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나주시는 21일 금성산에서 황자화통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 황자화통은 1377년 또는 1437년 제작으로 추정했다.
- 국내 최고(最古)급 화약무기로 보물급 가치가 주목받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주=뉴스핌] 조은정 기자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금성산에서 국내 현존 최고(最古) 화약무기로 평가받는 '황자화통(黃字火筒)'이 발견돼 우리나라 화기 발달사를 새롭게 조명할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나주시는 금성산에서 출토된 소형 화약무기 황자화통에 대한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의 조사·분석 결과가 공개됐다고 21일 밝혔다.
황자화통은 지난 2023년 11월 금성산성 주변에서 발견됐다. 당시 나주시가 등산로 개설을 위해 진행한 육군 지뢰탐지 과정에서 금성산 9부 능선 암벽 단애 아래 표토 약 10㎝ 지점에서 확인됐다.

발견 이후 오염물 제거를 비롯해 컴퓨터단층촬영(CT)과 X선 및 주사전자현미경(SEM-EDS) 분석과 금속현미경 조사 및 납동위원소 분석 등 다양한 과학조사가 이뤄졌다.
연구진은 과학분석 결과에 유물 형태와 명문 및 출토지의 역사적 맥락을 종합해 황자화통의 제작 시기와 성격을 살폈다.
황자화통은 구리와 주석 및 납을 주성분으로 한 청동 주조품이다. 길이 23.75㎝와 구경 1.66㎝이며 무게는 1032g이다. 발사체가 나가는 총부리와 화약을 넣는 약통 및 나무 손잡이를 끼우는 모병으로 구성된 소형 화기로 개인이 휴대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몸체에 남은 28자의 명문이다. 모병에는 6행 27자가 음각돼 있으며 정사년 12월 황자화통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무게 1근 14량 및 제작 감독자인 녹사 안휴보와 장인 석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총부리에는 별도로 '팔(八)'자가 확인됐다.
제작 시기는 명문의 '정사(丁巳)'를 근거로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또는 조선 세종 19년인 1437년으로 좁혀졌다. 어느 시기로 확정되더라도 현재 제작연대가 확인된 가장 이른 보물급 화약무기인 1555년 천자총통보다 최소 118년 앞선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차원의 화약무기 생산이 시작된 해다. 1437년은 세종대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했던 시기로 새로운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되기 전이다.

황자화통의 약통 내부가 둥근 형태라는 점도 초기 화기 제작기술을 보여주는 단서다. 화약과 발사체를 하나의 통에 넣어 발사하던 초기 화기의 특징으로 분석됐으며 화약 폭발로 화통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석 함량을 조절한 제작기술도 확인됐다.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도 학술적 가치를 더한다. 금성산은 영산강 유역을 조망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군사·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 세력이 맞섰고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머문 곳이기도 하다. 1270년 삼별초의 나주 공격 당시에는 금성산성을 중심으로 항전이 벌어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쌍자총통과 지자총통 및 세총통 등 화약무기류 14건 16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황자화통은 명확한 출토지와 이른 제작 시기 및 제작 주체와 무게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명문을 갖춰 보물급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1377년과 1437년 가운데 정확한 제작연대를 확정하려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제작된 다른 화약무기와의 비교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황자화통은 오는 23일부터 내달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12월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황자화통이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에서 발견된 것은 나주가 간직한 역사문화자원의 깊이와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뜻깊은 일"이라며 "금성산과 금성산성의 군사적·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황자화통이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 국가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ej7648@newspim.com












