준 등록된 시행사는 무려 6만 개 이상으로 이 중 상당수가 평균 매출이 5억원 안팎인 영세업체다. 이들은 몇 년간 가속화된 미분양 증가, 공사비 상승 등의 요인으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폐업한 시행사는 모두 112개사다. 또한 신규 등록 시행사도 올해 상반기 기준 59곳에 불과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시행 업계 전체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있다.
시행사들이 폐업 위기에 이르면 실업률 증가도 우려된다. 사업이 중단되면서 건설·시행업계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한 시행사 대표는 "이미 상당수 시행사가 개점 휴업 상태"라며 "현재는 월 5억~6억씩 손해를 보면서 버티고 있지만, 연말에는 결국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며 위기에 몰린 시행사들이 그간 공공발주 사업을 통해 그나마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된 실정"이라며 "민간 사업으로만은 사업 유지가 어렵다 보니 영세 시행사들의 불황 사태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