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의 쟁점, 증거, 사실관계 등 적잖이 차이 보여...신뢰 관건
[뉴스핌=강필성 기자] 최태원 SK 회장 형제의 횡령·배임혐의 관련 항소심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공판이었다.
최태원 회장 형제가 첫 공판에서 1심의 진술을 뒤집고 SK그룹 펀드 설립에 관여했다고 인정하는가 하면 이전까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존재를 털어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진술 번복이 이어지면서 재판부의 최태원 회장 형제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고 이로 인해 매 공판마다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됐다.
과연 최태원 회장 형제의 항소심 공판은 어떤 결과를 내놓을까.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의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 측은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는 지난 1심 공판 구형보다 높아진 형량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와 함께 검찰은 최태원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게 징역 5년,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검찰의 구형이 받아들여진다면 최태원 회장측은 오히려 원심보다 더 엄중한 판결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관측도 SK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선고공판 당일까지 알 수 없고 최 회장측이 무죄를 주장하는 만큼 긍정적인 전망도 가능하다. 실제 이번 항소심 공판은 1심 당시 쟁점과 많은 차이를 보인 게 사실이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진술 번복이다.
이번 항소심 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모조리 1심 진술을 뒤집었다. 최태원 회장은 1심 내내 SK그룹 펀드의 설립과 인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해왔지만 항소심에서는 이같은 진술을 뒤집고 SK그룹 펀드 설립을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펀드 자체는 SK그룹의 전략적인 펀드 설립이었고 따라서 펀드 자금 인출 자체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부분적인 번복을 거쳤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이 태평양에서 지평지성으로 변경되면서 SK그룹 펀드가 장기적으로 준비된 전략펀드라는 입장을 뒤집었다.
최재원 부회장도 1심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지만 항소심에서는 펀드 설립을 인지했지만 인출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을 바꿨다. 아울러 자금운영을 담당한 김준홍 전 대표는 자신이 주도했다는 1심 진술을 번복, 김원홍 전 고문이 최재원 부회장 등과 투자금 조달을 위해 펀드를 설립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지난 1심에는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았던 김원홍 전 고문이 항소심에는 SK그룹 펀드자금 인출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김원홍 전 고문은 직접 김준홍 전 대표,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과 통화 내용을 최 회장 측에 보내 증거로 체택되기도 했다.
이번 항소심 공판이 세간의 예상을 수차례 뒤집었다고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심과 쟁점과 증거, 사실관계 등이 모두 뒤집어진 것이다. 지난달 중순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공판이 한달이 넘게 이어져 온 것도 이같은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같은 진술 번복이 최태원 회장 측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보다 재판부에서 진술 번복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내비치고 있다.
문용선 부장판사는 최태원 회장에게 “아직 김원홍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충고해 사실상 ‘짜고 있다’는 의심을 드러낸 바 있으며, 최태원 회장의 진술 당시에는 “거짓말로 생각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상대적으로 집중한 김준홍 전 대표의 증인신문도 최태원 회장 형제에게 불리한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됐다는 점도 약점이다. 김준홍 전 대표의 증언은 상대적으로 신뢰받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준홍 전 대표는 “최 회장 형제는 김원홍 전 고문에게 주술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증언하는가 하면 “당시에는 최 회장의 투자금 마련을 위한 투자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가 누구의 증언에 힘을 싣고 누구의 증언에 신뢰를 보이느냐가 이번 항소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증언에 대한 핵심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재판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SK그룹에서는 적어도 오는 9월까지는 가슴을 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부장판사는 항소심 기간동안 “이번 재판은 너무 어렵다”며 “9월까지는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