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지난달 자신의 아들이자 국방장관인 칼리드 빈살만(37) 왕자를 이란에 급파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 협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칼리드 장관은 살만 국왕의 열 번째 자녀이자 아홉 번째 아들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주미 사우디 대사를 지냈으며 지난 2022년 9월에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사우디 왕실 고위 인사의 이란 방문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시하며 최대 앙숙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지만, 중동 지역이 더 큰 전화(戰禍)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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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드 빈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대통령 관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만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보도에 따르면 칼리드 국방장관은 지난달 17일 이란을 방문해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만났다.
테헤란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이날 비공개 회의에는 이란 측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 등이 배석했다.
로이터는 사우디 정부와 가까운 중동 지역 소식통 2명과 이란 관리 2명 등 모두 4명을 통해 이날 회의 내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칼리드 장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장기간 지속되는 협상에 대한 인내심이 거의 없다"며 "미국 측 협상팀은 협상이 신속하게 타결되길 원할 것이며 외교적 대화의 창은 빠르게 닫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스라엘의 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그보다는 미국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또 "최근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발생한 군사적 갈등으로 이미 분열된 이 지역에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로)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칼리드 장관은 이란과 그 동맹국들이 워싱턴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간청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전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나 버락 오바마보다 더 강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칼리드 장관은 이와 함께 "사우디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잠재적 군사 행동을 위해 사우디 영토나 영공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란 측은 협상을 원하지만 일방적인 양보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은 합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트럼프가 합의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란이 핵 농축 프로그램을 희생할 의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은 서방의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적 압박을 완화하는 거래를 원한다"고 했다.
이란 측은 또 협상과 관련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할 수 없는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