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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풍운의 역사 품은 아픈 손가락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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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 일본군·미군 주둔지 아픔겪은 풍운의 땅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영구 점령' 꿈꾼 일제의 전초기지
국가공원으로 돌아오는 용산...이젠 아픔 없어야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사연없는 사람없고 사연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만 서울 용산(龍山)의 사연은 가슴속 멍울처럼 단단하다. 외세의 역사가 핏방울로 맺힌 한국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116년만의 귀환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허락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개방된다. 정부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숙소 5단지에 대한 재단장을 끝내고 다음달 1일부터 상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04년 일본군이 주둔한 이후 116년 만에 국민 누구나가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장소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중심에 자리잡은 우리땅이지만 한세기가 훌쩍 넘는 동안 허락을 받아야만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기지가 110년 세월을 넘어 돌아온다.

용산이라는 지명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에 이미 용산이라는 이름이 나올만큼 한반도에서 중요한 지리적 의미를 가진다.

최사추 등이 왕에게 "신들이 노원역·해촌·용산 등지로 나아가 산수를 살펴보니 도읍을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이 산의 형태와 물의 기세에 있어 부합하였습니다. 청하건대 주간(主幹)의 중심이 되는 대맥(大脈)에서 임좌병향(壬坐丙向·서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형을 따라 도읍을 건설하십시오."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고려사절요 권6)

고려 숙종 6년(1101년) 10월. 개경의 수명이 쇠약해져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천도론이 일었다. 물색된 장소는 개경 남쪽 한양. 한양을 남경이라고 이름 붙이고 남경개창도감이라는 궁궐건설기관까지 설립해 숙종9년 5월(1104년) 남경이궁이 완성된다.(고려사절요 권7)

궁궐의 위치는 현재 경복궁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년) 음력 9월 9일자 기사에는 '남경행궁의 영역이 좁아 그 남쪽을 경복궁 영역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점에 비춰보면 경복궁 북측, 지금의 청와대 위치로 추측되고 있다.

용산은 궁궐자리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이 고려사에도 나올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사 지리지(고려사 권56, 지, 권제10)에 따르면 용산은 양광도 광주목의 과주에 속했다.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주(州)의 용산처를 승격시켜 부원현(富原縣)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용산은 세곡의 집산지였다. 전국에서 거둬들인 쌀과 공물 등 조세가 바다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온 뒤 집결되는 장소였다.

세종실록지리지 경도 한성부에는 용산에 대해 '숭례문 밖 서남쪽 9리에 있다. 배로 실어 온 세곡을 거둬들이는 곳'으로 설명돼 있다.

물품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세곡선이 도착하면 물건을 지고 나를 인력이 필수적이다. 도성에서 9리(3.5km) 떨어진 용산에는 양반과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성 안과 달리 '먹고 살기' 위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많다 보면 사건사고는 필연적이다.

성종5년(1474년) 음력 3월25일자 조선왕조실록 기사. 세곡을 관리하는 관청의 수장인 호조판서 이극증이 용산의 들끓는 도둑들에 대한 대책을 왕에게 보고한다.

"충청좌도와 경상도의 전세를 용산강에 정박하는데, 용산은 거민(居民·거주민)이 매우 많아 세곡을 뭍에 내릴 때 무뢰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아 도둑질을 합니다. 청컨대 금후로는 조선(漕船)을 노량으로 옮겨 정박하게 하고, 금도군(禁盜軍)을 정하게 하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곡을 노린 도둑이 많으니 경찰력을 강화해 도둑을 잡고, 사람들이 덜 거주하는 노량진으로 세곡 하역장소를 옮기자는 의견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나타난 용의 모습을 닮은 용산. 2020.07.23 fair77@newspim.com

도둑도 도둑이지만, 용산은 날이 갈수록 세곡선 집하장으로 결점이 드러난다. 모래톱이 쌓여 세곡선이 정박하기 힘들게 된다. 여의도와 밤섬 등에서 보듯 한강 하류는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하천 내 모래섬이 있다.

성종 8년(1477년) 음력 11월28일. 용산포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진다. 호조에서 아뢴다. "지금 용산의 강어귀가 모래로 차서 막혀 경상도 전세의 조운이 불편하니 청컨대 내년부터 경중의 여러 관사에 바치는 전세를 두모포(豆毛浦)에 정박시켜 수송하여 들이게 하소서."

용산포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조운선 정박을 동쪽으로 옮긴 두모포(현재 서울 성동구 옥수동 동호대교 북단)로 하자는 말이다.

8년이 흐른 성종16년(1485년) 음력 4월13일에는 모래를 파내는 논의도 고려된다. 모래톱이 쌓이는 원인과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결국 '들인 공에 비해 남는 것이 적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되면서 용산의 세곡 집하장으로 위세는 약화된다.

이극증이 의논하기를 "전에는 용산강의 남변에 돌산이 수중으로 쑥 들어가 있으므로, 강물의 흐름이 이것에 부딪쳐서 수세가 북쪽으로 흘렀는데 뒤에 거민(居民)들이 돌을 떠서 사용하여 물이 격세가 없어지고 남변으로 직류해 내려가니, 이로 말미암아 북변의 물이 얕아지고 모래가 메워져 이에 이르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남변으로 쑥 들어간 산의 돌을 떠낸 곳에 큰 돌을 실어다가 보충하여 강물의 흐름을 예전과 같이 격세를 이루게 하고, 이어서 북변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내어 물길을 인도하면, 자연히 물이 북쪽으로 향하고 모래가 다시 메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정창손·윤필상·홍응·윤호가 의논하기를 "전자에 신중린이 진언하여 용산강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도록 청하였으므로, 대신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공역의 어려움으로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지금도 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툭하면 외국군대 주둔지

용산에 누적된 모래톱은 앞으로 다가올 용산의 비운을 점쳤던 것일까. 조정의 갑론을박이 펼쳐진 성종 시기에서 100여년이 흐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용산은 '왜군의 캠프'로 바뀐다.

한양 도성에서 9리(3.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강을 끼고 있어 물품 수송이 편리하다. 게다가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군대 주둔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선조26년(1593년) 음력 2월23일 전라감사 권율의 장계다. "신이 주둔한 곳은 용산과 거리가 15리도 안 되는데, 흉악한 적들이 보복할 계책으로 한강 이남의 진들을 불러 모아 합세하여 다시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이 경성에서 도망해온 사람들에 의해 여러번 발설되었습니다. 지금 용산에 진을 친 곳이 12개소라고 합니다."

용산에 진을 친 일본군은 적어도 2만명이었다. 이틀 뒤인 2월25일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의 보고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용산창 아래에 다달아 왜적을 향하여 포를 쏘았는데, 강변에 진을 친 왜병이 2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한 용산은 현재 미군기지가 위치한 장소는 아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원효로 일대,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갈월동 부근에 주둔했다.(용산기지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김천수, 발간 용산구청, 2017년 12월)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부터 러일전쟁 후 일본이 건설하고 미군까지 이어진 현재 용산기지가 위치한 수선전도에 표시된 둔지방의 모습.2020.07.23 fair77@newspim.com

현재 미군기지가 들어선 '용산기지'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시대 용산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둔지방 또는 둔지미로 불렸다.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조선시대 용산은 현재 마포구 일부를 아우르는 터였다. 용산방으로 분류됐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서부 9방 중의 하나다. 용산방은 도성 서쪽 무악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약현과 만리현을 지나서 서쪽 한강변을 향하여 꾸불꾸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틀어 나아간 것 같고, 한강변 용산구와 마포구 경계에서는 용이 머리를 든 것 같아 용처럼 생긴 모양이라 용산이라 부른 데서 방 이름이 유래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마포동, 이촌동, 토정동 일대와 공덕동, 신공덕동, 염리동, 대현동, 서계동, 청파 1·2·3가, 원효로 1·2·3·4가, 문배동, 용문동, 신계동,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도화동, 효창동, 도원동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일전쟁 때 만리창에 상륙한 일본군의 모습. 용산 일대에는 조선말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한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미군기지가 들어선 곳은 용산방이 아니라 둔지방이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남부 11방 중 하나다. 용산방과는 행정구역부터 다른 셈이다. 중앙에 둔지산이 자리 잡은데서 유래했다. 둔지산에는 둔전을 일구면서 이곳을 수비하는 둔병이 있어서 둔지뫼・둔지매・둔지미, 한자로 둔지산으로 불렀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이태원동·동빙고동 일대와 후암동·동자동·서빙고동·용산동4가 일부에 해당한다.

용산기지에 외국 군대가 처음 진을 친 것은 임오군란(고종13년·1882년) 때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은 급여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구식군대인 무위영과 장어영 군졸들은 13달간 봉급미를 받지 못하는 등 불만이 높았다. 그러던 중 겨우 한달치 급여를 받게 됐지만 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모래가 절반 넘게 섞여 있었다. 격분한 구식 군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사달을 벌인 군졸들은 당시 권력에서 물러나 있던 대원군을 찾아 애원했다.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망갔고, 대원군이 다시 전권을 잡았지만 명성황후 일파의 청원을 받아들인 청나라가 군대를 조선에 파견, 대원군을 중국 텐진으로 납치했다.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이 둔지미다. 이후 용산기지 풍운의 역사가 시작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러일전쟁 이후 용산 일대에 새로 조성된 일본군 군영지를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전경사진. <자료=서울역사박물관>.2020.07.23 fair77@newspim.com

◆지금 용산은 '그 용산'이 아니다

1904년 러일전쟁은 조선왕조의 몰락이 본격화한 계기다. 누구도 이길수 없을 것이라던 러시아와 전쟁을 일본은 승리했다.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열강들에게 인정받은 일본은 둔지미 땅에 일본군 주둔지를 세운다.

일본군은 '조선 영구 주둔'을 위해 도시지역과 철도 중심지 성격을 가진 용산과 평양, 의주 세 곳을 군용지로 확정한다. 1904년 8월15일 한일의정서 제4조에 의거해 용산에서만 991만7355㎡(300만평)에 대한 토지수용을 조선 정부에 일방 통고한다.(용산 둔지미의 공간적 역사와 삶의 지속, 오문선, 향토서울 87호, 2014년 6월)

1905년 7월 26일 본격 군사기지 공사가 이뤄진다. 병력과 군수품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06년 6월 서울역 앞에서 동자동, 갈월동, 남영동을 거쳐 용산역을 지나 한강으로 통하는 대로를 완성한다. 현재 용산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대륙침략로였다. 일제의 용산기지 공사는 1913년 11월 각종 건물들이 완공되면서 끝난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강제 지주를 당하며 삶의 터전을 잃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이 제작한 서울 용산일대의 지도인 용산시가도. 일본군 병영과 대륙침탈을 위해 확장한 철도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둔지미 일대가 용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이 과정에서 비롯된다.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둔지미 일대를 '신용산'으로 불렀는데, 나중에 '신'자가 빠지면서 일대가 '용산'으로 둔갑했다.

해방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여전히 군사기지였다. 1945년 9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며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다. 이후 1949년 7월까지 미군은 군사고문단 482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이 다시 한국에 투입됐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기지에 정식으로 창설됐다.

미군기지는 2003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를 포함한 미군기지를 모두 평택, 오산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다. 2005년 국가공원 조성을 발표한 이후 최근 반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5단지 개방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공원모습. 2020.07.21 mironj19@newspim.com

러일전쟁 이후 '영구적 지배'를 꿈꾸며 군 주둔지를 만들었던 일본의 야욕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일본에 이어 눌러앉은 미군기지도 이제 공원으로 탈바꿈해 2029년을 목표로 한국인의 품으로 돌아온다.

왜군과 청나라 군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받은 상처만큼 용산땅도 깊은 생채기를 안고 있다. 이제는 용산의 아픔이 역사 속 기억 너머로 사라져야 할 때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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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버스킹 축제' 17일 오후 1시 한강공원서 개최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 DAY OFF SEOUL'이 오는 17일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모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사진=감엔터테인먼트] 올해 축제는 '한강 위에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가는 청년 문화 축제'를 주제로 마련된다. 음악과 피크닉, 한강, 가을을 결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 참여와 청년 예술가 발굴을 함께 꾀한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과 만나는 무대를,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축제의 중심은 청년 음악가들의 버스킹 무대다.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히든스테이지' 출신의 김은찬밴드,신직선,윤태경,윤준,채수빈,심각한 개구리, 채비(Che!vee), 혼즈(Hon'z) 등 10팀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히든스테이지' 대상 심각한 개구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특히 지난 7일 열린 '히든스테이지'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심각한 개구리를 비롯해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등 수상자들도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경연 무대에서 실력을 겨룬 청년 음악가들이 이번에는 한강 야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더해 특별 초청 무대도 마련된다.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재즈밴드 '김루꾸밴드'와 국악·비보이·아크로바틱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팀 '라스트릿크루',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볼거리를 더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부터 재즈와 퍼포먼스, 비트박스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사진 위쪽부터 라스트릿크루, 김루꾸밴드,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시민도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참가 희망자는 축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 가능하다. 신청자의 자기소개와 활동 경력, 희망 공연곡과 장르, 공연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참가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무대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시민에게도 직접 무대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대 밖에서는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해 시향한 뒤 원하는 향료를 더해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 수 있다. 여러 향을 직접 맡아보고 취향에 맞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강 포토 스테이션'에서는 축제 현장의 즐거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 사진 인화 부스 '한강로 사진관'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 축제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한강 포토 스테이션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음악과 한강의 풍경,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엽서에 적어 남기는 참여형 아카이브 프로그램 '한강 사운드 엽서'도 준비된다. 공연 관람에 더해 향수 제작과 사진, 엽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최 측은 "청년 음악가들이 시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들도 공연과 체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가을 한강에서 음악과 휴식을 함께 즐기는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2026-10-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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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도시 선전 미리 가보니] 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뒷자리에 앉아 보니 앞쪽 운전석과 조수석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가 혼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자동차는 이리저리 복잡한 도로를 잘도 질주한다. 교차로 신호대기 앞에서는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바꿔야 할 때는 미리 방향을 틀었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듯 운전대가 저절로 돌아가는 모습은 공상과학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10월 9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 난유 거리에서 체험한 바이두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萝卜快跑)'. 선전 난산구에서는 로봇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이미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복잡한 시내 도로를 종횡무진 누빈다. 운행 테스트가 아니라 완전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혼자 시내를 다니며 택시 영업을 하는 모습은 선전에서 더이상 낯설지 않다. 차량 안의 인공지능(AI) 비서는 사람 운전기사보다 친절한 목소리로 안전한 여행을 돕고 탑승객과 날씨 같은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소지품을 챙기라는 당부까지, AI 비서는 승객을 챙기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 호출부터… 인터넷 택시와 다를 바 없어 로보택시를 부르고 이용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스마트폰에서 중국판 메신저 위챗을 열고 화면을 아래로 쓸어내리자 미니프로그램 형태로 뤄보콰이파오가 나타났다. 이를 클릭하자 일반 차량 호출 플랫폼과 다를 바 없는 화면이 열렸다. 목적지를 선전만 인근 인재공원 옆 식당가로 입력했다. 약 4㎞ 거리로, 예상 이동 시간은 10여 분이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에서 운행중인 바이두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 사진= 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뤄보콰이파오 로보택시는 호출 후 약 3분 만에 도착했다. 일반 인터넷 차량 호출 서비스와 비교해도 대기 시간이 특별히 길지 않았다. 차량 뒷문 쪽에 부착된 버튼에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 네 개를 입력하자 뒷문이 열렸다. 차에 오른 뒤 AI 안내 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매고 왼쪽 팔걸이에 설치된 작은 액정 화면을 터치하자 차량이 출발했다. 호출과 승차 확인, 출발 등 운행 전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차량 내 AI 비서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됐다. 1년여 전 베이징 이좡 뉴타운에서 뤄보콰이파오의 완전 무인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에는 별도 앱을 설치한 뒤 하루 정도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중국 현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특히 여권으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이용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이제는 위챗의 미니프로그램을 통해 차량을 호출할 수 있어 절차가 훨씬 간편해졌다. 일반 차량 호출 서비스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승하차 지점을 정확하게 지정해야 한다는 점 정도였다. 로보택시가 승객을 태우고 내릴 장소를 명확히 설정해야 원활한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전대는 스스로 움직이고, 급제동도 거의 없어 차량이 도로에 진입하자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시내 주행 속도는 대체로 시속 40~50㎞ 수준을 유지했다. 교차로에 접근하면 미리 속도를 낮췄고, 차선을 바꾸거나 다른 차량의 움직임에 대응할 때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차선 변경이었다. 앞쪽 교차로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리 여유를 두고 좌우와 전후의 교통 흐름을 살피면서 옆 차선으로 안전하게 진입했다. 끼어드는 차량이 있거나 주행 경로를 바꿔야 할 때도 급격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바이두의 로보택시 뤄보콰이파오. 사진=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에서는 운전자의 판단이나 운전 습관에 따라 가속과 감속이 거칠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날 이용한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 로보택시는 속도를 줄이고 높이는 과정이 매우 부드러웠다. 운전석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승차감이 안정적이었다.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인간 운전자보다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로 상황과 날씨, 차량의 센서 및 인식 능력에 따라 주행 성능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 선전의 도심 도로에서 경험한 로보택시는 복잡한 교통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인상을 줬다. 차량 내부에는 승객 편의를 위한 다양한 기능이 갖춰져 있다. 왼쪽 팔걸이의 작은 액정 화면은 음악을 고르거나 차량 내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일종의 소형 컴퓨터였다. 승객의 불안감을 달래듯 AI 비서는 "겁내지 마세요", "안심하세요", "심호흡하면 도움 돼요"라고 말한다. 첨단 기술이 사람 없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승객의 심리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4㎞에 11위안…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무인택시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차량은 남은 거리를 안내했다. 약 400m를 앞두고 AI 비서가 소지품을 잘 챙겨 내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도착 후 요금 화면에는 약 4㎞ 이동에 11위안(약 2200원)이 표시됐다. 로보택시 요금은 일반 인터넷 차량 호출 서비스보다 저렴하고, 전통적인 택시에 비해서는 훨씬 싸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선전의 시내 도로를 질주하는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 무인 로보택시. 사진=뉴스핌 통신사.   2026.10.15 chk@newspim.com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를 듣고 오른쪽 문 옆 버튼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뒤에도 차량은 한동안 출발하지 않았다. 주변 상황을 살피며 안전을 확인한 뒤 조용히 다음 행선지를 향해 멀어져 갔다. 로보택시는 더 이상 기술 박람회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형 자동차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호출하고, 뒷좌석에 앉아 목적지까지 이동한 뒤 요금을 결제하는 일련의 과정은 일반 택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운전석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중국의 첨단 기술 도시 선전에서는 로보택시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러 기업이 선전의 다양한 구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체험한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는 난산구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인근 바오안구에서는 샤오마즈싱(小马智行·포니AI)의 자율주행차가 운행된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여러 도시에서 로보택시 시범 운행과 상용화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선전은 전기차와 배터리, 드론, 통신, 인공지능 기업이 집적된 도시답게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생활에 접목하는 데 적극적이다. 선전의 로보택시는 올초만해도 1200대 정도였으나 6월 기준 최대 2000대 까지 증가했다. 혁신도시 선전은 불과 4년 뒤인 2030년까지 자율주행 로보택시 운행 차량을 1만 대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운전자 없이 소프트웨어와 스마트 센서, AI의 결합만으로 도로를 달리는 무인 자동차가 도시 교통의 한 축이자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는 얘기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2026-10-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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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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