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나흘 연속 떨어지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루할 정도로 오래 지속됐던 925~930원 박스권이 막상 깨지려니 예상보다 빨리, 또 쉽게 깨진 모습.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으로 몇 번의 상승 테스트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된 영향이 크다.
역외 매도가 집중되긴 했지만 925원, 920원 지지선 이탈 과정을 살펴보면 숏(short, sell)이 집중됐다기보다는 실망한 롱(long, buy)이 처분되는 과정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롱 심리가 꺾인 것은 수출업체, 특히 중공업체의 매물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상승 테스트 때마다 네고 물량은 '올라오면 판다'고 작심이나 한 듯 쏟아져 나왔다.
환율 하락의 원인은 비단 네고 물량 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하락 요인이 널렸다.
정부가 경기회복을 공식화했고, 한국은행은 콜 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북한 문제도 평화 무드로 바뀌는 분위기이고, 이에 따라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착수 소식도 전해졌다.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며 조정 우려가 항상 따라다녔던 증시도 이제는 1800이라는 숫자를 낯설어하지 않는 모습이다.
돌발 변수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되지 않는 한 이러한 요인들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다.
(이 기사는 4일 오전 8시 7분 유료회원들께 앞서 송고된 바 있습니다.)
◆ 환율 910원대 시대 개막, 당국의 태도 주목
이제 서울 외환시장은 920이라는 숫자보다 910이라는 숫자에 정을 붙여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현 시점에서 시장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에 집중되는 것 같다. 하나는 당국의 저지선이 과연 어디인가이고, 또 하나는 역외가 달러를 지속적으로 팔지 여부다.
우선 925원, 920원 등 중요한 지지선이 깨질 때마다 당국이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910원대 환율을 일단 용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전날 917원 지지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올리는 개입보다는 그야말로 스무딩 오퍼레이션, 즉 속도조절이었다.
심기일전해서 제대로 막을 수준으로는 다수의 딜러들이 914원을 꼽고 있다. 914원이 깨지면 작년 최저치인 913.00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그 다음으로는 910원을 제시한다. 910원에 걸린 옵션 물량이 920원에 걸린 물량의 최소 3배는 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910원 붕괴는 환율의 급전직하를 의미한다는 지적이 많다.
◆ 역외 세력, 신용등급 관련 사전 정보 얻었나?
한편, 역외가 계속 달러를 팔 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지난 주말 NDF 시장에서 역외가 매도를 집중한 것은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 착수 정보를 미리 얻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전날 무디스 뉴스가 나오고 난 뒤 역외는 매도세를 오히려 멈추며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간밤 NDF 종가도 소폭 상승해 일단 역외매도세는 진정되는 모습이다.
역외매도의 원인을 무디스에서 찾을 경우 한은의 금리인상에 베팅했다는 해석은 다소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여하튼 시장 주변 여건이 하락 심리에 매우 우호적이어서 환율이 920원대로 곧바로 상승할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다만 너무 빨리 910원대로 진입한 만큼 하루 이틀 숨을 고르며 방향성을 탐색하는 과정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