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었을 땐 몰라도...사랑이 남아 있을 땐 몰라도...점점 이해 불가능한 암호로 변해가는 나의 시는 또 어땠을까?...게다가...순정 깊은 내 첫사랑의 풍경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내에겐, 한발짝 들이밀기도 불쾌한 향기, 아린 통증일 것이다. 거기다가 금기를 깨며 불타버린 내 또 다른 사랑. 그 여자와의 섹스에 대한 결벽스런 고백. 세척해도 세척되지 않을 옷을 결혼 초부터 평생을 입고 있어야 할 칙칙함. 벗어날 수 없는 감옥...아내에게도 그런 공간들이 많이 생겼다.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아내에겐 생동감과 해방감, 알 수 없는 의미들을 안겨주는.
며칠 동안의 여행, 아니 외박. 꺼질듯 희미한 미소. 꽁꽁 여민 연분홍 보따리 속 같은 마음...그리고 미칠 듯한 질주. 대낮이든 심야든. 시내도로든 어디든. 컴컴한 심야 고속도로를 시속 백오십, 백육십 킬로가 넘는 속도로 내지르는. 그것도 술을 마신 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왠지 편해진다는 정태춘이 부른 <한계령>, 그 아리하고 비장한 음악 테이프 하나만 계속 돌리며.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미친 듯 질주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나는 아찔아찔했다. 심야의 어둠, 술에 취한 질주도 위험한데, 한 손마저...아내가 저 속도로 미쳐가는 게 아닌가, 저러다가 그냥 박살나는 거 아닌가, 뜨끔뜨끔했다.
그 불타는 질주의 안쪽, 거기에 아내가 있었다.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까스로 발견한 편안감과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 아내는 속도를 더 높여나갔다.
그러던 중 숙마저 자살을 기도했다. 남편의 학대로 오랫 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숙이 약을 먹은 것이다. 그 소식을 친구 미라로부터 전화를 통해 전해 들은 아내는 울음을 가누지 못한채 부르르 떨었다. 그 시각이 밤 11시인데 아내는 곧장 옷을 갈아 입고 차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부랴부랴 달려나가는 아내의 모습에서, 다급한 짐승의 맥박 소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뒤로도 아내는 숙이 사는 진주의 집으로 더욱 자주 차를 몰았다. 진주는 나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아내가 진주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진주에는 처가도 있고 숙도 살지만 최영호도 사는 곳이다. 그의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살긴 하지만 그 단단한 울타리가 금세 부서질 수 있는 취약성을 지닌 거라고 느낀 후론 그런 것은 이미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진주로 내려갈 때마다 나의 의식은 분열되어 왔다. 숙의 집에 간다고 해도 믿음과 불신이 어우러진채 괴롭기만 했다. 최영호와 심적으로 정리를 했고 갈라섰다고 아내가 말을 했음에도 내 가슴은 이미 칼로 베여서인지 핏물이 계속 흘렀다. 아내가 진주로 내려갈 때면 이전보다 더한 통증, 이제는 내 의식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고통이 엄습하곤 했다.
자실 미수로 그친 숙은 결국 이혼을 했다. 미라와 숙과 더불어 아내에겐 또 한명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녀도 진주에 살며 독신녀라고 했다. 아내가 숙의 집에 갈 때마다 그녀도 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혼녀와 독신녀, 그리고 불안 속을 내달리는 내 아내가 그 집에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그 집에서 며칠씩 머물렀다. 계속 있는 것인지는 알 길 없지만 같이 놀고, 밤새 얘기를 나누다 보면 속이 좀 풀린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