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만 전해지던 '어수정(御水井)', 고고학적 근거 확보
동두천시 최초로 원형의 유구(遺構) 발견
[동두천=뉴스핌]신선호 기자=동두천시는 지난 5월 21일 어수경로당 이전에 따른 '어수정 터 복원사업' 계획에 따라 해당 건물을 철거하고 8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했다고 14일 밝혔다.
동두천시 생연동 612-3 일원에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옛 어수경로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는 복원사업의 첫 단계로 진행됐다. 시는 8일 '동두천 어수정 터' 발굴 현장에서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시굴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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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지역 일대 전경사진[사진=동두천시] 2025.08.14 sinnews7@newspim.com |
그 결과, 1978년 이전 팔각정의 기초부로 보이는 방형 구조물과 그 아래 원형 우물지가 확인됐다. 이는 전설로만 전해지던 '어수정(御水井)'이 실제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첫 고고학적 증거다.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를 품은 우물어수정(御水井)은 태조 이성계가 태종 이방원의 두 차례 왕자의 난 이후 왕위를 내려놓고 함흥으로 향하던 길에 잠시 들러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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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이전 어수정 사진[사진=동두천시] 2025.08.14 sinnews7@newspim.com |
이후 이 일대는 '어수동(御水洞)'으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지명과 사회단체 명칭에 '어수'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어수정은 한양과 원산을 잇는 교통로상에 위치해 관리와 상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원(院)'의 역할을 했다. 명태를 원산에서 한양까지 운송하는 데 약 3일이 걸렸으며 어수정은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여행객과 상인들이 쉬어가는 중간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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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지 전경[사진=동두천시] 2025.08.14 sinnews7@newspim.com |
사라진 우물, 복원의 시작어수정 우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쇄와 재건을 반복했다. 전쟁 후 한 독지가가 팔각정을 세워 복원했으나 1978년 우물은 다시 폐쇄되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후 1996년부터는 어수경로당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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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자문회의 장면[사진=동두천시] 2025.08.14 sinnews7@newspim.com |
2024년 12월 경로당 이전 계획이 발표되면서 시는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올해 6월 12일부터 7월 4일까지 국가유산 영향 진단을 마친 뒤 이달 초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박형덕 동두천시 시장은 "이번 발굴은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성과"라며 "정밀 발굴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어수정 터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어수정 터 발굴은 단순한 유적 확인을 넘어 동두천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해석할 계기가 됐다.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가 목을 축였다는 그 우물, 이제 시민의 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sinnews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