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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풍운의 역사 품은 아픈 손가락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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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 일본군·미군 주둔지 아픔겪은 풍운의 땅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영구 점령' 꿈꾼 일제의 전초기지
국가공원으로 돌아오는 용산...이젠 아픔 없어야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사연없는 사람없고 사연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만 서울 용산(龍山)의 사연은 가슴속 멍울처럼 단단하다. 외세의 역사가 핏방울로 맺힌 한국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116년만의 귀환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허락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개방된다. 정부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숙소 5단지에 대한 재단장을 끝내고 다음달 1일부터 상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04년 일본군이 주둔한 이후 116년 만에 국민 누구나가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장소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중심에 자리잡은 우리땅이지만 한세기가 훌쩍 넘는 동안 허락을 받아야만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기지가 110년 세월을 넘어 돌아온다.

용산이라는 지명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에 이미 용산이라는 이름이 나올만큼 한반도에서 중요한 지리적 의미를 가진다.

최사추 등이 왕에게 "신들이 노원역·해촌·용산 등지로 나아가 산수를 살펴보니 도읍을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이 산의 형태와 물의 기세에 있어 부합하였습니다. 청하건대 주간(主幹)의 중심이 되는 대맥(大脈)에서 임좌병향(壬坐丙向·서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형을 따라 도읍을 건설하십시오."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고려사절요 권6)

고려 숙종 6년(1101년) 10월. 개경의 수명이 쇠약해져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천도론이 일었다. 물색된 장소는 개경 남쪽 한양. 한양을 남경이라고 이름 붙이고 남경개창도감이라는 궁궐건설기관까지 설립해 숙종9년 5월(1104년) 남경이궁이 완성된다.(고려사절요 권7)

궁궐의 위치는 현재 경복궁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년) 음력 9월 9일자 기사에는 '남경행궁의 영역이 좁아 그 남쪽을 경복궁 영역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점에 비춰보면 경복궁 북측, 지금의 청와대 위치로 추측되고 있다.

용산은 궁궐자리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이 고려사에도 나올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사 지리지(고려사 권56, 지, 권제10)에 따르면 용산은 양광도 광주목의 과주에 속했다.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주(州)의 용산처를 승격시켜 부원현(富原縣)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용산은 세곡의 집산지였다. 전국에서 거둬들인 쌀과 공물 등 조세가 바다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온 뒤 집결되는 장소였다.

세종실록지리지 경도 한성부에는 용산에 대해 '숭례문 밖 서남쪽 9리에 있다. 배로 실어 온 세곡을 거둬들이는 곳'으로 설명돼 있다.

물품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세곡선이 도착하면 물건을 지고 나를 인력이 필수적이다. 도성에서 9리(3.5km) 떨어진 용산에는 양반과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성 안과 달리 '먹고 살기' 위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많다 보면 사건사고는 필연적이다.

성종5년(1474년) 음력 3월25일자 조선왕조실록 기사. 세곡을 관리하는 관청의 수장인 호조판서 이극증이 용산의 들끓는 도둑들에 대한 대책을 왕에게 보고한다.

"충청좌도와 경상도의 전세를 용산강에 정박하는데, 용산은 거민(居民·거주민)이 매우 많아 세곡을 뭍에 내릴 때 무뢰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아 도둑질을 합니다. 청컨대 금후로는 조선(漕船)을 노량으로 옮겨 정박하게 하고, 금도군(禁盜軍)을 정하게 하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곡을 노린 도둑이 많으니 경찰력을 강화해 도둑을 잡고, 사람들이 덜 거주하는 노량진으로 세곡 하역장소를 옮기자는 의견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나타난 용의 모습을 닮은 용산. 2020.07.23 fair77@newspim.com

도둑도 도둑이지만, 용산은 날이 갈수록 세곡선 집하장으로 결점이 드러난다. 모래톱이 쌓여 세곡선이 정박하기 힘들게 된다. 여의도와 밤섬 등에서 보듯 한강 하류는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하천 내 모래섬이 있다.

성종 8년(1477년) 음력 11월28일. 용산포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진다. 호조에서 아뢴다. "지금 용산의 강어귀가 모래로 차서 막혀 경상도 전세의 조운이 불편하니 청컨대 내년부터 경중의 여러 관사에 바치는 전세를 두모포(豆毛浦)에 정박시켜 수송하여 들이게 하소서."

용산포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조운선 정박을 동쪽으로 옮긴 두모포(현재 서울 성동구 옥수동 동호대교 북단)로 하자는 말이다.

8년이 흐른 성종16년(1485년) 음력 4월13일에는 모래를 파내는 논의도 고려된다. 모래톱이 쌓이는 원인과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결국 '들인 공에 비해 남는 것이 적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되면서 용산의 세곡 집하장으로 위세는 약화된다.

이극증이 의논하기를 "전에는 용산강의 남변에 돌산이 수중으로 쑥 들어가 있으므로, 강물의 흐름이 이것에 부딪쳐서 수세가 북쪽으로 흘렀는데 뒤에 거민(居民)들이 돌을 떠서 사용하여 물이 격세가 없어지고 남변으로 직류해 내려가니, 이로 말미암아 북변의 물이 얕아지고 모래가 메워져 이에 이르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남변으로 쑥 들어간 산의 돌을 떠낸 곳에 큰 돌을 실어다가 보충하여 강물의 흐름을 예전과 같이 격세를 이루게 하고, 이어서 북변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내어 물길을 인도하면, 자연히 물이 북쪽으로 향하고 모래가 다시 메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정창손·윤필상·홍응·윤호가 의논하기를 "전자에 신중린이 진언하여 용산강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도록 청하였으므로, 대신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공역의 어려움으로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지금도 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툭하면 외국군대 주둔지

용산에 누적된 모래톱은 앞으로 다가올 용산의 비운을 점쳤던 것일까. 조정의 갑론을박이 펼쳐진 성종 시기에서 100여년이 흐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용산은 '왜군의 캠프'로 바뀐다.

한양 도성에서 9리(3.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강을 끼고 있어 물품 수송이 편리하다. 게다가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군대 주둔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선조26년(1593년) 음력 2월23일 전라감사 권율의 장계다. "신이 주둔한 곳은 용산과 거리가 15리도 안 되는데, 흉악한 적들이 보복할 계책으로 한강 이남의 진들을 불러 모아 합세하여 다시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이 경성에서 도망해온 사람들에 의해 여러번 발설되었습니다. 지금 용산에 진을 친 곳이 12개소라고 합니다."

용산에 진을 친 일본군은 적어도 2만명이었다. 이틀 뒤인 2월25일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의 보고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용산창 아래에 다달아 왜적을 향하여 포를 쏘았는데, 강변에 진을 친 왜병이 2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한 용산은 현재 미군기지가 위치한 장소는 아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원효로 일대,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갈월동 부근에 주둔했다.(용산기지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김천수, 발간 용산구청, 2017년 12월)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부터 러일전쟁 후 일본이 건설하고 미군까지 이어진 현재 용산기지가 위치한 수선전도에 표시된 둔지방의 모습.2020.07.23 fair77@newspim.com

현재 미군기지가 들어선 '용산기지'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시대 용산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둔지방 또는 둔지미로 불렸다.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조선시대 용산은 현재 마포구 일부를 아우르는 터였다. 용산방으로 분류됐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서부 9방 중의 하나다. 용산방은 도성 서쪽 무악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약현과 만리현을 지나서 서쪽 한강변을 향하여 꾸불꾸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틀어 나아간 것 같고, 한강변 용산구와 마포구 경계에서는 용이 머리를 든 것 같아 용처럼 생긴 모양이라 용산이라 부른 데서 방 이름이 유래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마포동, 이촌동, 토정동 일대와 공덕동, 신공덕동, 염리동, 대현동, 서계동, 청파 1·2·3가, 원효로 1·2·3·4가, 문배동, 용문동, 신계동,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도화동, 효창동, 도원동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일전쟁 때 만리창에 상륙한 일본군의 모습. 용산 일대에는 조선말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한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미군기지가 들어선 곳은 용산방이 아니라 둔지방이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남부 11방 중 하나다. 용산방과는 행정구역부터 다른 셈이다. 중앙에 둔지산이 자리 잡은데서 유래했다. 둔지산에는 둔전을 일구면서 이곳을 수비하는 둔병이 있어서 둔지뫼・둔지매・둔지미, 한자로 둔지산으로 불렀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이태원동·동빙고동 일대와 후암동·동자동·서빙고동·용산동4가 일부에 해당한다.

용산기지에 외국 군대가 처음 진을 친 것은 임오군란(고종13년·1882년) 때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은 급여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구식군대인 무위영과 장어영 군졸들은 13달간 봉급미를 받지 못하는 등 불만이 높았다. 그러던 중 겨우 한달치 급여를 받게 됐지만 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모래가 절반 넘게 섞여 있었다. 격분한 구식 군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사달을 벌인 군졸들은 당시 권력에서 물러나 있던 대원군을 찾아 애원했다.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망갔고, 대원군이 다시 전권을 잡았지만 명성황후 일파의 청원을 받아들인 청나라가 군대를 조선에 파견, 대원군을 중국 텐진으로 납치했다.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이 둔지미다. 이후 용산기지 풍운의 역사가 시작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러일전쟁 이후 용산 일대에 새로 조성된 일본군 군영지를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전경사진. <자료=서울역사박물관>.2020.07.23 fair77@newspim.com

◆지금 용산은 '그 용산'이 아니다

1904년 러일전쟁은 조선왕조의 몰락이 본격화한 계기다. 누구도 이길수 없을 것이라던 러시아와 전쟁을 일본은 승리했다.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열강들에게 인정받은 일본은 둔지미 땅에 일본군 주둔지를 세운다.

일본군은 '조선 영구 주둔'을 위해 도시지역과 철도 중심지 성격을 가진 용산과 평양, 의주 세 곳을 군용지로 확정한다. 1904년 8월15일 한일의정서 제4조에 의거해 용산에서만 991만7355㎡(300만평)에 대한 토지수용을 조선 정부에 일방 통고한다.(용산 둔지미의 공간적 역사와 삶의 지속, 오문선, 향토서울 87호, 2014년 6월)

1905년 7월 26일 본격 군사기지 공사가 이뤄진다. 병력과 군수품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06년 6월 서울역 앞에서 동자동, 갈월동, 남영동을 거쳐 용산역을 지나 한강으로 통하는 대로를 완성한다. 현재 용산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대륙침략로였다. 일제의 용산기지 공사는 1913년 11월 각종 건물들이 완공되면서 끝난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강제 지주를 당하며 삶의 터전을 잃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이 제작한 서울 용산일대의 지도인 용산시가도. 일본군 병영과 대륙침탈을 위해 확장한 철도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둔지미 일대가 용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이 과정에서 비롯된다.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둔지미 일대를 '신용산'으로 불렀는데, 나중에 '신'자가 빠지면서 일대가 '용산'으로 둔갑했다.

해방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여전히 군사기지였다. 1945년 9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며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다. 이후 1949년 7월까지 미군은 군사고문단 482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이 다시 한국에 투입됐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기지에 정식으로 창설됐다.

미군기지는 2003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를 포함한 미군기지를 모두 평택, 오산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다. 2005년 국가공원 조성을 발표한 이후 최근 반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5단지 개방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공원모습. 2020.07.21 mironj19@newspim.com

러일전쟁 이후 '영구적 지배'를 꿈꾸며 군 주둔지를 만들었던 일본의 야욕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일본에 이어 눌러앉은 미군기지도 이제 공원으로 탈바꿈해 2029년을 목표로 한국인의 품으로 돌아온다.

왜군과 청나라 군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받은 상처만큼 용산땅도 깊은 생채기를 안고 있다. 이제는 용산의 아픔이 역사 속 기억 너머로 사라져야 할 때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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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팔면 다음 날 입금된다고? [서울=뉴스핌] 이정아 기자 = 국내 증권시장의 주식 결제주기가 50여 년 만에 단축된다. 현재 주식 매매 후 2영업일이 걸리는 결제 기간을 1영업일로 줄여 투자자가 주식을 판 다음 날 매도대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는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은 ▲청산결제 인프라 개편 ▲금융회사와 외국인 투자자의 이행 기반 마련 ▲결제주기 단축 전 투자자 편익 확대 등 8대 분야 22개 과제로 구성됐다. 관계기관은 2027년 10월까지 시장 인프라를 개편하고 최소 6개월간 통합 테스트를 거쳐 최종 시행 시점을 확정할 계획이다. ◆ 월요일 주식 팔면 화요일 입금…반대매매도 하루 빨라져 결제주기가 단축되면 개인투자자가 가장 먼저 체감하는 변화는 주식 매도대금의 인출 시점이다. 현재 국내 증시에서는 주식을 매도한 뒤 2영업일이 지나야 매도대금을 인출할 수 있다. 월요일에 주식을 팔았다면 수요일에 현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T+1 체계로 전환하면 월요일 매도한 주식의 대금을 화요일에 인출할 수 있다.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 방식은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실제 주식과 현금이 오가는 결제 시점이 하루 앞당겨진다. 투자자는 주식 매도대금을 더 빨리 확보해 생활자금이나 다른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주식을 매수하는 투자자는 결제대금을 하루 일찍 준비해야 한다. 특히 보유 현금보다 많은 주식을 매수하는 미수거래 투자자는 자금 납부기한이 기존 T+2일에서 T+1일로 단축된다. 미수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했을 때 증권사가 보유 주식을 강제로 처분하는 반대매매 시점도 T+3일에서 T+2일로 앞당겨진다. 매수대금 확보에 주어지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미수거래 투자자의 자금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착오로 체결한 주식 매매를 정정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하루 줄어든다. 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은 결제주기 변경에 맞춰 착오매매 정정과 대규모 착오구제 제도, 증권거래세 징수 절차 등을 정비할 예정이다. ◆ 11월부터 매도대금담보대출 금리 인하…연 150억 절감 기대 결제주기 단축에 앞서 개인투자자의 자금 조달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시행한다. 한국증권금융은 증권사에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고 증권사는 이를 활용해 중·저금리 매도대금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한다. 매도대금담보대출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도한 뒤 실제 결제일이 도래하기 전에 매도대금을 미리 빌려 쓰는 상품이다. 현재 증권사들은 매도대금담보대출에 연 7.5~10% 수준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대출 기간이 1~2일로 짧고 거래소가 결제이행을 보증해 상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금리가 높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관계기관은 대출금리를 연 5% 중·후반 수준으로 낮출 경우 투자자당 이자비용이 약 25%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해당 상품을 취급하는 증권사가 12곳으로 확대되면 전체 투자자의 연간 이자비용은 약 15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뉴스핌] 김현우 기자 = 코스피가 전장 종가보다 92.97포인트(1.62%) 내린 5637.77으로, 코스닥은 전장 종가보다 92.97포인트(1.62%) 내린 5637.77로 거래가 시작된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9시경 기준 1333.70원에 거래되고 있다. 2026.11.02 khwphoto@newspim.com 미래에셋증권은 2일부터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키움증권은 오는 20일 출시할 예정이다. 이후 참여를 희망하는 증권사로 취급 대상을 순차적으로 확대한다. 구체적인 대출금리는 각 증권사가 출시 시점에 안내한다.. ◆ "2027년 10월 인프라 개편 완료…2028년 전환 목표" 결제주기 단축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우선 올해 12월까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업권별 업무표준안과 이행점검표를 마련한다.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결제체계에 맞춰 전산시스템과 업무 절차를 개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2027년 1분기에는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와 전문 사업관리조직(PMO)을 출범시킨다. 이를 통해 금융회사별 시스템 개발과 테스트 일정, 제도 개선 진행 상황 등을 통합 관리할 예정이다.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등 증권유관기관은 2027년 10월까지 청산결제 인프라 개편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국내외 금융회사와 외국인 투자자는 2028년 1분기까지 전산개발과 업무체계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이후 최소 6개월 이상의 통합 테스트를 거쳐 2028년 중 T+1 결제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최종 시행일은 확정하지 않았다. 금융당국과 국내외 금융회사, 외국인 투자자의 준비 상황과 아시아 주요국의 전환 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다. 관계기관은 오는 12월 18일까지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추가 개선 과제를 발굴할 방침이다. 이번 개편은 1972년 T+2 결제제도를 도입한 이후 50여 년 만에 추진하는 결제주기 체계 변경이다. 관계기관은 결제주기 단축으로 미결제 상태에 놓이는 거래 규모와 위험 노출 기간이 줄어들고 증권사의 거래증거금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결제업무의 자동화와 표준화를 통해 국내 증권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plum@newspim.com 2026-11-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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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현범, 징벌 2회 받고도 가석방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수감 중 외부 물품을 반입해 두 차례 징벌 처분을 받고도 가석방된 사실이 확인됐다. 법무부 지침상 징벌 기록이 남아 있는 수형자는 일반 수형자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가석방 심사를 받는다. 과거 가석방 심사 회의록에서는 같은 조항 위반 등으로 징벌을 받은 수형자가 적격 안건에 올랐다가 부적격 처리된 사례가 확인돼 심사 기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음료·간식 반입에 금치…심사 땐 '징벌 기록' 그대로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수감 중 외부 물품을 반입해 두 차례 징벌 처분을 받고도 가석방된 사실이 확인됐다. 조 회장 모습. [사진=뉴스핌 DB] 2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 회장은 수용 생활 중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14조 제15호 위반으로 징벌 처분을 받았다. 해당 조항은 '허가 없이 물품을 지니거나 반입·제작·변조·교환 또는 주고받는 행위'를 금지한다. 법무부는 징벌의 구체적인 시기와 종류 등은 개인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 7월 22일 열린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 같은 달 30일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출소했다. 형기 만료일(9월 5일)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조 회장은 지난해 5월 법정구속된 이후 접견 과정에서 외부에서 들여온 음료를 마시다 적발돼 지난해 말 금치 처분을 받았다. 올해 3월 초에는 간식을 먹다 다시 적발돼 두 번째 금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모두 금치 기간은 9일 이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치는 수용자를 징벌실에 가두는 처분으로, 형집행법상 가장 무거운 징벌이다. 법무부 예규인 '가석방 업무지침' 제10조는 징벌 처분 후 시행규칙이 정한 실효기간이 가석방 기준일까지 지나지 않은 수형자를 '제한사범'으로 분류한다. 징벌 기록이 아직 효력을 잃지 않은 수형자라는 뜻이다. 형집행법 시행규칙상 9일 이하 금치의 실효기간은 1년이다. 징벌을 받고 1년이 지나야 기록이 효력을 잃는다. 지난해 말과 올해 3월 초에 받은 징벌이라면 가석방 기준일인 7월 30일에는 두 건 모두 이 기간이 지나지 않은 셈이다. 두 번째 징벌은 가석방 심사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법무부는 "제한사범은 일반사범보다 강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면서도 조 회장의 제한사범 분류 여부와 실효기간 경과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 2021년엔 '금치 9일' 한 번에도 부적격…"형평 어긋나"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과거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중앙통제실을 방문해 업무 실태를 점검하던 모습. [사진=법무부 제공] 과거 심사 사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가 공개한 2021년 9월 정기 가석방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위원회는 '미허가 물품 소지' 등으로 금치 9일 처분을 받은 수형자를 적격 안건에서 부적격으로 돌렸다. 한 위원은 "최근 징벌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기관 내 질서유지 등을 위해서라도 부적격 처리해야 한다"고 했고, 나머지 위원 전원이 동의했다. 같은 해 3월 회의에서는 징벌위원회 개최를 앞둔 수형자가 남은 형기가 한 달도 안 되는데도 부적격 결정을 받았다. 즉, 조 회장이 위반한 것과 같은 조항 위반 등으로 금치 9일 처분을 한 차례 받은 수형자가 가석방 적격 안건에서 부적격으로 바뀐 것이다. 징벌위원회 개최를 앞둔 수형자 역시 실제 징벌 처분이 내려지기 전이었고 남은 형기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 조 회장이 두 차례 징벌 처분을 받고도 가석방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법조계에서는 위법은 아니더라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민 법무법인 베테랑 변호사는 "금치 처분 2회만 놓고 보면 이례적"이라며 "제한사범이라도 심사 대상은 될 수 있어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부당하다고 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징벌 이력이 있는 제한사범도 예비심사에는 오르지만 보통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부결된다"며 "징벌이 실효되지 않았다면 부결되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이 형평에 맞다"고 했다. 이에 법무부는 "징벌의 실효 여부만으로 가석방 허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범죄 내용, 형 집행 경과, 피해 회복 여부, 출소 후 생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명했다. 조 회장은 형기의 약 95%를 채운 상태였다. ◆ 가석방 30% 늘렸지만…'엄격 심사' 확인할 길 없어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모습. [사진=뉴스핌DB] 조 회장의 가석방은 정부가 교정시설 과밀 해소를 위해 가석방 규모를 크게 늘린 시기에 이뤄졌다. 법무부는 '2026년 가석방 확대안'을 통해 월평균 가석방 인원을 지난해 1032명에서 올해 1340명 수준으로 30% 늘리기로 했다. 지난 6월에는 1627명이 가석방 적격 판정을 받아 최근 3년 사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월평균 가석방 인원(1299명)은 2020년(656명)의 두 배에 육박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징벌 기록이 남은 채 가석방된 수형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하지 않고 있다. 박 의원실이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가석방 적격 결정자 가운데 징벌 실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제한사범 인원을 요구하자, 법무부는 "별도로 작성·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 회장과 비슷한 조건에서 가석방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 박 의원은 "교정시설 과밀화 해소를 이유로 가석방 규모를 확대하면서 심사 기준까지 사실상 완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가석방은 수형자의 교정 성적과 재범 위험성 등을 엄격하게 따져 결정해야 하는 제도이지, 교정시설의 수용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징벌 기록이 남아 있는 수형자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가석방 심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법무부는 가석방 확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교정시설 과밀화의 원인을 진단하고 시설 확충과 교정 인력 개선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 회장은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쓰거나 회삿돈으로 개인 차량 리스비를 내는 등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2023년 3월 구속기소됐다. 같은 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지난해 5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됐고, 올해 5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검찰이 기소한 횡령·배임 규모는 200억원대였지만 법원이 최종 인정한 금액은 약 20억원이다. yek105@newspim.com 2026-11-0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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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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