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망가진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 시간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주구장창 비관론만, 혹은 낙관론만 펴는 경제학자도 빛을 보는 때가 있다. 경기가 마냥 좋을 수만도, 나쁠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은 비관론자들의 주가가 높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까지 메가톤급 악재에 전 세계 경제와 시장이 흔들렸다. 선진국들이 흔들리니 이들 나라에 수출해 먹고사는 이머징 국가라고 독야청청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우울한 것도 정도가 세야 속된 표현으로 더 팔린다.
하지만 닥터 둠(Dr Doom·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의 한결된 주장을 보면 종종 의심스러워지곤 한다. 이번 비관론은 언제까지 유용한 것일까 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진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알리는 것이 균형있는 경제학자가 아닐까 싶지만 비관론자들은 비관적인 쪽만 보고 말한다는 혐의가 있다. 게다가 비관론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 그게 과연 적절한 지적이었는지도 궁금해진다.
대표적인 닥터 둠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루비니 교수는 사적으로 리서치사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RGE)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 강연 퍼레이드를 벌이며 비관론을 설파하고 있는데, 그의 RGE가 설화에 휩싸였다. 헝가리 정부로부터 헝가리 통화 폭락을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요르기 미톨치 헝가리 경제장관은 14일"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경제 분석가인 누리엘 루비니가 지난 3일자 투자 노트에서 헝가리 포린트화에 대한 숏(매도) 포지션을 취하라고 조언했다"면서 "이에 따라 투기꾼들이 루비니의 조언을 취해 포린트화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주 포린트화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14일에는 유로화 대비 7개월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수출 주도형 경제라 통화가치 하락이 반가울 법도 하지만 포린트화 급락은 가계나 기업, 심지어 정부까지도 외화 대출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라 치명적이다. 헝가리 포린트화가 보고서 이후 유로화 대비 하락한 폭은 2% 정도.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가 78.6%에 이르는 상황에서 외화부채 부담까지 가중되면 충격이 크다.
젤레나 뷰코틱 애널리스트는 그럼 3일자 보고서에서 뭐라고 썼을까. 그는 지난주 차기 중앙은행 총재가 될 것이 유력한 미톨치 경제장관이 한 발언에 주목했다. 미톨치 장관은 한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헝가리가 포린트화 강세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정책은 재앙이었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했다. 뷰코틱 애널리스트는 "이 발언은 헝가리 정부가 앞으로 더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취할 것이고 이에 따라 포린트화가 약세를 보일 것임을 의미한다"고 썼다.
미톨치 장관은 이것이 시장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3일자 RGE 보고서 때문에 투기꾼들이 포린트화 약세에 베팅을 했다"고 했다. 보고서엔 실제로 포린트화를 팔라고 쓰여 있다. 이와 함께 인도 루피화와 체코 코루나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역시 통화정책 완화와 함께 경제 펀더멘털적 상황을 볼 때 파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루비니 교수는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이력을 쌓은데다 지난 2008년 미국 주택시장이 폭락과 이로 초래될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장기적인 침체 속에서도 비관론은 대체로 통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대개 부정적이다. 몇 년 뒤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올 것이란 얘기도 가끔 하는데 이제는 뭐랄까, 비관론에도 일종의 면역이 생긴 것 같다. 다시 말해 잘 안믿긴단 얘기다. 하지만 RGE 보고서는 루비니 교수의 명성 덕에 시장에서 설득력을 갖고 있는 편이다.
실제 경제가 어렵고 우려되는 측면의 내용이라고 해도 굳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수위 조절이나 시점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 미국 경제도 서서히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태세를 보이고 있고, 유럽 경제와 관련해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그렉시트)가 큰 걱정이었던 시점은 지나 이제는 크렉시트(Crisis Exit)라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경제가 호황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루비니와 RGE는 어떤 얘기들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변변한 실탄없이 루비니를 탓하는 헝가리 정부도 안됐긴 하다.
사족일 줄 알지만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경제학자들도 그렇지만 언론들의 비판도 때와 수위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다달이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이 조금이라도 나쁘면 충격이고, 조금이라도 좋으면 장밋빛이란 보도가 나오는 일희일비식 관점은 큰 문제다. 크고 긴 맥락 속에서 봐야 할 지표나 사안들이 하루하루 다른 관점에서 보도되는 경우를 적잖이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과 함께 취재 경쟁이 심화되면서 각종 정책 전망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 비판 일색인 것도 유감이다. 대개는 아직 여물지 않은 구상에 대한 것을 보도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비판할 것이야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마냥 재만 뿌리는 식이면 문제가 아닐까 한다는 얘기다.
물론 표심을 얻으려고 선정적인 목표와 전망으로 채워놓은 공약이나 새 정부의 정책적 목표도 문제다. 지금이야 임기 중 성장률 7%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런 식의 대책없는 전망은 없어 그나마 다행인가.
그래도 "주가 3000시대 열겠다" 이런 얘기도 좀 안나오도록 했으면 좋겠다. 호황이었던 글로벌 경기의 덕을 보았던 정부 때 "주가가 좋으니까 경제도 문제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싫었지만.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