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사흘만에 하락세로 반전했다.
달러/엔 환율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달러/원 환율이 하락해 100엔/원 환율은 9년 1개월만에 780원대로 떨어졌다. 일본과 경쟁하는 수출업체들에게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러나 당국의 개입은 뚜렷할 만한 게 없었다. 반면 한 박자 늦은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은 장중 계속 쏟아졌다.
수출업체들은 조만간 800원대 환율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큰 것 같다.
이들에게 800원대 환율은 곧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연말에 접어든 이상 920원대에서는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헤지하자’는 조급한 심리가 작동되고 있는 듯하다.
내일 미국의 FOMC 결과가 나오지만 달러/엔 환율이 급등하거나 대규모 개입이 있지 않는 한 추가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1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3.30원 내린 922.70원으로 마감했다. 달러/원 선물 12월물은 922.30으로 전날보다 3.50원 떨어졌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뉴욕시장에서 글로벌 달러가 반등한데 힘입어 전날보다 0.50원 오른 926.50원으로 출발했으나 네고물량 등이 나오면서 923.30원까지 밀렸다.
달러/엔 환율이 116.90엔선까지 오르는 데 힘입어 오전 10시경 926원을 테스트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수출업체의 5억달러 이상되는 네고물량 한 방에 무너져 버렸고, 이에 매수심리는 급격히 위축됐다.
이후 환율은 줄곧 925원 아래에서 움직였고, 장 막판에는 922.00원까지 저점을 낮춘 뒤 소폭 반등하며 마감했다.
달러/엔 환율이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음에도 달러/원 환율이 비교적 큰 폭 떨어지면서 100엔/원 환율은 9년 1개월만에 780원대로 진입했다. 마감시 엔/원 환율은 789.10원을 기록해 지난 1997년 11월 14일의 784.30원 이래 최저였다.
그러나 이날 뚜렷한 당국의 개입은 포착되지 않았다. 반면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은 계속 쏟아졌다. 지난 2거래일간 미처 나오지 못했던 물량들이 한 박자 늦게 쏟아져 나오는 형상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수출업체들의 경우 준비하지 않은 선물환 매도는 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개입 2~3일 후에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준(FRB) 의장의 ‘달러가치 하락’ 전망이 매도세를 부추겼다. 게다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11일 해외법인장 회의에서 환율문제를 가장 우려하며 피해 최소화 방안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출업체들의 헤지 욕구를 자극시켰다.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환율 대책이라고 해 봐야 선물환 매도가 거의 전부다. 내년도 환율 800원대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점을 고려하면 920원대에서라도 헤지를 해야겠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어영부영하다 진짜 800원대로 내려가 버리면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 남는 것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뿐이다.
이렇듯 수출업체들의 연말 네고 물량이 상당한 점을 감안하면 달러/엔 환율이 오르더라도 930원대 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수출업체들이 설사 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네고 물량을 쏟아내는 것 같다”며 “미처 팔지 못한 업체들은 마음이 다급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900원이 무너지면 매도를 포기하고 기다릴 수도 있지만 900원 위에서는 매도 욕구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시중은행 딜러도 “업체들이 너무 팔고 있다”며 “달러/엔 환율이 현 수준에서 움직인다면 내일 920원이 다시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또다른 시중 딜러는 "역외도 숏커버 이후 매도로 돌아선 것 같다"며 "당국이 걱정할 만큼 수출업체들의 달러 초과공급이 많아 일단 920원을 하향 테스트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엔/원 환율이 780원대로 떨어졌으나 엔/원 가지고 정부가 개입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FOMC에서 금리인상 얘기가 돌발하지 않는다면 시장도 숏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920원 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